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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Sep 14. 2019

일하는 방식에서
좋은 개념 모형에 대하여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과 인간 심리를 읽다가 든 생각정리

좋은 개념 모형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내고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수 있다. 좋은 모형이 없으면, 그들은 애를 쓰지만 종종 문제를 악화시킨다.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과 인간 심리 p056

지금 기업에 출근한 첫 날부터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주문한 것이 있습니다. 일 하는 방식, 보다 정확하게는 일을 다루는 사고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칫 잘못 전달되면 매우 기분나쁠 수도 있는 말이라 전달하는데 다소 조심스럽기도 했지요. 일마다 각각의 특성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일에 바라보는 나름 보편적인(?) 관점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이란 그 자체로 불완전합니다. 그 일이 완결되려면 우리들이나 기계 등에 의한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흔히 우리가 업무프로세스라 부르는 그것입니다. 이 프로세스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일에 우리들의 생각을 더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정해진 프로세스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니까요. 철학이나 논리와 같은 것들이 포함되겠지요. 그래서 일을 하는데 있어 일을 대하는 관점 내지 방식이 중요합니다. 개념적으로 단순화해보면 일 자체 + 주관적 철학/관점/파단 = 일의 결과 라고 할 수 있겠죠. 


일의 산출물(성과) = 있는 그대로의 일 + 주관적 철학/관점으로서의 프로세스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람들

기업 내에서 만들어진 보고서나 문서들을 보다보면 가끔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문서들이 있습니다. 이 문서는 기본적으로 '나는 이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결론을 내어 놓고 그 결론에 맞는 근거들만 모아 놓는 경우입니다. 이 분들에게는 일 자체는 동일하지만 주관적 철학/관점/판단으로서 '할 수 없음'을 추가함으로써 그 일은 '해서는 안되는 것 혹은 우리 기업에 맞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 냅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여기에 '할 수 없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수집합니다. 일종의 선택편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 경험에 근거해보면 이런 경향이 발생하는 이유는 책임론에 있습니다. 무언가 issue가 발생했을 때 '왜'가 아닌 '누가'를 먼저 이야기하는 조직에서 주로 만들어지는 듯 합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누가'를 확인하고 난 후 '왜'를 확인하여 issue를 해소하는 움직임이 아니라 '누가'를 확인하고 '누가'책임을 질 것인가로 issue가 해소된다고 믿는 경우입니다. 이들은 일이 주어졌을 때 그 해결에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일 해결에 적절한 시점을 벗어나 있는 등의 issue가 발생한 경우 가장 먼저 '책임질 사람'을 찾는 것으로 행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 책임자가 확인되면 자신은 제3자가 되어 일의 잘못된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심한 경우 그 책임자를 비난하는 대열에 동참하기도 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 등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일을 바라보는 사람들

일을 바라보는 사라들은 위와 동일한 issue가 발생했을 때 일 자체에 집중합니다. 그 issue가 왜 일어났는지, issue와 관련하여 핵심은 무엇인지, issue가 발생한 현재 시점에서 해결 가능한 수준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issue의 현재상태의 해소를 위한 행동을 먼저 합니다. issue가 해소되면 그 다음에 이들 역시 책임을 확인합니다. 다만 이들이 책임을 확인하는 건 누군가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했듯 일의 결과란 일 자체와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의 주관적 철학/관점/판단 등이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이죠. 이들은 그 책임을 확인하고 이후에 반복되지 않도록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초점을 맞춥니다. 사람의 주관적 철학/관점/판단이란 그 개인에 귀속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조치는 그 개인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연결은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가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명확히 이해하도록 하는 것을 말하며, 이후에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어서는 안됨을 명확하게 주시하는 일을 포함합니다. 


조직차원 vs. 개인차원

무언가 이슈가 발생하면 특정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를 우리는 개인차원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반면 조직의 구조적 원인이라고 본다면 조직차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누군가가 욕설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설'이라는 것 자체에 대하여 하지 말아야 하는 것 혹은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이게 반복되됩니다. 심지어 오픈된 공간에서마저 보이기 시작합니다. 경영진이나 HR부서가 알고 있는 듯 한데 아무런 액션이 없습니다.  이는 더 이상 개인차원으로 issue를 바라볼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일전에 이런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죠. 누군가가 근태를 제대로 안지키는데 상급자가 계속 감싸고 묵인하면 최초 한 두 번은 개인차원의 일탈일 수 있지만 반복되면 그건 개인차원이 아닌 조지차원의 영역이라고 말이죠. 암암리에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것. 일을 하면서 별 다른 느낌 없이 해도 된다고 구성원들이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 무언가 연결될 수 있을 듯 하죠. 


조직문화

에드거 샤인은 조직문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Culture is both a dynamic phenomenon that surrounds us at all times, being constantly enacted and created by our interactions with others and shaped by leadership behavior, and a set of structures, routines, rules, and norms that guide and constrain behavior. Organizational Culture and Leadership, Third Edition, p1

조직문화는 매 순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여기에서 '매 순간at all times'이란 조직이 만들어진 순간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순간을 말합니다. 정리하면 그 '모든 순간'에 일어났고 나고 있는 수많은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구성원의 행동에 영향(guide and constrain)을 미치는 모든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듀폰이라는 기업에서 사고에 대한 경험이 구성원들에게 깊게 자리잡아 연필통에 연필을 꽂을 때 뾰족한 심이 위로 오지 않게 꼽는다 는 등의 이야기는 그 기업이 지나온 과정에서 발생한 중요한 순간으로부터 만들어진 norm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자리잡은 조직문화는 쉽게 바뀌기 어렵습니다. 이건 일종의 세뇌腦와도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 기업에서는 이렇게 행동한다라는 기본 가정이 있는 거죠. 그래서 만일 전자의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한다면 경영진은 그것에 대해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구성원들에게 잘못된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를 말합니다. 조직문화로 자리잡기 전에 말이죠. 


잘못된 조직문화가 되거나 공정성 이슈가 되거나

기업이라는 조직에서 무언가 공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나 의사결정, 제도 등은 그 기업의 구성원들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됩니다. 무슨 소리? 난 뭐라 말한 적 없는데? 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메시지란 말로 하지 않아도 전달이 됩니다. 이를 우리는 맥락, 분위기 등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이를 우리는 '영향력'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가 한 번 , 두 번 반복되면 구성원들은 이를 그들의 행동양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원래는 잘못된 것 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이 누군가가 그렇게 하고 있고 그걸 기업이 묵인하고 있고 심지어 그걸 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그냥 원래 하던 것 내지 해도 되는 것으로 바뀌는 겁니다. 이는 결국 조직문화가 될 겁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아무리 경영진이 욕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말을 하더라도 한 번도 표현한 적 없는 암묵적 메시지가 더 강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덧붙여 여기서 만일 특정 A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가 없다가 B에 대해서만 제재가 이루어 진다면 이는 조직 내 공정성의 이슈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공정성 이슈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신뢰의 영역으로 연결됩니다. 


좋은 개념 모형으로서 일하는 방식

일에 대한 좋은 개념 모형을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내고(why & what)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how) 반면 좋은 모형이 없으면 그들은 애를 쓰지만 종종 문제를 누구로 결론짓고 책임지는 누군가를 확정함으로써(who)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믿게 됩니다. 그들은 문제를 악화시킬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미래에 발생 가능한 동일한 issue보다 현재의 상태 해소를 바라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다른 이들의 일 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미래에 발생 가능한 동일한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하기도 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면좋은 개념 모형을 갖추고 일을 대한다면 우리가 오늘날 많이 고민하고 있는 조직문화에 대해서도 조금은 긍정적인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 이야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개념 모형이 무엇인가

'좋은 사람' '좋은 기업' '좋은 팀장' 등의 단어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좋은'이란 단어에 대한 모호함입니다.예를 들어 opellie라는 아이를 놓고 보면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닌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저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일을 대하는 좋은 개념 모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말할 수 없을 듯 합니다. 제 글에서도 '좋은' 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건 제가 많이 부족하기에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글의 서두로 제시된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과 인간 심리/학지사'의 이야기를 우리가 '좋은'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일종의 생각의 시작점으로 남기며 글을 마칩니다. 

좋은 개념 모형은 이해 가능하고, 즐길 만한 제품으로 가는 열쇠다. 좋은 의사소통은 좋은 개념 모형으로 이끄는 열쇠다.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과 인간심리,  p056, 학지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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