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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Oct 27. 2019

다양성과 제도
자율과 통제의 균형

제도 만들기를 고민할 때 가장 어려운 판단은 제도가 가지는 강제성의 수준에 대한 부분입니다. opellie라는 저 자신도 누군가에 의한 강제성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제가 고민하고 만드는 제도들이 기업 구성원의 행동이나 생각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까닭입니다. 제도란 기본적으로 일련의 방향성, 제가 '의도'라 부르는, 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그 방향성 범위 내에서 제도의 적용을 받는 이들에게 일종의 행동의 제약을 강제하게 되기에 가만히 두면 자칫 오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할까요. 기본적으로 가진 성향이 지나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HR이란 제도를 주 도구로 다루기에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위치로서 HR이 제도를 설계할 때 구성원의 입장을 의도적으로 고려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도가 가지는 강제력은 그 제도가 세부적일수록 제도의 영향을 받는 구성원의 행동은 더 많은 제약을 받게 됩니다. 달리 표현하면 자유도가 낮아진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제도가 포괄적일수록 그 제도의 영향을 받는 구성원의 행동에서 자유도는 높아집니다. 흔히 말하는 재량성의 증가입니다. 


자유도가 높아진다는 건 책임의 발생을 전제로 합니다. 자유도가 높아지면 우리는 우리의생각과 행동에 대하여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며 사람으로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이익이 되거나 편함을 추구하는 방향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우리는 그 선택에서 의도적으로 그 선택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주어진 재량의 범위를 넘어서는 건 아닌지 등에 대해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를 우리는 '자기통제'라 부를 수 있습니다. 


자기통제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재량권을 넘어서는 일탈이나 남용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고 우리가 상호간에 지키고자 하는 선을 잘 지켜줄 것이라는 선한 믿음을 기반으로 합니다. 누군가의 선한 믿음에 대해 그 믿음으로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만일 누군가의 선한 믿음에 대해 그것을 자기 이익대로 자기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소수가 발생한다면 결국 선한 믿음은 부서지고 제도적 환경은 제도를 더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관리하게 됩니다. 우리가 누렸던 재량의 범위가 줄어드는 결과를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결과가 되겠지요.


HR을 하면서 제가 느끼는 흐름에 기반해 강조하는 단어에 다양성과 개인화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사실 이 두 단어는 서로 독립적이라기 보다는 유사한 개념을 담고 있지요. 개인화가 확대될수록 다양성도 늘어날 가능성이 커집니다. 개인화가 높아진다는 건 다양성의 인정으로 이어집니다. 다양성의 인정은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할 가능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며 동시에 상대방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의견이 '돌아보기reflection'의 도구가 되지 못하고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면 다양성은 인정될 수 없고 개인화가 가지는 재량성 역시 줄어들게 됩니다. 


기업이라는 조직에서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의 취지를 최대한 설명하고 소통하고자 노력합니다. 그건 그 제도의 취지를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굳이 규정을 확인하며 규정대로 했는지를 판단하지 않아도 그들을 믿고 그들에게 판단의 영역을 제공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일에 있어서 판단의 경험이 우리가 '일에 있어서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경험이 되리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가끔 그 제도의 취지를 개인의 이익으로 재해석하는 경우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제도를 다루는 담당자로서 우리들은 제도를 더욱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제도를 세부적으로 만들어 구성원의 행동의 room을 줄인다는 건 오늘날 우리가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조직문화, 동기부여, 몰입, 성장 등 그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기에 이에 대한 고민은 '성장'을 생각하는 HR담당자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악플에 대한 대응으로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댓글 기능들을 폐지한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연예분야에 그리 관심은 없지만 제도와 다양성의 관계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결국 우리들이 하지 못한 자기통제의 결과가 제도의 변화로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들의 행동이 제도에 영향을 주었다고으시댈(?) 수도 있지만 그 영향은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활동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주52시간이라는 근로시간제도의 부작용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이야기들과 그 중에서 우리가 봐도 이해가 잘 안되는 일들이 모든 기업을 대변할 수 없음에도 그 일들이 결국 제도를 더욱 시간단위라는 기준으로 통제를 강화하게 하고 그러한 강화는 다시 우리들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줄이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균형을 위한 노력
어느 한 순간이 아닌 매 순간 우리들이 해야 하는 노력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동안 우리는 매 순간 이들의 어느 지점의 균형을 찾고자 노력할 겁니다. 삼각형 꼭지점을 기준으로 조금만 균형이 틀어지면 바로 기울어지는, 그래서 매 순간 그 기울어짐의 발생을 확인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하는 일을 우리들은 하고 있고 해야 할 겁니다. 지금의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정답으로 놓고 상대방을 깍아내리거나 비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보다는 우리가 맞춰야 할 균형점이 어디인가를 찾아가기 위해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중학교 시절이었던 듯 하네요. 4개 분단이 있었는데 2개 분단씩 나누어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 즉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부여하고 '토론연습'이라는 걸 해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 중 하나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반대 의견을 제시할 때 그 반대 의견의 앞에 항상 상대방의 의견을 잘 들었고 존중한다는 표현을 붙인 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 연습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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