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다니면서 "제도"라는 단어를 머리 한 켠에 넣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보이는 것, 들리는 것에 대해 HR이라는 눈으로 바라봐왔다면 이를 제도라는 눈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느 분의 제도에 대한 글을 마주했습니다. 특정 제도의 필요성을 부인하면서 그 제도가 필요없는 이유로 사람에 의한 잘못된 운영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일일 겁니다. 실제 빈번히 일어나고 있고 그래서 결국 특정 제도가 잘못되었다거나 우리 기업에 맞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경험해온 까닭입니다. 그래서 그 제도를 왜 만들고자 하는가? 그 제도를 만들고자 함에 있어 특정 개인의 이익이 개입되어 있지는 않은가? 를 제도를 만들 때 늘 고민해야 하고 더불어 제도가 그 운영 과정에서 잘못된 형태로 운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통'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를 늘 고민해야 합니다. 제도 바라보는 이론가가 아닌 실무자로서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국내에 BSC를 도입했던 어느 기업에서 실제 그 제도를 직접 공부해서 적용했다고 했던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담당자가 직접 공부하고 제도를 이해하고 그 제도를 운영했던 까닭에 제법 잘 운영되었지만 해당 담당자 퇴사 이후 제도가 본래 취지와 맞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기존과 별 다를 바 없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상은 다르지만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당시 HRIS(Human Resource Information System의 약자)라 불렀던 인사시스템을 만들었을 때 일입니다. 해당 시스템 구축 단계부터 참여를 했고 그래서 구축 이후에도 제가 실무자와 개발자 간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었지요. 시스템 구조를 알고 있기에 자료를 전달하거나 개발을 요청할 때 어느 정도 제 단계에서 조율이 가능했고 system이 일정 수준의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었지만 제가 다른 계열사로 이동하고 난 이후 그 소통 창구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시스템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던 경험입니다.
제도는 없어질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일전에 'HR의 목적은 HR이 필요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HR이 결국 HR제도를 통해 움직임을 생각해 보면 제도 역시 '없어질 것을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제도는 인위적입니다. 인위적이라는 건 방향성을 가진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따라서 그 인위성과 맞지 않는 누군가의 입장에서 그 제도는 불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겁니다. 경우에 따라 그 인위성과 맞지 않음 판단 이전에 그 누군가가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즉 낯설다는 이유로 제도 자체에 대해 거부의 몸짓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제도가 가진 '취지'와 그 취지를 전달하는 방법론으로서 '소통'입니다.
왜 하는가?
제도를 왜 만드는가? 즉 제도를 통해 만들어지는 인위성이 필요가 없어지면, 다시 말해 구성원의 재량에 기반한 행동이 제도의 취지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제도는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되며 더 이상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됩니다. 제도란 없어질 것을 최종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말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소통이란 우리가 그 단어를 말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왜 하는가?를 잊어버리면 그 소통은 오히려 독이 됩니다. 잘못된 왜 하는가?를 전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 하는가?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 우리가 관행에 빠질 가능성을 줄여줄 수 있가는 점에 있습니다. 제도의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의 운영형태가 발생했을 때 제동을 걸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 개념은 우리가 아는 "우리가 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KPI와 같은 기능입니다. 제도의 why가 제대로 소통되면 제도 자체가 하나의 KPI기능을 할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개인적 견해로 우리 나라는 이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왔고 못하고 있었고 그 상태가 제법 지속되어왔던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왜 하는가?에 대해 제도 자체에 대한 이해가 아닌 개인적 이익 관점에서 해석되어온 측면이 있고 설사 그 본래의 why를 알더라도 선뜻 누군가에게 why라는 단어를 이야기하지 못해온 우리들의 인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누군가는 바꿔야 할 모습이기도 하죠. why를 말하는 게 무례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말이죠.
제도가 만들 구체적 상태를 그려보기
제도를 만들 때 범하기 가장 쉬운 오류 중 하나가 지금 당장의 마주한 이슈의 해결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누군가가 일탈행위를 했다면 기준을 만들어 그 A의 행위를 대상으로 제도나 기준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도는 일회성이 아닌 방향성을 가진 도구이므로 특정 행위가 발생했다면 그 행위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성이 추구하는 미래의 '상태'를 같이 그려보아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동일한 혹은 유사한 행위가 이번 건에 대한 처벌이나 강제에 끝나지 않고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도를 통해 만들고자 하는 미래의 구체적 상태를 그려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상태를 만들기 위해 제도의 모습과 운영의 모습, 그리고 소통의 방식이 어떻게 되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도와 사람, 그리고 사람과 제도
제도가 먼저인지 사람이 먼저인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이들이 계속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변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고 그러한 영향관계가 더 이상 필요없는 시점에 도구로서 제도는 사라지리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통제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선의지에 기반해 선한 영향을 만들어가기 위한 도구로서 제도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