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이라는 허상
사랑이란 단어만큼 애매모호한 단어도 없다. 스캇 벡은 자신만의 사랑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사랑이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한다.
스캇 벡은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것이 자기 훈육의 길이 첫 번째 단계인 이유이다.
둘째, 사랑은 능동적인 행위이다. 그러므로 '사랑에 빠진다'라는 표현은 사랑을 이해하기에 좋은 표현은 아니다. 스캇 벡에 따르면 우리는 사랑하기를 선택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화해서 낭만적 사랑과 참사랑으로 구분해서 설명하겠다. 대중매체에서 묘사하는 낭만적 사랑은 성적이고 일시적이다. 낭만적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일종의 퇴행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일체감을 느끼듯이 사랑에 빠진 상대와 하나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남자친구가 당연히 나랑 같은 생각을 할 거라 생각한다. 내가 맛있게 먹는 음식을 그도 맛있게 먹을 것이라 착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선물을 주면 좋아할 것이라 착각한다.
연애 초기가 지나면서 어느 날, 사실은 서로 다른 것을 원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이 낭만적 사랑에서 참사랑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낭만적 사랑의 부재만을 느끼며 헤어진다. 그리고 다시 낭만적 사랑을 할 상대를 찾는다. 성장 없는 만남의 반복일 뿐이다. 스캇 벡의 표현을 빌리면 낭만적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자아가 확장되는 경험은 아니다. 단지 일시적인 자아 경계의 붕괴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낭만적 사랑에 '빠지는' 데에는 아무런 노력이 필요 없지만, 참사랑을 하기로 '선택'하는 데에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다만, 낭만적 사랑이 불필요하다는 소리로 오해하면 안 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참사랑을 위한 기회와 동기를 제공한다.
셋째, 참사랑은 서로를 별개의 개체로 인정하는 자세부터가 전제되어야 한다. 스캇 벡이 말하는 폐쇄된 결혼이 아닌 개방적인 결혼생활의 기준은 이렇다. 부부는 자신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상대방이 서로의 개성을 지닌 별개의 개체임을 인정하며 이런 기반 위에서만이 성숙한 결혼 생활이 가능하고 참사랑도 자랄 수 있다. 건전한 결혼은 오직 강하고 독립적인 두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사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참사랑의 특성 중 하나다. 부부간의 사랑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스캇 벡에 따르면 많은 여자들이 아이가 단지 아기일 때만 사랑할 수 있다. 아이가 100% 나에게 의존할 때에는 나와의 일체감을 느끼며 낭만적 사랑?!에 가까운 사랑을 주지만 아이가 자라고 자기 뜻을 분명히 하기 시작하면 사랑을 주기를 멈춘다. 쉽게 말해 우리가 흔히 모성본능이라 표현하는 것은 본능이지 사랑이 아니다. 본능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떠한 노력이 필요 없는 행위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요컨대 양육이란 단순히 먹여주는 것 이상이라야 한다. 영적인 성장을 북돋워주기란 어떠한 본능적 행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이다. 예를 들어 어떤 어머니가 아이가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것을 못하게 하고(혼자서 수행해 볼 기회를 가진 시기임에도) 자신이 데려가고 데려오는 행동은 겉으로 보기에 아이를 열심히 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아이에게 필요한 양육방식이 아니며 아이의 영적 성장을 촉진시키기보다는 퇴보시키는 방식이다."
넷째, 사랑은 단순한 느낌에 불과하지 않고 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게 단순히 본능적이거나 성적인 충동에 의해 행동하는 것은 참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진정한 사랑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책임의식이 큰 역할을 한다.
여기서의 책임은 상대방을 나에게 의존적으로 만들어 내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의미의 책임이 아니다. 본인의 본능과 달리, 하기 싫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들어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한 사람의 영적 성장이든 상대방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관계를 위해서는 새롭고 익숙지 않은 행동을 취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일단 이 정도로 스캇 벡의 사랑에 관한 정의와 고민들을 정리하겠다. 내가 이해한 바는 이렇다. 남녀 간의 사랑이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비슷한 지점이 있다는 점, 낭만적 사랑(나와의 합일만을 바라는 것)과 참사랑(상대방을 개별적 존재로 인정하고 성장을 바라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참사랑을 위해서는 관심과 더불어 책임의식으로 표현되는 이성적인 부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도 잘 이해했다.
다만 좀 헷갈리는 부분은 낭만적 사랑은 성적인 본능적 사랑과 비슷하다는 것도 알겠는데.. 어머니의 모성본능도 낭만적 사랑의 범주에 넣는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성애=무조건적 사랑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종교적 사랑인 아가페는 무엇인지가 아직 남았다. 이 부분은 추후에 쓸 종교 파트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