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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자체보다 사람이 더 궁금하다.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차라리 이시가미의 심리를 상세히 묘사했더라면

by Writer Choenghee

전국 어느 곳에 여행을 가도 항상 그 지역 독립서점이나 북카페를 꼭 들르는데 어딜 가나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작품들이 있었다. 저 작가는 어떻게 저렇게 다작을 할 수 있을까. 또 신작이 나오다니. 대단하다.라는 생각들만 반복적으로 할 뿐 그의 작품을 최근까지 읽어보진 않았는데 이번에 마음먹고 읽어보았다. 한 줄 리뷰들 중에 호평이 많았기 때문. 가령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 <용의자 X의 헌신>을 단연코 1위로 꼽았다는 둥, 이 작품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에 입덕했다는 둥. 그래서 읽게 된 책 <용의자 X의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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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도쿄 에도가와 인근 한 연립 주택에서 중년 남자가 모녀에 의해 살해된다. 숨진 남자는 도가시. 한때 술집 호스티스였으나 지금은 도시락 가게에서 일하며 첫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 미사토를 키우고 있는 여자, 하나오카 야스코의 이혼한 두 번째 남편이다. 돈을 갈취하기 위해 찾아와 폭력을 휘두르는 그를 우발적으로 모녀가 목 졸라 살해하고 우연히 이를 알게 된 옆집 사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 이시가미가 그들을 돕겠다고 나선다. 야스코를 몰래 사모해 오던 이시가미는 그의 천재적인 머리를 활용해 완벽한 완전범죄를 만들기에 이른다. 구사나기 형사는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는데 총력을 기울이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해 자신이 수사 관련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던 그의 대학시절 친구인 유가와에게 또 도움을 요청한다. 유가와는 이시가미의 이름을 듣고 대학 시절 자신과 전공은 다르지만 서로의 천재성을 인정했던 동창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이시가미가 사건에 개입했음을 직감한다. 결국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와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사이의 놓인 범죄를 한쪽은 숨기려고 한쪽은 파헤치려는 추리 소설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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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난 후 왜인지 많은 호평만큼의 임팩트를 느끼지 못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명성에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물론 뒷이야기가 궁금해 멈추지 못할 정도로 스토리에 흠뻑 빠져 읽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완독 후 나에게 남는 어떤 것이 없었다. 책 한 권을 읽으며 하이라이트나 메모를 하나도 안 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보통 책을 읽고 나면 책 귀퉁이를 접어둔 부분을 디지털 필사하기 위해 일정 시간을 할애한다. <용의자 X의 헌신>은 그러니까 필사할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또는 책 속 스토리가 주는 감흥에 잠시 젖어 있는 때도 많다. 그러나 이 책은 깔끔했다. 책을 펼쳤고 읽었고 책을 덮었다. 끝. 정말 과장하지 않고 딱 이런 느낌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이시가미나 야스코, 유가와 등 등장인물의 심리보다 이야기 전개에 치중한 것이 그 이유인 것 같다. 추리 소설인만큼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저 사건의 인과관계, 전후 과정들을 늘여서 나열해 놓은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이시가미의 심리를 상세히 묘사했더라면 이 소설이 한층 더 깊이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랬다면 이 책의 쪽수가 너무 많아져 시리즈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이시가미가 처음 야스코와 미사토 모녀의 살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 천재 수학자가, 아니 엄밀히 말하면 수학교사이다. 교사임에도 수학계의 난제를 풀기 위해 학교에서의 교수 활동과 연구 활동을 제외한 시간 동안 열심히 연구를 하는 사람이니 수학자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다. 천재적인 그가 자기 파괴적인 방법밖에는 그녀를 구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살짝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인간은 불완전하며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어떻게 보면 이 리뷰 글도 어떤 이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에 대한 많은 호평이 보여주듯 특히 소설은 독자 개인의 취향을 많이 타는 것 같다. 나는 사건의 전개보다 그 사건이 일어난 이유,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행동 저변에 깔린 감정, 심리가 상세한 소설이 더 좋다. 그 인물들 속이 들여다보이는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마치 그 사람의 전 생애를 속속들이 알게 되는 느낌에 그를 이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읽고 나면 어디에도 반기를 들 수 없는, 사건과 사건의 개연성마저 해결되어 버리는, 그 인물의 지난한 인생이 그의 감정과 생각과 이제껏 모든 그의 선택들을 설명해 주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어떤 사람을 깊게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그 깊이와 넓이로 나를 들여다보고 나마저 조금이나가 깊어지고 넓어지게 해주는 작품. 더 나아가 책을 읽는 동안 그 사람으로 살아보는 경험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임을. 새삼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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