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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May 26. 2023

Every moment is a gift.

모든 순간이 선물임을 잊고 산다.

 오늘 신세계백화점에 남편과 9개월 된 딸을 안고 산책 겸 다녀왔다. 집이 백화점과 도보로 약 30분 정도 거리에 있어 가까운 편이라 산책 겸 자주 가는 편이다. 오늘도 딸에게 이유식을 먹인 뒤 날도 그리 덥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바람 쐬러 나가자는 나의 권유에 남편이 얼른 응했다.

 아기띠로 딸을 안고 걸어가는 인도 위에서 남편과 나는 몇 번이고 예쁘다며 딸에게 뽀뽀를 했고, 얼굴, 팔과 다리를 쓰다듬으며 딸에 대한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또 지나가다 딸을 본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구분 없이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아이고 예뻐라, 예쁘네, 요새 아기 보기가 이렇게 귀하다” 등등의 덕담을 해주신다. 그렇게 기분 좋게 걷다 언제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백화점 코앞에 도착했는데 벽면에 ‘Every moment is a gift’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오빠, 저기 봐봐. 모든 순간은 선물. “이라고 했고,

남편은 “오, 맞지 맞지.”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크게 대화의 화두가 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다.


신세계백화점 광고벽면에서 모든 순간은 선물이라는 글귀를 보았다.


 그렇게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육아를 위한 편한 복장을 이미 충분히 있지만 구비하기 위해(?)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 등 스포츠 브랜드 매장을 들어가 아이쇼핑을 했다. 그리고 원래 우리의 목적인 자주(JAJU)에 들러 비누보관 케이스를 구매했다. 어니언 베이글도 하나 사서 나눠먹으며 남편과 배고픔을 달랬다.

 그러는 와중에 잠에 들었던 딸이 깨 보챘고 분유를 타 먹이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로 나섰다. 오후 2시쯤이라 날이 더워졌고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땀도 나고 걷기도 힘들고 배도 고프고 딸은 울고 영 쉬운 게 없었다. 남편과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둘의 걸음은 힘듦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 빨라졌다.

 마침내 집에 도착했고 수박을 먹고 딸의 이유식을 먹였고 남편이 스파게티 요리를 해 이른 저녁 식사를 했다. 그 후 남편이 야간 근무를 가기 전까지 요즘 빠져있는 가수 죠지와 그의 노래, 우리의 추억 등등에 대해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폰 사진첩 앱을 우연히 열어 오늘 백화점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나 이렇게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고 있다. 위에 쓴 걸 쓰며 또 읽으며 깨닫는다. 오늘도 모든 순간을 선물처럼 살지 않았구나. 짜증 나고 힘든 순간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남편과 딸이 함께 하는 순간임을 잊고 있었구나. 그 감사함을 또 잊었구나. 그래서 또 잠시 그들에게 내 마음을 다 하지 못하고 소홀했었구나. 뉘우친다.


 솔직히 육아가 쉽지 않다. 육아 휴직이 편하지 않다. 아기를 좋아하는 나는 결혼 전부터 결혼 후의 임신, 출산, 육아를 꿈꿔왔고 그런 나였기에 내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육아 휴직을 기대했고 기다려왔다. 그런데 현실로 겪은 육아는 정말 현실이었고 내 마음속 이상과는 달랐다. 체력도 달렸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딸을 위해 이유식도 만들어야 하고, 딸과 놀아주기도 해야 하고, 남편에게도 부족하지 않은 와이프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나의 책임감이 현실의 벽에 부딪쳐 항상 약간의 미안함과 좌절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감정들에 둘러싸여 지쳐가는 요즘이다. 테이블 위 치우지 않은 자그마한 휴지 조각에도 짜증이 나고 그 전의 자동적이었던 역지사지와 배려라는 나의 삶의 태도가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고쳐먹어야 가능해지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모든 순간이 선물이라니 가슴이 답답해져 오지만, 무턱대고 긍정성으로 밀어붙이기엔 현실이 너무 현실이다. 나의 책임감과 현실의 갭을 좁혀보는 게 모든 순간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일까. 과하고 불가능한 건 과하고 불가능한 것으로 인정할 줄 알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만족하는 마음이 나에게는 좀 필요한 것 같다. 근데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자세히 보니 광고벽의 그림이 백화점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겹쳐지면서 굉장히 소비 충동적이고 물질만능주의를 표방하는 듯하다. 모든 그림들이 새로운 물건을 사서 타인에게 선물로 주거나, 새로운 물건을 착용하고 있는 거울 속 자신을 보는 듯한 이미지들이다. 자극(백화점 광고벽)과 반응(나의 회고와 반성)이 너무나 부조화스럽고 어울리지 않는 아이러니.




p.s. 요즘 뭐든 자기 손으로 만져보고 탐구해봐야 하는 고집 강한 딸은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만 타면 손잡이를 잡으려 한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 엄마의 팔 힘으로 딸의 손을 손잡이로부터 떼어낼 수가 없다. 그래도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선물같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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