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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Jul 13. 2023

뭔가를 배울 때 이토록 흥분된 적 있었을까

문을 열고 닫는 것을 배운다는 것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무얼 새롭게 배울 때 가장 흥분이 되셨나요? 기쁘셨나요?


 딸이 이제 생후 11개월을 갓 지났다. 내가 내는 소리도 따라 하려고 하고, 매일 반복해서 듣는 단어들은 이해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말도 못 하고 못 알아듣는 아기를 일방적으로 돌보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새 몸도 머리도 조금은 성장한 나의 딸과 소통하는 느낌이 어렴풋이나마 들어서 힘든 육아가 아얘 안 힘들진 않지만 조금은 덜 힘들다.


 부쩍 남편과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 딸에게 일상생활에서 쉽게 하고, 보고, 들을 수 있는 단어, 표현들은 자주 들려주고 알려주려고 한다. 예를 들면, ‘문 열었네’, ‘문 닫았네’ 같은 것들 말이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문 열었네, 문 닫았네 해주면 그렇게 소리지르고 웃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문은 안방 문이다. 안방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엄마 껌딱지인 딸은 엄마가 사라져 떼를 쓰며 엄마를 찾았단다. 보다 못한 남편이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딸을 안고 안방 화장실 문 앞까지 왔었다. 용무가 끝난 나는 화장실을 나와 까꿍! 하며 이제 거실로 나가자고 했다. 남편은 딸과 함께 의자에 그대로 앉은 채로 거실로 향했다. 그런데, 거실로 나가기 직전에 문고리에 시선을 두고 잡으려고 하는 딸을 포착했다.

 “오빠, OO이 문고리 잡게 해 줘요. 관심 가진다.”


 남편이 딸을 문고리를 잡을 수 있게 가까이 다가갔고, 딸은 마침내 문고리를 잡았다.

 “OO아, 문 닫아봐.”

 남편은 딸이 문을 닫을 수 있도록 딸의 몸을 당겨줬다.


 옆에 있던 내가 딸에게,

 “문 닫았네”

 하니까 딸이 소리를 꺅 지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런 딸이 너무 사랑스러워 남편이 이제는 문을 열어보자고 했다. 문고리를 잡은 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어 문을 함께 열었다.


 지켜보던 내가 딸에게,

 “문 열었네”

 하니까 딸이 또 소리를 꺅 지르며 웃었다.


 딸의 웃음과 기쁨의 고함 소리에 중독된 우리는 문을 몇 번 여닫았는지 셀 수 없었다. 거기에 딸이 문을 여닫을 때마다 나는 쉬지 않고

 “문 닫았네”

 “문 열었네”

 를 반복했다. 딸이 정말 이 두 표현을 학습했는지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학습했으리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이.


 남편과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그래서 우리에겐 지루할 수 있는 문 여닫기를 그렇게까지 반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새롭게 문을 열고 닫는 행위와 그 행위에 연결되는 새로운 표현을 배우는 것에 대해 딸이 표현하는 기쁨의 소리와 웃음이 실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가 표현하는 배움의 즐거움은 그 크기를 묘사할 표현을 찾기가 힘들게 성인인 우리와는 달리 무척이나 컸고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딸을 보니, 나는 언제 배움의 기쁨, 즐거움을 저만큼 느꼈었는지를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중학생 때부터 영어 자체를 좋아했던 나는 영어로 된 책을 스스로 읽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에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영어로 된 문장을 읽었는데 이해가 된다. 몸이 찌릿할 정도로 놀랍고 경이롭다. 그래서 더 몰입하게 되었고 두 번째 문장, 그다음 문장도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읽는 것뿐만 아니라 영어 회화 학원을 다닐 당시 원어민 선생님과 문답을 하며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그 시간을 온전히 즐겼다. 또, 중, 고등학생 시절 시험 기간에 친구들이 잘 몰라 답답해하던 문제들을 들고 와 자주 물어보곤 했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친구들이 마침내 알겠다는 신호를 보였을 때 그만큼 짜릿하고 보람찬 기쁨, 재미를 주는 것은 그 당시에 없었다.


 그래서 생긴 자연스러운 나의 꿈, 목표, 영어 교사. 그 꿈이자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교육철학, 서양교육사, 동양교육사, 교육심리, 교육과정, 교육평가 등 다양한 교육학 과목들과 영어교육론, 영어학, 영미문학 등의 전공과목들을 공부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말 그대로 재미였다. 그 재미가 임용고시를 합격해야 하는 부담감을 조금은 덜어주었다. 나의 경우, 덕업일치였으니까. 좋아하는 것이 나의 업이 될 것이니까.


 임용고시 공부를 하면서 쉬는 시간이나 주말엔 미드를 주로 봤었는데 그 당시에 심하게 빠진 미드가 빅뱅이론이었다. 자막 없이 표현들을 알아들을 때, 그 표현들을 말하기 연습 삼아 쉐도잉할 때의 기쁨과 즐거움은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 자체가 좋았다.


 이 외에도 배움의 기쁨을 주는 것은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딸처럼 문을 여닫는 거에도, 까꿍 하나에도 깔깔깔 웃어댔을 것이다.




 딸을 통해 내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알 수 있고, 정말 사소한 것 하나를 배울 때에도 저렇게 기쁨을 느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 못 하는 시절까지도 딸을 통해 다시 살아보는 기회를 얻은 것 같다. 딸은 참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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