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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Jul 11. 2023

딸에게 오렌지를 먹이다가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딸이 오렌지를 무척 좋아한다. 오렌지 하나를 한 번에 거의 다 먹을 정도이다. 귀엽게 올라온 7개의 치아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먹는다.


 어느 날, 딸에게 간식으로 먹일 겸 오렌지를 까고 있었다. 두꺼운 겉껍질뿐만 아니라 과육만 먹일 수 있도록 과육을 덮고 있는 얇은 속껍질도 제거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먹다가 질식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오렌지의 얇은 속껍질까지 깐 후 달콤한 과육은 딸을 먹이고 비교적 맛없는 부분인 얇은 껍질 부분은 내가 먹었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고등어든, 사과든, 찜이든, 회든 그 음식이 무엇이든 적게 드신다. 왜냐하면 나와 동생을 많이 먹이려고.

 “엄마 왜 이렇게 안 먹어? 많이 좀 먹어요.” 하면

 “많이 먹었다. 배 불러.”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그냥 하시는 말씀인 걸 안다. 저렇게 드시고 배가 부를 수가 없다.

 그리고 고등어, 갈치 같은 생선 구이를 먹을 때면 엄마는 항상 살이 적고 가시가 많은 부위를 골라 드시곤 하셨다.

 딸에게 오렌지를 먹이다 생각난 엄마의 모습들은 전부 아들, 딸을 더 먹이고픈 엄마의 사랑의 갖가지 모양들이었다.


 또, 하루는 딸의 이유식을 먹이다 딸이 먹다 흘린 이유식을 내가 본능적으로 주워 먹었다. 어떻게 보면, 더러울 수 있지만, 내 딸이 먹던 건데 뭐가 더러운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언젠가 내가 남긴 밥을 엄마가 드시던 기억이 났다.

 “엄마가 먹을 줄 알았으면 깨끗하게 먹을 걸, 밥에 양념들 묻어있는데 괜찮나?”라고 내가 물었던 기억까지.


 오늘은 딸에게 갓 지은 밥을 먹이고 싶어 전날 밤에 만들지 않고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잡곡무른밥을 지었다. 밥솥에 이유식 기능이 없어 냄비로 밥을 짓는다. 아직 아기라 밥보다는 죽에 가까워 냄비 아래가 눌어붙지 않도록 계속 저어주어야 한다. 한 시도 가만있지 않고 집안일을 하시는 엄마가 또 떠올랐다. 저녁 상을 차리시고 아빠, 나, 남동생이 테이블 주위에 앉아 엄마가 오기를 기다린다.

 “엄마, 제발 먼저 먹고 좀 해라.”라고 남동생이 말하면 엄마는

 “먼저 먹어라, 엄마 이거 좀 먼저 치워놓고.” 하셨다.

 

 엄마는 그렇게 날마다 우리를 먼저, 당신은 뒤에 두셨던 사랑을 보여주신 것 같다. 지금도 여전하시다. 그 사랑을 내 딸에게 나도 모르게 똑같이 하고 있으니 받은 사랑의 크기가 참 큰 것 같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고 사라지는 것 같지만 살면서 문득 떠오르는 걸 보면 마음속 아래쪽부터 쌓이고 쌓여 깊숙한 곳에 들어가 있었을 뿐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어떤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무엇보다 타인에게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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