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영어
알고리즘의 제안으로 '원의 독백'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되었다. 궁금해서 클릭해 보았다. 우선 영상에 대해 말해보자면 마치 영화 같았다. 평균 3분 내외의 짧은 영상임에도 크리에이터가 전달하고자 하는 확실한 메시지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면들이 아주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마치 스토리라인을 미리 세워두고 그에 맞는 스크립트와 장면들을 계획하여 촬영한 듯했다. 후에 알고 보니 정말 치밀한 계획을 기반으로 촬영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촬영에 드는 메모리 용량이 그렇게 크지 않다고.
이 글이 올라가고 있는 매거진은 <보고 듣고 너무 하고 싶은 말>이다. '원의 독백'이라는 채널의 영상들을 우연히 보고 듣게 되었는데 너무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그런데 그 주제와 내용이 영상이 어떠어떠하다는 것은 아쉽게도 아니다. 바로 크리에이터 임승'원'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생겨 노트북을 켜 이 글을 쓰고 있다. 처음 그의 짧고도 얼마 안 되는 영상들 중 하나를 랜덤 하게 선택해 시청했을 때 솔직하게 그의 첫인상에 대해 말해보자면 중국계나 대만계 미국인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며 영상이 그의 영어로만 진행된다. 또, 짧은 머리에 체중이 많이 나가지만 다부진 체형이라 외국인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광주광역시에서 나고 자란 대한민국 남자다. 거기다 해외 유학 경험은 전무하며 짧게 미국 여행을 친구와 간 게 해외 경험이라면 다라고 한다.
소위 국내파임에도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그가 궁금해졌다. 그의 비결을 알아내 복직했을 때 학생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고 최소한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동기부여만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좀 더 그에 대해, 그의 영어에 대해 파고 또 파보기로 했다. 그의 영상 리스트 중에 '영어에 관하여'라는 영상이 있다. 영상에 따르면, 2007년 아이폰 광고 시안과정에서 시트콤이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청중들은 다 웃었지만 자신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고 한다. 자막을 켜도 왜 웃기는지 몰랐다고. 그 충격을 계기로 지구 반대편 사람들은 뭘 보고 뭘 듣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단다. 그는 영어를 왜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해 시험만을 위해 공부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며 우리의 삶을 넓혀주기 때문에 영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영어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그는 영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므로 문법 공부처럼 공부로 영어를 습득하기보다 직접 말하고 써봐야 는다고 했다. 영어를 많이 하려면 유학을 가는 게 제일이지만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 그러므로 그는 영어적 환경을 조성했다고. 그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영어로 채웠다고 한다. 영어 노래는 가사를 외울 때까지 듣고, TV 쇼는 질릴 때까지 보고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그와 똑같이 행동하고 대사를 말하곤 했단다. 학창 시절 운이 좋게도 영어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자주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모든 전자기기의 언어 세팅을 영어로 지정하는 것까지 추가되었다. 마지막엔 이렇게 덧붙였다.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여도 틀린 문법이 많다며 그럼에도 영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니 완벽해지기보다 의미만 전달되면 된다는 마인드셋을 갖고 있다고.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딛고 영어를 직접 써봐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영어는 그 방법으로만 얻어진다며 직접 써야 한다고.
덧붙여 영어문법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나중에 영어로 말하거나 쓸 때 한국어 프로세스가 사이에 끼어들어가니 비효율적이다고 생각한단다. 그가 말하는 영어 공부 방식인 직접 그 표현들, 예를 들면 영어 노래 가사들, 미국 TV쇼에 나온 주인공들의 대사들을 직접 노래해 보고 말해보면서 체득된 영어 표현들을 활용해 자신이 말하고 싶은 문장이 생겼을 때 바로 튀어나오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공부방식이 자신에게 맞았던 이유는 영어 오타쿠였다고 자신을 표현하며 남다른 영어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 아이팟에 미국 드라마, 영국 드라마, 미국 노래, 영국 노래만 들어 있었고, 심지어 시험지에도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썼을 정도라고. 그랬던 자신을 힙스터 중2병으로, 사대주의 오진다는 표현으로 희화화하며 겸손함을 갖추고 있는 그. 현재도 사대주의를 조금 표방하고 있다며 영어뿐만 아니라 애플 제품들은 무조건 좋아한단다. 그래서 자신의 영상을 보고 있는 구독자분들께도 오타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TV쇼 등 영어로 된 콘텐츠의 팬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이면서 'The Office'라는 미국 시트콤을 추천했다.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중학교 때부터 해리포터에 빠져 원서, 영영사전을 학교로 들고 와 쉬는 시간에 읽는 나를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고, 아이팟은 없었지만 당시 아이리버 mp3에 미국, 영국 팝송 넣어 다니며 가사 보고 따라 불렀던 것, 인터넷으로 만난 독일, 미국, 일본 등 여러 해외 사람들과 편지와 선물을 주고받는 펜팔을 직접 찾아 했었고, 스스로 우체국 가서 해외배송도 척척 했던 것. CNN 뉴스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이 허다한데 듣고 있는 나를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며 흐뭇해하고 만족했던 것. 원어민 선생님과의 영어 회화 시간에는 손들고 발표하고 원어민 선생님의 수업을 이해하는 나 자신이 기특하게 느껴졌던... 이런 게 바로 임승'원'이 말한 힙스터 중2병 오진다는 것인가? 나는 그처럼 시험지에 이름을 영어로 쓰진 않았었다. 그에게 진 것 같은 이 느낌이 약간 아쉽다고 해야 할까.
결국 나는 영어에 대한 덕질로, 덕업일치를 이루어낸 사람이다. 결국 내가 이긴 건가? 이제 이 농담은 각설하고. 영어를 좋아하고 친구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들을 가르쳐주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꼈으며, 가정환경이나 교우관계 등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들에게 공감능력이 높은 것인지 측은지심이 쉬이 드는 내 성향을 다 종합했을 때 영어교사가 된 나는 덕업일치를 이루었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어 교사, 그것도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영어에 대해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들로부터 듣는 말들이 많다. 그중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학교에서의 영어 성적은 결국 사교육을 받고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당장 학생들은 영어 성적이 안 나오면 학원을 바꿔야겠다는 둥, 심지어 동료 선생님들도 영어는 사교육 없이는 안된다며 사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영어 교사로서 나의 가르침에 대한 열정, 수업 연구에 쓰는 시간, 적극적인 교수 활동 등 나의 노고와 전국의 많은 영어선생님들이 함께 열심히 이바지하고 계시는 영어 공교육의 효과는 깔끔하게 배제되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한다. 영어는 외국어이다.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 있어 핵심은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반복에 대한 논문까지 썼을 정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다. 당장 영어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실 밖을 나서면 온통 한국어가 들리는 나라라는 말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외국어인 영어를 잘 듣고 읽고 쓰고 말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듣고 읽고 쓰고 말하기를 엄청나게 '반복해야' 잘할 수 있다. 결국 학교 수업만으로는 영어를 잘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인정해야 한다. 교사가 아무리 수업을 잘 연구하고 구성해서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애석하게도. 다시 말하면, 영어의 습득을 위해서는 학교 밖에서의 영어 반복이 필수적이다. 그 반복을 위해서 많은 학생,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의지하는 것일 것이다.
원의 독백과 내가 국내파로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이유로 귀결된다. 결국 영어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영어의 '반복적인' 사용. 미국 드라마에 빠져 몇 번을 반복해서 보고 배우들의 대사를 제스처, 발음, 억양을 그대로 따라 해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듣기도 자연스레 반복된다. 내가 중학생일 때는 영국 드라마 'Skins', 미국드라마는 'Gossip Girl', 'Gilmore Girls'가 인기여서 빠짐없이 에피소드들을 챙겨봤었다. 임용고시 공부할 때조차 ‘The Big Bang Theory’에 빠져 밤을 지새웠으니... 영어 노래도 지겹게 들으면서 가사를 보고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결국에는 외우게 되기까지. 그때 한창 'Aaron Carter', 'Gareth Gates', 'Westlife'의 노래들을 들었었는데... 영어로 된 원서도 읽고 펜팔로 영어 편지도 쓰는 등.
원의 독백을 우연히 보고 듣고 영어 교육에까지 도달해 버렸다. 영어 문법 공부 필요성 등 영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지만 추후 계기가 생긴다면 더 해보기로 하고 오늘의 하고 싶은 말은 여기서 마무리해야겠다. 아! 혹시 원의 독백의 영상과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시길.
*원의 독백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onologue
*원의 독백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eungwon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