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어머니의 남자들
네 번째 남자는 막내였다.
3대에 걸쳐 아들이 귀했던 집안에 당신께서 아들 셋을 생산하였다. 농장지경에 할아버지는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음은 말해 무엇하랴. 벌써 반백 년 전의 일이다. 그 까마득할 것 같은 세월이 마치 서너 번의 겨울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듯 서운하다.
중년이 된 막내는 환절기의 문턱에서 방황하고 있다. 혹서에 밤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던 때가 곧 그리워질 것 같다. 인간만큼 간사한 감정을 소유한 포유류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다. 소, 개, 돼지, 말 등 축생들에게도 마음이 있을까.
사람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마음[心]이란 무엇일까. 마음이 육신을 지배하니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몸이 따르게 된다. 그러니 마음은 곧 나와 가정, 사회, 나라를 구동케 하는 원동력이리라.
가을은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중년을 맞는 사내들의 계절이기도 하면서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보며, 봄부터 지나온 발자국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소중한 자숙의 시간이기도 하다.
중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밤낮으로 금맥에 홀려 계절의 흐름도 잊은 채 허상을 쫓는 별물도 꽤 있기는 하다. 중년은 왼손과 오른손에 쥔 것들을 세밀히 구별하여 넘치는 것들을 슬며시 내려놓을 줄 아는 아량의 시기이기도 하다.
가을이 되면 어머니는 집안 남자들을 호되게 단속하였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할 일 없는 마을 남자들은 투전판이나 주막거리로 몰려들었다. ‘안골 김 서방이 간밤에 노름판에서 쌀 열 가마를 잃었대’. ‘성넙에 사는 이 서방은 노름판에서 빚을 져 집까지 저당 잡혔다네’.
얼빠진 가장의 허황한 노름에 가족들은 겨우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안타까운 소문이 왜자했다. 아버지는 겨우내 사랑채에서 찾아오는 벗들에게 박주를 내어 황진이나 양사언의 시를 읊으며 한량처럼 지냈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땀 흘려 수고한 대가를 어머니는 조용한 내조로 응대하였다.
남자들은 어머니의 호시(虎視)로 방종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의 작은 숨소리에 잠시 무위도식하는 남자들은 눈치를 봐야 했다. 조용히 공맹을 대하는 막내는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는 수혜자이기도 했다. 칠 남매는 다양한 성격이 섞여 있었다.
큰 형님과 나는 취향이 비슷하여 문향(文香)을 좋아하였고, 둘째 형님은 외형 위주의 행동에 신경을 쓰는 성격이었다. 누이들이 내향적이라면 아들들은 내, 외향이 적절한 복합형이었다. 형제가 스무 살이 넘어가면서 그들은 다양한 갈래와 색깔로 명징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될 성싶은 묘목의 떡잎을 살피며 고민하였다. 수불석권하던 큰형은 유명 대학 세 곳에 동시에 합격해 놓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진학을 포기했고, 어머니의 가슴앓이는 평생 이어졌다.
일찌감치 학문을 비껴간 둘째 형이 회사원이 되자 문도(文道)의 길을 바랐던 어머니의 지청구가 수년째 이어졌다. 문리의 유혹에 약한 막내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어머니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는 못했지만, 그는 겨우 비난과 손가락질을 면할 수 있었다.
8, 90년대는 형제들에게 단련의 세월이었다. 병역과 학문 그리고 직업과 혼인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고난의 시기이기도 했다. 또한, 부모의 기대와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험난한 과도기이기도 했다.
이때는 현재 대한민국 중년들이 천둥벌거숭이가 된 채 도전과 응전을 감내해 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기간 어머니들은 가정의 세심한 조타수이며, 한편으로는 자애로운 독재자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남자 중 반은 이승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벌써 피안에 들었고, 큰 형님도 명도(冥途)를 걷는 중이며, 당신께서도 몇 해 전 천경(泉扃)에 드셨다. 엄중하던 한 집안의 치열했던 삶의 이야기는 전설로 남게 되었다. 앞만 바라보고 살았던 지난 세월의 주인공들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어머니의 네 번째 남자는 오달지지 못해 늘 손해를 본다. 어떤 이는 그런 성격을 두고 웅숭깊다고 하고 혹자는 미온무독한 호인의 근성이라며 기가 막힌 궤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잦던 막내를 측은지심으로 다독이면서도 매서운 주문을 잊지 않았다. 당신의 주문은 아직도 유효하지만, 막내는 중간 정도의 역정에 머물러 하늘을 탓하기 일쑤다.
주문은 자식이 고관대작이 되거나 황금성을 쌓아 삼한의 명문거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의 자식으로서 비꾸러지지 않고 제대로 사람 구실 하며, 타인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촌부의 아주 소탈한 소망이었다.
청운에 조바심치 던 막내는 이효상효로 몸을 상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집안에 남자들이 많아도 여장부 한 사람 당하지 못한다. 남자들의 뜨악한 심사는 잠시였다. 먼 훗날이 되어 되돌아보니 집안에 여장부가 있었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대단한 일인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싸움은 언제나 어머니의 일방적인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패전의 미덕을 배운 남자들은 아내와 싸움에서 패배해도 불만은 전혀 없다. 서 말 여덟 되의 응혈(凝血)을 흘리며 자식을 낳고, 여덟 섬 너 말의 혈유(血乳)를 먹여 키워주신 어머니.
불설대보부모은중경에서는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을 백천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했다. 막내가 힘에 부쳐 미완의 역정을 여기서 갈무리한다면 어머니는 어떤 불호령을 내릴지….
강산이 두세 번 변하면 한 집안의 흥망성쇠의 전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주인공과 일부 조연들은 이미 망인이 되었지만, 남아 있는 조연은 어머니의 무대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고민이다.
가을은 식물에게 조락의 계절이라 하지만 중년의 사내에게는 또 한 꺼풀 벗겨내는 생장의 시기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어머니의 남자들이 주인공의 명예를 공고히 하는 때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 드릴 수 있는 자격은 오로지 당신이 낳은 자식밖에 없다. 세상에 어머니의 남자 아닌 아들이 어디 있을까.
할아버지도 어머니의 남자였고, 아버지도 어머니의 남자였으며, 아들과 손자들 역시 어머니의 남자들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 한 집안의 고매한 천륜의 역사도 한때의 꿈결 같은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2022.11. 1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