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시월애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볕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저 별 중에 가장 여릿여릿하고 가장 반짝이는 별 하나가 가던 길을 잃고 내게 내려와서는 이 어깨에 기대어 잠든 것이라고요.
마지막 한 잎이야. 밤중에 틀림없이 떨어져 버렸으리라 생각했었는데, 바람 소리가 굉장했거든. 오늘은 떨어지겠지. 그러면 나도 함께 죽는 거야.
태풍 힌남노가 남부 지방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동해로 빠져나갔다. 지구 온난화 탓일까? 올해는 여느 해보다 유난히 태풍이 잦았다. 사나운 바람에 피해를 본 분들에게 뭐라 위로를 드려야 할까.
태풍이 한바탕 광기를 부리고 지나간 자리에는 슬픔도 있겠지만 짙은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집 주변 공원 수목들 잎사귀들이 이별의 잔치를 준비하느라 무척 부산해 보인다. 성질 급한 것들은 이미 종적을 감췄고 가지는 앙상하다.
별이 훨씬 가깝고 맑게 보이는 이즈음 중년들에게 기억에 남는 명작을 물으면 대개는 안톤 슈낙(Anton Schinack)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별’,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의 ‘마지막 잎새’를 꼽는다.
* 윌리엄 시드니 포터 – 미국의 소설가로 1862년 9월 태어나 1910년 6월에 사망했다. 필명은 오헨리
(O. Henry). 대표작은 마지막 잎새(Last Leaf)이다.
이들 작품은 7, 80년대 청년기를 보낸 분들의 가슴에는 아련하게 남아있는 서정시이며, 미지의 연인에게 보내고 싶은 연서에 자주 인용하는 명구(名句)이기도 했다. 요즘 MZ 세대에게는 생소하거나 낯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물론 국어 교과서에서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월이 되면 억병(臆病)이나 향수병에 걸려 과거로의 회귀본능을 억누르고 지내는 중년들도 꽤 있다. 그들은 청년기를 간서치처럼 보내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상당수의 책상물림 출신들은 10월이 왔는지, 잎이 떨어졌는지 모르고 지내기도 한다. 자신의 미래를 위하여 정진해야 할 고교 시절에 이성을 만나 아름다운 추억을 쌓는 일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S가 서울 동쪽에 거주한다는데…….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까. 그때처럼 새침하고 음전할까. 행여 지금이라도 만난다면 그때 감정이 남아있을까. 아이들이 있다면 지금 한창 시집 장가갈 때가 되었을 테지.’
망상을 해보다 친구가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옛사랑은 그냥 추억으로 남겨 놔야 해. 그래야 먼 훗날까지 아름답던 시절을 회상해 볼 수 있거든. 만약에 만나본다면 그 순간 그녀에 대한 환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후회만 남게 될 수도 있어. 나는 K가 그렇게 몰라볼 정도로 변했을 줄 상상도 못 했어. 후회막급이야. 괜히 만났어.’
친구는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본 심정일지도 모른다.
입대 전까지 두 명의 이성과 차례로 인연을 맺은 적이 있었다. 모두 고향의 소녀들로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을 소유자였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눈을 감으면 유독 S의 깜찍하고 청초한 모습이 생생하다. 두 명 모두 불알친구의 사촌 동생이었다.
‘군대라는 훼방꾼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나는 혼자 웃곤 한다. 그녀들도 나처럼 옛일을 추억하고 있을까? 아니면 나 혼자만의 망상인가? 예전에 나는 S를 수소문했었다. 그녀의 동창을 통해 어렵게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서너 달을 두고 고민한 끝에 나는 S에 대한 영원한 염알이꾼으로 남는 게 훨씬 이득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맺고 망상을 접었다. 만나본들 무엇을 어찌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의 괜한 호기심으로 평온한 S의 가정에 풍파를 불러올 것 같았다. 나는 나대로 이곳에서 그녀는 그곳에서 어우렁더우렁 이웃사촌들과 어깨를 부대끼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삶이 지선(至善)일 것 같았다.
주변에 어떤 간 큰 사내는 30년 만에 첫사랑을 만나 서로의 멀쩡한 가정을 깨트리고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주변인들은 그 커플을 화제의 중심에 놓고 부러워하였다.
그 커플은 중구삭금의 진리를 몰랐던 것이 분명했다. 커플의 이전 배우자들 역시 그들과 동향인이었다. 졸지에 철천지원수가 된 네 사람과 그들의 친인척들 입에서 해묵은 악몽들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그 커플은 일 년도 못 가 파경을 맞았다.
그 두 사람의 파국은 가을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중독된 상태에서 과거로의 회귀를 갈망한 결과였다. 중년 블루스는 중독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자칫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정도를 벗어난 중년의 로맨스도 주변인 다수를 우울하게 한다. 한쪽에 화병을 불러들여 단명하거나 독거 세대에 편입되기 일쑤다. 한마디 인사말도 남기지 않고 훌쩍 떠나간 시월애는 빨리 잊는 게 좋다. 만사는 때가 있게 마련 아닌가.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에서 환자인 존시(Johnsy)는 가을 담장에 붙어있는 담쟁이덩굴에 매달려 팔락거리는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의 목숨도 끊어질 거라 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하여 친구 수우(Sue)는 베어먼(Behrman) 노인에게 부탁하여 밤새워 담장에 잎새를 그려 넣게 한다.
아무리 매서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그 잎은 떨어지지 않았다. 존시는 거짓말처럼 기력을 회복하였고 잎새를 그린 베어먼 노인은 폐렴이 악화하여 그만 죽고 말았다. 상당수 중년 사내의 깊은 속내에는 여인들이 알 수 없는 상처가 있다. 그 아픈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곁에 있는 수우 같은 사람이다. 시월애는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처신사납다는 말을 들을까 속앓이를 하는 가을 여인도 꽤 있다. 못된 가을의 전령은 눈을 희번덕이며, 어리숭하고 모지락스럽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한다. 시월애는 전염성이 강하지만 오래가지 않기에 크게 염려할 것은 못된다. <끝>
[2022.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