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있어야 천국이 있다

by 최재효

[에세이]











지옥이 있어야 천국이 있다







“헬로 헬프 미, 헬로 헬프 미, 헬로, 헬로오…”



뼈만 앙상한 여인이 비 내리는 사원 앞에서 두 아이와 흠뻑 젖은 채 오들오들 떨면서 이국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움푹 들어간 퀭한 눈굽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



여인의 양옆에 서 있는 서너 살쯤 된 소녀들 손에는 빗물에 절은 오징어포 같은 것이 들려져 있는데 얼마나 빨아댔는지 하얗게 변해있었다.


이국의 풍경을 렌즈에 담으려고 버스가 힌두사원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에게 다가갔다. 멀리서 봤을 때 신기해 보이던 모습이 이내 슬픔으로 변하고 말았다. 차마 그들을 향해 셔터를 누르지 못하고 주머니를 뒤져 루피화를 건네주고 돌아섰다. 그들의 신산스러운 얼굴에서 아련한 전쟁고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인도 북부지역을 여행하는 내내 나는 세 모녀의 우묵한 눈을 지울 수 없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서너 달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과 사, 가진 자와 없는 자, 빈과 부, 미와 추(醜) 등, 극과 극을 달리는 나라를 여행하고 온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막연히 부처님의 나라라고 아름다운 환상에 젖어 떠날 때의 설레던 마음은 간데없고 무거운 마음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백 년의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이순이 되도록 지옥이 죄지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돌아본 뒤에 현재 내가 사는 세상이 곧 지옥이고 천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구 지층에서 지하로 35km 되는 부분까지 지각이라고 하며, 지각에서부터 지하 2,900km 깊이를 맨틀이라 한다. 맨틀은 지구의 외핵(外核)을 둘러싸고 있는 두꺼운 암석층이다. 이 맨틀이 지구 부피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지각과 맨틀의 경계 부분을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 줄여서 모호면(Moho面)이라고 부른다.



맨틀은 1~5mm 크기의 조립질암석, 즉 액체상태로 녹지 않고 고열과 높은 압력 때문에 감람암질(橄欖岩質 - eclogite)로 존재한다. 암녹 또는 흑녹의 짙은 색을 띠며 밀도는 3.4g/cm³이다. 이 맨틀 아래 지구의 중심인 핵이 있다. 핵은 내핵(內核)과 외핵으로 되어 있는데, 주요 성분은 철과 니켈 등으로 구성밀도는 10~16 cm³이다.


이곳이 성경에서 말하는 연옥이며, 불가에서 말하는 팔열지옥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가 딛고 있는 땅속으로 3천 km 정도 파고 들어가면 바로 지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지옥은 죄지은 자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막연히 알고 있다. 지구 핵의 온도는 태양의 표면 온도와 비슷한 섭씨 6천도 정도이다.


즉 우리는 하늘에 섭씨 6천 도의 불덩이를 이고 있고 동시에 똑같은 불덩이를 밟고 있는 셈이다. 태양의 열은 지구까지 1억 5천만 킬로미터의 거리를 빛의 형태로 변형되어 전달되는 동안 대부분 식어서 인간을 비롯한 동물과 식물이 살아가는 데 적합한 온도로 변한다. 만약 지구가 태양계의 대혼란으로 낮 온도 영상 430도, 밤의 온도 영하 183도인 수성(水星)의 위치로 이동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땅속에 또 하나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산다. 두 개의 팔열지옥 사이에 인간세계가 펼쳐져 있다. 태양계에서 생명체와 식물이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지닌 곳이 바로 이 순간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지구 아닌가. 여기가 바로 천국이며 극락이다.



화성이나 토성에 우리가 모르는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푸른 지구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천국이라고 동경하리라. 1969년 7월 아폴로 11호가 달에 안착하여 본 지구의 모습은 환상 그 자체였다고 한다. 우주인들이 달에서 지구를 촬영한 사진을 보면 달처럼 밋밋한 모습이 아니라 푸른 원구(圓球)에 흰 구름 띠가 빙 둘러쳐진 모습이 조선 초기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묘사한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 비견할 만하다.



그토록 아름다운 별, 지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통, 슬픔, 비애, 살인, 죽음, 배신 등 차마 입에 담기조차 싫은 단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또한, 부조리, 비상식, 비인간성이 난무하는 지옥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도 있다. 시각의 아이러니이며 사고의 혼란이다.



기원전 536년경, 현재 네팔의 남부와 인도의 국경 근처인 히말라야 산기슭의 카필라성[迦毘羅城]을 중심으로 샤키야족[釋迦族]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와 마야 부인 사이에서 고타마싯다르타가 태어났다. 그가 향락과 호화로운 생활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면 많은 사람은 정신적 고뇌에서 몸부림치며 고통 속에 살다가 생을 마감했으리라.



궁궐에서 지극한 즐거움을 맛보다 어느 날 궁궐 밖으로 외출한 싯다르타는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생각한 바가 있어 부귀영화와 아름다운 부인 아쇼다라, 아들 라훌라를 뒤로하고 고행의 길을 걷는다. 아시타라는 선인(仙人) 말대로 싯다르타가 아버지 정반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였다면 전륜성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싯다르타는 권력의 화신을 걷어차고 생로병사를 고민하고 정진한 끝에 마침내 보리수 아래서 득도하게 된다. 그가 카필라성에 머물던 시기도 그에게 있어 극락이었을 테고, 깨달음을 얻어 마음의 평정을 얻은 것도 역시 지극한 즐거움이었을 테다.


그가 만약 늘 즐거움만 보고 살았다면 지옥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깨달음도 없었을 것이며, 일개 범부(凡夫)의 삶을 살다 죽었을 것이 확실하다. 지옥을 봄으로써 극락을 보았고, 세상 많은 생명에게 불성(佛性)을 가지게 하였다. 지옥과 천국을 인식하는 것은 여반장이다. 세상이 극락이라고 여기면 극락이고, 지옥이라고 보면 지옥이다.


길을 가다 보면 어느 특정인을 믿으라고 강요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를 영접하면 좋은 데 간다는 말에 처음에는 귀가 솔깃했었다. 요즘은 ‘당신은 언제 다녀왔냐?’고 묻는다. 천국과 지옥은 누구를 믿어서 가고, 안 믿어서 못 가는 게 아니다. 살아 있을 때 스스로 만들어서 갔다 오면 된다. 이승에 있을 때도 극락을 누리지 못했는데, 나중에 좋은 데 간다는 말은 어찌 보면 사치가 아닌가.


지금도 인도의 바라나시 어느 사원 앞에는 세 모녀가 굶주림과 추위에 떨면서 지나가는 이방인들의 선처를 우묵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고 있을 것 같다. 또한, 어떤 브라만 계급은 양팔에 아름다운 여인을 끼고 앉아 남산 같은 배를 두드려 가며 세월이 너무 빨리 흐른다고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고 있을 것 같다. 임은 과연 공평한가 의문이 간다.


무굴제국 베감 왕비의 화려한 대리석 무덤에 매년 수백억 원을 쏟아부으며 관리하는 것도 좋지만, 당장 굶주리는 생명에게 빵 한 조각 제공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인 복음이 아닐까 싶다.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딸들에게 인도의 극과 극을 달리는 모습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며 ‘너희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큰 복’이라고 했다.


딸들은 나의 이야기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아무리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하면 무엇하랴. 한동안 나 혼자 인도의 세 모녀를 잊지 못할 듯싶다. 인도에 겨울이 없길 망정이지 만약 그곳에 찬바람이 불고 백설이 쌓인다면 어찌 될까.


“헬로 헬프 미, 헬로 헬프 미, 헬로, 헬로오….”

한국 전쟁통에 아이들은 미군을 졸졸 따라다니며 ‘초코렛트 기브 미’를 외치는 장면이 세 모녀와 오버랩된다. 인도의 날씨는 계속 따뜻해야 할 텐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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