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입을 때보다 벗을 때가 좋다.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고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리라.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나이트가운이나 가벼운 속옷 차림으로 꿈나라로 향하는 순간이 어이 즐겁지 아니하랴.
정장 차림으로 직장으로 향할 때마다 경직된 순간의 연속이다. 거울 앞에서 나 아닌 나를 꾸미며 직장에서 요구하는 제3의 인물을 창조한다. 나 자신을 타인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도구는 옷이다. 또래보다 키가 크고 날렵한 몸매 덕분에 어떠한 정장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정장이 여러 벌이다 보니 당연히 넥타이도 수십 개가 있다. 이 순간에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넥타이들이 장롱 속에 잠들어 있다.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주인의 손길이 닿은 넥타이는 영광이다. 옛날 수백수천의 궁녀들이 나라님 눈에 들지 못하면 궁궐에서 늙어 죽거나 출궁 되듯 주인 목에 걸려 보지 못하고 버려진 넥타이가 꽤 된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어쩌면 인간을 가식적이거나 속박의 틀에 얽어매는 수단의 하나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으리라. 옛날 계급사회에는 옷으로 사람의 신분을 구분 지었다. 왕후장상은 화려한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고 천민이나 노비는 무명 치마저고리 한 벌이면 만족해야 했다.
군인들은 군복을 입어야 군인답고 경찰은 경찰복을, 학생은 학생복을 입어야 제 역할을 하거나 스스로 틀에 맞는 행동을 한다. 교복 자율화를 시도했던 많은 학교가 어느새 교복 착용을 의무화했다. 날개를 버렸으니 새가 제대로 날아갈 리가 없기 때문 아니겠는가? 군인들이 군복이 아닌 청바지에 붉은색이나 파란색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면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리라.
유년 시절 넉넉한 가정에서 자란 나는 설날이나 추석이 올 때를 은근히 기다리곤 했다. 그 시기가 되면 설빔이나 추석빔으로 근사한 옷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빔을 입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리면 주머니는 금방 두둑해졌다. 요즘에는 부모들이 명절이라고 자식들에게 옷을 사 입히는 일은 거의 없다. 아이들이 용돈을 모아 알아서 사 입는다. 옛 생각을 하면 부모로서 자격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다.
요즘 명품이니 모피코트니 하며 수백만 원에서 웬만한 중소도시 집 한 채 값과 맘먹는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러한 고급 브랜드를 몸에 걸쳐보지 못한 나에게는 꿈속의 일 같다. 옷이란 사람의 체온을 적절하게 유지하며 햇빛이나 바람, 눈비로부터 피부를 보호해 주고 치부를 가려주면 된다.
현세에서 아무리 권세와 돈이 많았던 사람이라도 저승에 갈 때는 수의(壽衣) 한 벌 걸친다. 뼛골 빠지게 일해서 태산처럼 황금을 모아 둔 사람들은 억울해서 어찌 이승을 떠날 것인가?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자주 본다. 평생 쓸 줄 모르고 모으기에만 인생을 바친 불쌍한 사람들이다. 물론 그 자식들은 옥의옥식하겠지만 정작 본인은 제삿날이 되어도 배가 고프다.
한 지인은 부모가 물려준 유산으로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제사 때가 되면 종교가 이렇고 저렇다며 그 흔하디 흔한 술 한 잔 받지 못한다. 생전에 조상님 제사를 모시다 저승에 간 그의 부모가 얼마나 원통하고 기가 막히겠는가. 두 분이 걸귀(乞鬼)가 되어 다시 찾아올까 걱정이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옷을 하나씩 벗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입던 온 옷들이 얼마나 많던가? 청춘 때 입다 처박아 둔 옷, 시집 장가들면서 입었던 고급스러운 옷, 중년이 되면서 걸쳤던 중후한 옷 등등. 자신이 이 사회로부터 어느 정도 혜택을 입었으면 해마다 한두 벌씩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을 줄 알아야 한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덮어주고 후배를 위해 몸이 가벼워야 하는 데 반대로 나이를 먹을수록 금의(錦衣)를 걸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욕심으로 인하여 수많은 갈등요소가 음습한 사회의 뒷골목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그들은 분명 천년을 살리라.
아내와 종종 언쟁을 벌인다. 집안 정리하다가 장롱 안에 마치 수백 년 전통의 가보(家寶)라도 되는 양 쌓아둔 옷을 내다 버리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아이들의 배냇저고리, 초등학교 때 입던 옷, 아내가 처녀 때 입던 옷들이 순식간에 헌 옷 수거함으로 이동되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아내와 설전을 벌이고 한동안 집안 분위기가 험악스러웠다.
옷을 벗거나 헌 옷을 버리는 일도 때가 맞아야 한다. 너무 늦거나 이르면 자신뿐만 아니라 혜택을 입을 사람들에게 효과가 반감되거나 전혀 효험이 없게 된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어 타인에게 시각공해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초승달이 뜨는 밤, 망측한 상상을 해본다. 치마저고리는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아름다운 곡선이 창문에 비치는 환상적인 모습……. 풍진(風塵)이 잔뜩 쌓인 옷을 벗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