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하늘에 집 짓는 방법
우리는 *피차(彼此)에 살면서 몇 채의 집을 장만해야 할까?
그럴듯한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해 늘 불안해하던 K는 청산 아래 꽤 괜찮아 보이는 집을 마련하였다. 좋은 집을 마련한 그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이는 없었다. 나는 K의 새로운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넋을 잃었다.
때마침 서설이 내려 무거운 침묵과 오열에 눌려 있던 K의 피붙이들은 다소 마음이 가벼워 보이는 듯했다. 눈은 곧 함박눈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세상을 설백천지백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1,2차 베이비붐 세대들은 의식주에서 유독 주(住)에 욕심을 보였다. 그들의 성향을 잘 아는 어떤 정치인은 주택 2백만 호 건설계획을 앞세워 호응을 얻어내기도 했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인생의 황금기에 번듯한 집 하나를 꼭 장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인생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은 집 장만에 발목이 잡혀있어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음식, 입고 싶은 옷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걸쳐 보지 못했다. 전후(戰後) 가장 활동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딱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은 결혼하고 빠른 시일 안에 집을 장만하지 못하면 우후죽순처럼 자란 아이들의 교육비에 허덕이게 된다는 것에 큰 부담을 가지기도 했다.
부모에게 재산을 어느 정도 물려받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은행에서 십 년 이상 장기 저리융자를 받아 집을 마련하고 매달 봉급에서 꼬박꼬박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는 딱한 청춘들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잠시 다른 데 시선을 돌리면 제대로 된 집을 장만하기 어려운 게 베이비붐 세대들의 현실이었다. X세대나 밀레니엄 세대와 현격한 차이가 있다.
K도 청운의 뜻을 품고 일찌감치 가산(家産)을 정리해 고향을 떠났다. 한때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공장을 운영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IMF 사태는 우리 이웃들에게 눈물과 고통을 강요하였다. K도 그 고통의 행렬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수년의 고생 끝에 생활의 여유를 얻은 K는 집에 유독 강한 집착을 보였다. 그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허리끈을 졸라매고 결국 괜찮은 아파트를 마련했다. 불안했던 임시직에서 정규사원으로 전환되면서 그는 심신의 안정을 찾았다.
운명의 여신(女神)은 선량하거나 어려운 자에게 다정다감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다. K는 회사원들과 빌딩 숲에서 회식을 마치고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자리를 옮겨 여흥을 즐기고 귀가하다 계단에서 실족하여 10미터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머리가 콘크리트 벽 모서리에 부딪히면서 두개골이 파손되는 중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K은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워낙 크게 다쳐 회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중도에 수술을 포기했다. K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가 다음 날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는 고향 선산에 묻혔다. 그의 처와 자식들의 피를 토하는 통곡에 산천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살아있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죄인이 된 친인척과 지인들은 한동안 먼 산만 바라봐야 했다. 겨울 들녘에 쓸쓸히 서있는 K의 붉은 집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지금도 내 귀전에는 울음의 파도가 넘실대고 있다. K가 영면하고 있는 민둥산 같은 무덤을 보고 나는 이승의 집과 저승의 집에 대하여 한동안 골몰했다. 누구든 황혼에 접어들면 안식을 누릴 집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십 년간 거주해 오던 집을 축소해야 한다. 자녀들이 성년이 되어 각자 배우자를 찾아 독립하기 때문에 관리비가 많이 나오는 큰 집이 필요 없다. 자녀를 출가시킨 대다수의 황혼에 접어든 부부들은 경치 좋고 의료시설이 가까이 있는 곳으로 집을 축소해 옮겨간다.
고령에 접어든 사람들은 또 하나의 집 걱정을 하게 된다. 바로 내세(來世)에 머물 집이다. 내세에 머물 집은 신분의 고하와 재산의 다소 혹은 사회적 존경 여부의 정도에 따라 규모가 달라진다. 물론 화장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많이 희석되기는 했다. 나는 서울 근교에 위치한,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그의 후손들이 잠든 동구릉(東九陵)을 비롯하여 서오릉(西五陵)을 자주 찾는다.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된다. 한때 조선팔도를 호령했던 나라님들의 유택을 보는 순간 그 규모와 뒤로 펼쳐진 수려한 산세에 압도당하고 만다. 대부분 능(陵)은 작은 산 언덕 크기로 조성되어 있다. 왕은 저승에 들더라도 왕의 대접을 받는다. 영혼의 영역을 나오면 근처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 숲이 즐비하다.
왕릉 하나는 평민의 묘 수백 기(基)는 충분히 조성하고도 남을 공간이다.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노송들이 마치 왕이 살아생전 왕을 보필했던 문무백관들 같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왕들의 화려한 유택 관리에 후세의 고혈이 쓰이고 있으니 참으로 묘한 일이다. 저승에 들고도 이승에 재산을 남기니 아이러니다. 그런 부조화를 보면 마태복음 제6장 중 세 구절이 생각나곤 한다.
6:19. 너희 자신을 위하여 땅에다 보물을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녹이 해치며, 또 거기는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도둑질하느니라.
6:20. 오히려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녹이 해치지도 않으며, 또 거기는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6:21.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
매장된 인간의 육신은 소위 명당이라 불리는 묘혈의 경우 백 년이 지나면 거의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K를 장사 지내고 온 나는 발칙한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늘의 별만큼 반짝이는 서울의 저 빌딩 숲에 내 집은 어디 있을까? 마태복음처럼 나는 어떻게 하면 훗날 나의 유택을 하늘에 지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타(利他)를 위한 선행이 곧 천국에 집을 짓는 일이라고
진시황처럼 하해 같은 백성들의 피로 지하에 아방궁을 지어도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철근콘크리트도 백년 지나면 분진(粉塵)이 되고 만다. 아무런 대가 없이 그날까지 묵묵히 선행을 하다 보면 누군가 창공에서 반짝이는 안드로메다 공주 곁에 예쁜 별자리 하나 만들어 줄지 어찌 알랴.
-끝-
* 본 글 도입부의 피차는 현생과 내세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