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거나 외모에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거울을 안 보려고 한다. 죄 많은 나 역시 거울을 잘 안 보는 부류에 속하는 편이다. 거울을 가장 많이 보던 때는 사춘기였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얼굴이 깨끗한 편이었지만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갈밭 같은 옆 친구의 얼굴과 비교하며 속으로 안도하곤 했다.
요즘은 홀로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외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남이야 뭐라고 하든 말든 내 일만 하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경쟁 사회에서 낙오자이며 스스로 패배를 인정한 사람이다.
전 국민이 카메라가 부착된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서로가 찍고 찍히는 파파라치 세상이 된 것이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하루 평균 수백 차례 CCTV에 자신의 모습을 노출하고 있다. 대로, 골목길, 전철역, 버스터미널, 공항, 대형쇼핑몰, 극장, 백화점, 지하상가 등등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초상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일명 '몰카'의 세상이 되었다.
나는 노래의 가사처럼 ‘거울도 안 보는 여자’를 아주 싫어한다. 물론 대부분의 여인들은 핸드백에 거울을 넣고 다니며 필요한 때 꺼내 보며 자신의 외모를 살 핀다. 버스 안이나 전철 내에서 내 앞에 앉아 거울을 보는 여인네가 있으면 나는 얼른 두 눈을 질끈 감고 그녀가 화장을 마칠 때까지 자는 척한다. 얼마나 바쁘면 거울 볼 시간이 없어 차 안에서 볼까.
10분 후에 눈을 떠 보면 전혀 다른 예쁜 여인이 새침하게 앉아있다. 나는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짓고 그 여인을 슬그머니 쳐다본다. 얼굴은 그 사람의 경제적 상태, 교양, 사람 됨됨이, 직업 등을 은연중에 대변하고 있다. 얼굴이 맑고 부드러우며, 은은한 미소를 띤 경우라면 그 사람은 분명 모든 면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고 보면 틀림없다.
얼굴이 거머무트름하고 험상궂은 사람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물론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 그런 경우도 간혹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얼굴이나 외적 요소로 봐서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수천만 원 호가하는 모피 코트를 걸쳤거나 루이비통 같은 가방을 든 여인을 보면 혼란스럽다.
나는 화장을 예쁘게 하고 살이 피둥피둥 찐 복스러운 얼굴을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최소한 타인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주변의 시선을 오염시키지 말아 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예쁘게 화장한 얼굴은 자기 자신을 감추거나 언밸런스 한 부위를 보충하기 위한 자기 연출의 한 방법이다. 낮도깨비 같이 튀는 화장이나 롯뽄기의 신인류 같은 비범한 의상은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자신은 멋을 냈다고 하지만 옆 사람은 도망치고 싶다. 자연스러움은 최고의 미(美)이며 진리가 아닐까 싶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 조금의 가식 없이 그 사람의 현재 모습을 보여준다. 인류의 발명품 중 나는 거울을 제일로 꼽는다. 만약 거울이 없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내가 나의 모습을 인식한 나이는 대략 다섯 살 쯤이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거울을 본격적으로 사랑하기 시작하였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대략 수십 번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어떤 날은 학교 수업시간에 거울을 보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꿀밤을 얻어맞고 거울을 빼앗긴 적도 있었다. 어설픈 첫사랑의 씨앗이 움틀 무렵 나는 거울을 끌어안고 살았다.
그녀를 수업이 끝난 저녁이나 늦은 밤에 남몰래 만나면서 거울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야 했다. 낮에 얼굴 볼 일도 없는데 거울을 사랑했던 당시의 일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그녀는 늘 고개를 푹 숙이고 나도 수줍어 고개를 반쯤 숙인 상태에서 우리는 만나곤 했는데 온종일 왜 거울을 들여다보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다.
옛 시를 보면 보름달이 뜨는 밤 먼데 나간 낭군을 기다리며 여인은 목욕재계하고 화사하게 꽃단장한다. 눈썹은 초승달처럼 가늘고 서럽도록 짙고 입술은 오뉴월 붉은 장미보다 붉고 뜨겁다. 아랫목에는 두툼하고 푹신한 요를 깔고 그 위에 비단이불을 덮어 놓아 방 안이 훈훈하다. 낭군이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기약한 날짜는 아직도 멀었건만 여인은 혹시 하는 마음에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장을 한다.
달이 서산에 걸터앉을 때까지 여인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어쩌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라도 들리면 버선발로 달려 나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동구 밖을 응시한다. 앞산에서 잠을 잊은 소쩍새가 서럽게 울면 낙심한 여인은 눈가를 촉촉이적신 눈물을 찍어내며 발걸음 느린 낭군을 원망한다.
여인은 아침부터 옹달샘보다 더 맑고 깨끗한 경대 앞에 앉아 복숭아꽃보다 더 화사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으리라. 또한, 낭군에게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보일까 고민하며 거울에 비친 옷맵시를 이리저리 살폈으리라.
예전에 거울은 여인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곤 했다. 그러나 이즈음 거울은 남녀 공용이 되었고 어쩌면 여인들보다 사내들이 더 애용하고 있다. 메트로섹슈얼리즘 덕분이다. 여인들 못지않게 사내들도 눈을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거울의 노예가 된다. 집, 자동차, 화장실, 버스나 전철 안, 회사 등 거울이 없는 곳이 없다. 이승에는 이처럼 수많은 거울이 있지만, 우리가 정작 보고 싶은 거울은 저승에 설치된 업경대(業鏡臺)가 아닐까.
업경대에 비칠 자신의 모습을 걱정하는 이가 과연 있을까 싶다. 불교관에서 망자(亡者)가 저승에 들면 염왕(閻王) 앞에 불려 가 업경대 앞에 선다. 왕은 망자에게 생전에 악행이나 선행(善行)을 묻는다. 이때 열이면 열 명 모두 생전에 하지도 않은 선행을 하였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침소봉대하여 호언한다. 인간에게 실망한 염왕은 망자가 살아생전의 일들을 명명백백하게 비춰주는 거울을 고안해 낸다.
인간이 발명한 물건 중에 거울이 으뜸이지만 그보다 더 으뜸인 것은 내세(來世)의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업경대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고 해도 어찌 업경대를 만들 수 있으리. 나는 오랜 고민 끝에 현세에서 저승에 들었을 때 생전 자신의 모습을 미리 볼 수 있는 업경대를 발견하였다. 누구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주 간단하다.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 저승에 들면 볼 수 있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나, 내 것, 내 자식, 내 마누라, 우리 가족, 우리 형제……, ‘나’와‘우리’라는 집합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즉 자신이 만들어 놓은 동굴에 갇혀 동굴에서 볼 수 있는 하늘이 우주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은 저승에 들면 명경대를 안 보는 게 좋을 듯하다. 그 명경대에 비친 자신의 이기적인 생전 모습을 본 염왕의 대로한 모습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이타(利他)를 모르는 망자는 삼악도윤회의 굴레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듯싶다.
현재의 내 모습은 전생과 후생(後生)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이다. 우리는 백천만겁 동안 혼령의 상태로 우주 공간을 유영하다가 선연(善緣)으로 인하여 어렵게 인간의 몸을 받아 이승에 태어났다. 그런 귀중한 생명으로 살면서 천지신명의 은혜를 까맣게 잊고 오로지 ‘나’와 '내 새끼', '내 가족'만 우선시하며 타인을 백안시한다. 그 결과로 먼 훗날 내생에는 축적된 악한 기운으로 인하여 인간이 아닌 짐승이나 귀신으로 태어난다면 얼마나 원통할까.
나는 물, 바람, 불, 흙이 만들어냈으므로 천지신명에게 감사한다. 내가 말하는 천지신명이란, 천지를 포함한 삼라만상이다. 내 자식도 내 몸을 빌렸을 뿐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조물주가 나의 열정과 아내의 자궁을 빌려 현상 세계에 나오도록 점지해 줬을 뿐이다. 다만, 사람이성 씨(姓氏)를 만들고 족보를 만들어 소유의 개념으로 굴레를 만들어 놓았다.
한평생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짐을 들어주거나,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성금(誠金)을 내어 선행을 베풀지 않는 사람이 예상외로 많다. 세상에 내 것이란 애초부터 없고, 내 것을 소유해서도 안 된다. 다만 잠시 빌릴 뿐이다. 진시황제가 수만 명의 아리따운 궁녀와 아방궁을 저승에 가져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최근에 발견된 그의 지하궁전은 그의 치기이며 수많은 숫백성의 고혈을 짜낸, 쓸데없는 억지에 불과하다.
찬 바람 부는 밤, 어떤 사람은 잠잘 데가 없어 풍찬노숙하다 염왕의 사자에게 소리 없이 잡혀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함포고복하며 주지육림 속에서 웃고 있다. 저 달님은 홍진을 굽어보며 야속하게 미소만 짓고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거울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미소년은 어디 가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 낯선 사내가 측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