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남자 친구

by 최재효


[에세이]









아내의 남자 친구







“우리 친구 할까요? 아니면 애인 할까요?”
“애인은 피곤해, 친구가 좋아요.”


선배의 주점 개업장소에서 선배로부터 창작한다는 X를 소개받았다. 명함

을 주고받고 쌓인 세월을 조사해 보니 생년월이 같았다. 나의 농 섞인 첫 인

사에 그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받아넘겼다. 외모는 연륜

에 어울리지 않게 소녀 티가 났다. 미혼 시절 꽤 많은 사내들 애간장을 녹였

을 것 같았다. 지성과 야성이 반반 섞인 모습에서 야릇함을 느꼈다.


머리에 한창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눈빛이 강렬했을 때 이웃 마을에 사는

한 살 아래 여학생과 우연히 눈이 맞아 청포도 같은 연애를 시작으로 해서

결혼하기 전까지 여러 명의 친구 아닌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이성이 있었다.

그중에는 나 보다 연상도 있었고 같은 또래도 있었다. 나에게는 한 두 살 아

래 이성이 여러 면에서 잘 맞았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여자 친구라는 단어가 왠지 어색하게 들렸고 강하게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성에 대하여 관심이 날로 고조되어 가는 시기

에 친구보다는 애인이나 연인이 더 잘 어울릴 법했다.


결혼 후 오로지 한 여인만 바라보고 살아온 삶에 후회하거나 뭔가 부족하다

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죽마고우들이 모교에서 다시 뭉친다는 소식이 들렸

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수십 년 만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교정은 최신식 건물로

변해있었다. 그간 모교에 대한 무관심에 나는 잠시 숙연해 졌다. 나는 옛 벗들

이 모인다기에 불알친구들만 생각했었다.


뜻 밖에도 남자동창생들보다 여자동창들이 더 많이 참석하였다. 나는 잠시 당

황하였지만, 이내 지나간 수십 년 시공을 까맣게 잊었다. 대부분의 여자 동창들

얼굴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코흘리개 계집애들이 어떻게 퉁퉁한 아줌마로

변신했는지 신기하면서도 세월의 무정함에 서글픔이 밀려들었다. 간단한 몸 풀

이 운동이 끝나고 이어진 뒤풀이 장소에서 수십 년 전 계집애들은 어엿한 나의

여자 친구로 새롭게 다가왔다.


한동안 생소하던 여자친구라는 단어가 차차 귀에 익고 입에 달라붙으면서 늘

사용했던 소품처럼 되었다. 여자 하면 애인이나 연인쯤으로 생각해 오던 오랜

관습의 틀이 깨진 것이다. 각종 경조사에서 남자동창생보다 여자동창들이 더

열성적으로 얼굴을 내밀고 행사도 적극적이어서 오히려 남자 동창들 보다 가

까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얼마 전 나는 위암 수술을 받고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때도

나에게 용기를 주고 따뜻한 말을 건넨 이들은 바로 고향 여자 동창생들이었다.

남자 동창들이 사무적인 말투인 반면 여자 동창들은 마치 자기 자식을 대하듯

세심한 부분까지 관심을 보이며 물어왔다. 나는 그때 ‘아, 나에게도 여자친구

가 있었구나.’ 콧등이 시큰거렸다. 요즘도 여자친구가 된 동창생들이 나의 건

강상태를 자주 물어온다.


우리의 정서로 볼 때 과연 ‘여자 친구가 가능할까?’라는 우문(愚問)을 하게 된

다. 어떤 사람들은 ‘친구에서 애인 혹은 연인으로 변질되기 쉬운 대상이 여자

아니냐?’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사춘기부터 결혼 전까지는 그 같은 말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을 수 있다. 한 가정을 책임지고 사회적으로 주요 구성원이면

서 심지(心志)가 굳은 사람이라면 당당하게 이성친구를 둘 자격이 된다.


심지라는 것에 강한 불쾌감을 보이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배우자가

지연, 학연, 직연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언제까지 죄인 처럼 남의 시선을

피해 가며 애인이 아닌 이성 친구를 만나야 할까. 오히려 배우자가 심지가 굳다

면 당당히 이성 친구를 대하도록 배려해야 하는 미덕도 중요하다. 반대의 경우

에는 갈등의 소지가 다분하다.


인터넷 속의 사이버 세상이 생활의 일부가 된 요즘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녀가

한데 어울려 다정하게 이름 부르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거의 초등학교 동창들

모임이 틀림없다. 결혼하고 직장 다니며 아이들 뒤 바라지 하느라 수십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창들을 만나는 아름다운 장면들이다. 나는 초등학교 동창들 친

목회를 사이버에 카페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꼭 초등학교나 중, 고등학교 이성동창을 친구라고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 취

미가 비슷하고 나이가 비슷한 연령대면 모두가 친구 아닌가. 단지 서로를 바라

보는 시선의 강약(强弱)에 따라 뒤늦은 가슴앓이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

디까지 개인의 심지에 달린 일이다. 친목회나 동창회 모임으로 늦게 귀가하는

배우자에게 의혹의 시선은 서로를 피곤하게 한다.


나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면 아내에게도 남자 친구가 있다. ‘남자인 나에게 여자

친구는 괜찮지만 아내에게 남자친구는 안돼.’라고 한다면 너무 이기적인 처사 아

닌가.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아내는 가끔 동창들 모임이 있다며 사나흘

전에 예고한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 다녀오라고 한다. 처음에는 불쾌

한 생각이 들면서 ‘혹시 이 여자가 동창회 핑계 대고 다른 남자 만나는 거 아녀?’

하고 의혹의 시선을 보낸 적도 있었다.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면 의외로 아내의 외출이나 친목회 혹은 동창회 참석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배우자들이 꽤 있다. 아내가 약간 늦게 귀가하면 ‘몇 시에

어디서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먹고 어디로 자리를 옮겨서 몇 시까지 무엇을 하였

는 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럴 경우 아내들은 어쩌다 늦게 들어온 일로 대역죄인

이 되어 한 동안 남편의 눈치를 살피기도 한다. 사소한 의심은 태산 같은 의심을

키우게 마련이다.


이런 부부에게 있어 배우자의 이성 친구는 곧 전쟁을 의미한다. ‘너는 오로지

나 하나만 바라봐야 한다’라는 극단적인 지배의식은 곧 비극을 초래한다. 서로

행동에 조심도 해야 하겠지만 무조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낼 경우 자신과 가족에

게 불안과 초조의 연속에서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깨진다. 이 처럼 불합리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지닌 부부는 이미 예전의

부부가 아니다. 주변에 그런 남자가 있는데 결국 독거 세대가 되고 말았다.


‘마누라에게 남자 친구는 절대 있을 수 없어.’라고 단정 짓는 남자는 자신에게

도 역시 ‘나는 아내 이외에 여자 친구는 필요 없어.’라고 자신과의 맹약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같은 태도는 주변 사람에게 큰 횡포이고 자기 기망이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좀생이 같은 사내들이나 하는 파렴치한 행동 아닌가.


아직도 부창부수를 외치고 삼종지도를 그리워한다면 모계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이 시점에서 각성이 필요하다. 비 온 뒤 귀찮을 정도로 바짓가랑이에

달라 붙는 가랑잎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기혼 남녀에게 있어 애인은

남모를 고통이며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워야 하는 대가가 따른다. 애인은 배

우자 한 명이면 되지만 좋은 이성친구는 다다익선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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