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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있어야 천국이 있다 -수필
01화
집 사람과 아내
by
최재효
Apr 22. 2023
[에세이]
집사람과 아내
어머니는 평장계 논에 모를 내는 날이면 전날부터 눈코 뜰 새가 없었다.
50여
명이 넘는 일꾼들에게 제공할 밥과 반찬을 준비해야 했다.
어머니가 바빠지면
이웃 아낙들도 덩달아 부산하게 움직여야 했다. 코흘리개
꼬마였던 나는 으레
어머니의 명(命)을 받아 주막거리로 달려가 일꾼들에게
제공할 막걸리를 주문해야 했다.
아버지는 언제 들녘에 나가셨는지 농번기 때면 어린 막내아들은 아버지 얼굴
을 자주 보지 못했다. 많은 농사짓는 아버지는 어머니의 내조가 절대적이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함께 기거하는 안방에서 잠을 잘 수 있는 특권을 누린 막내
아들은 두 분이 잠자리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어머니를 ‘임자’라 호칭하였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즈네아부지’
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이나 외부인(外部人)에게는 어머니
를
‘집사람’으로 통칭하며 소개하곤 했다.
두 분의 정겨운 호칭을 들으며 자란 나는
요즘 들어 막 가정을 꾸린 신혼부부
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상대에 대한 호칭에 대
하여 고민하고 있다.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대부분 농업을 위주로 편성되어 있었
다. 국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농자(農者)는 천하의 근본”이라고 생각하
였다.
이 구호는 수 천년 동안 우리 백의민족의 좌우명처럼 인식되었다. 농사일
은 노동력이 풍부한 대가족에게 유리한 업종이다.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
남. 녀
의 가사분담은 분명했다.
수렵이나 방목(放牧) 문화에서 보다 정착문화의 기본이 된 농업에서는 여성
의
가사 비중이 확대되었다. 완력이 살아가는데 기준이 되는 남자들은 주로 들
녘에서 활동하였다. 반면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여자, 즉 아내들의 몫이 되었
다.
그때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만약 서남아시아 몇몇 나라처럼 남. 녀의 역할 이 바뀌었다면 여자들은 집
에 있는
남편을 ‘집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싶다.
직장 내에서 나는 자주 거북스러운 말을 듣는다. 그 듣기 민망한 말을 아무
렇지
도 않은 듯 내뱉는 사람이 50대에 접어든 나이라면 그런대로 이해가 된
다. 이제 갓 결혼한 남자들이 자신의 부인에게 ‘집사람’이라고 부를 때 나는
그 직원의 아내가 집에서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대개는 맞벌이다. 요즘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원하기 때문에 집
에서 가사만 하는 전업주부로서 아내를 원하지 않는다.
와이프, 마누라, 애 엄마, 아내, 내자, 집사람, 안사람……. 언어가 풍부한
덕분
에 우리는 아내를 제삼자에게 소개할 때 다양한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
외래어인 와이프는 어딘가 모르게 싸구려 같은 느낌이 들고, 마누라는 천박
하며 약간은 배우자를 무시하는 감이 든다.
나는 결혼하고 20년 동안 ‘애 엄마’나 ‘와이프’로 호칭하였지만 요즘은
‘아내’
로 통칭하고 있다. 아내라는 말의 어원이 '내 안의 해'이다.
신라 신대 노래 처용가(處容歌)를 보면
'... 둘은 내 해로되 둘은 뉘 해런
고...', 여기서 해는 '태양,
sun'이 아니라 'thing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안해→ 안것 →아내' 약간은 묘한 약간의 뉘앙스를
풍기지만 내 생각에
는 수많은 호칭 중 가장 무난한 듯싶다.
신세대 남편 중 맞벌이하는 자신의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밖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는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하니 앞.
뒤가
안 맞는 소리 아닌가.
다시 한번 남자들은 배우자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호칭
에 대하여 심사숙
고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농경문화를 위주로 하는 정착집단 가족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
한 여자들도 당당히 직장인으로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핵가족
문화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아내를 집에서 밥
하고 빨래나
하며 애를 보는 식모쯤으로 여기고 있으니 어찌 마음이 편할까.
아직도 이 땅에는 자신의 아내를 남자의 종물(從物)로 여기는 남자들이
많다.
아마 그것은 오래전부터 고리타분한 일부 남자들의 뇌리에 부창부수
니 남존여비니, 삼종지도니 하는 구시대 발상을 떨쳐버리지 못한 결과이
리라.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가장(家長)으로서 지위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
는 일부 남자들의 고질병적 의식상태에서 기인하고 있다. 이제 여자들은
집에서 밥이나 하고 빨래만 하는 생활에 만족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여성장관, 여성장군이 등장하고 있으며 어떤
나라에서
는 여성 대통령도 등장한다. 딸만 셋인 나 역시 두 아이들이 결혼
후 집에서 밥이나하고 빨래나 하며 자신의 소질을 썩히고 있는 것을 원하
지 않는다.
어떤
청년이 나의 사위가 될지 모르지만 결혼 전에 청년을 불러 소주잔
을 나누며 넌지시 배우자에 대한 사랑의 강도(强度)와 호칭, 가문의 뿌리
등에 대하여 묻고 대답이 시원치 않을 경우 단호하게 혼사를 없었던 일로
하거나 회초리를 들어
호되게 훈육시킬 예정이다.
신세대들은 어느 한 지역에 정착하여 완력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던 부
계(父
系) 중심의 농경문화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헌법 제14조에서 보장한
‘거주 이전의 자유’에 따라 마음에 드는 곳에서 살고 있다. 대가족제도가
해체되면서 핵가족이 사회의 최하 구성단위가 되었다.
바야흐로 청동기시대 이후 남자 중심의 부계사회에서 수천 년 만에 여자
중심의 모계사회(母系社會)로의 회귀인 셈이다. 모계사회에서는 제천의
식(祭天儀式)에서 제사장은 여성이었다.
딸을 시집 보낸 장모는 두 손을 비비며 사위의 눈치를 보던 때가 엊그제
였다.
이제는 대세가 역전되어 장모는 사위에게 큰소리치며 사위에게 조금
의 잘못이라도 있으면 가차 없이 질책을 한다.
처갓집 씨암탉 이야기는 전설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마음에 걸리는 일은
마마보이들이다.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큰 마마보이들이 거칠어진 요즘 장
모의 독수리 발톱 같은 시선과 간섭을 잘 견뎌낼지 의문이다.
수신제가(修身齊家)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이끌기 위해 선행될 일은 배우
자에
대한 호칭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녀평등하거나 가급적 존칭
의 뜻으로 불러주면 더 좋을 듯하다.
일상의 대화는 화자(話者)의 무의식에서 나온다.
2008년 1월 1일부터
발효된 개정 호적법은 남자들의 습관성 행동양식에 상당한 제동을 걸고
있다.
나무꾼의 비극을 재현하지 않으려면 늦은 감은 있지만 남자들은 배우자
에 대한
호칭부터 서둘러 바꿔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순간에도 양팔
에 두 아이를 안고 두레박을 타려고 마음먹는 누이들이 늘어가고 있는 슬픈
현실을 보고 싶지 않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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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담배를 피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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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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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금진
저자
문학을 전공했고 소설과 수필을 창작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시대 사료 발굴하여 작품화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친구하고 싶습니다. 찾아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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