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 귀신

by 최재효


[에세이]









봉투 귀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며 꽃이 지고 필 때면 봉투와의 전쟁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다.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하여 감옥에 갇힌 춘향이 이몽룡에게 연서를 보낼 때 쓰였던 봉투는 눈물 자국이 찍혔을 테다. 군에 간 아들이 부모님에게 소식을 전하거나, 군에 간 아들의 무사를 비는 어머님의 정성이 가득 담긴 서신을 담은 봉투에도 눈물 얼룩이 묻어있을 테다.



인터넷이 없었던 예전에 봉투는 멀리 있는 정인(情人)이나 혈육에게 그리움과 정을 담아 보내던 소중한 존재였다. 그렇게 기다려지던 봉투가 이제는 저승사자처럼 두려운 대상으로 변질되어 착하고 어려운 이웃들의 어깨를 사정없이 짓누르고 있다. 요즘 봉투의 상당수는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변신하여 때를 가리지 않고 슬그머니 배송된다. 하지만 관공서에서 보내는 각종 서류는 여전히 봉투에 담겨서 배달된다.



봉투는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불행의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다. 나는 요즘 우편함에 꽂힌 봉투를 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아직도 전통을 고수하는 분들이나 예의를 찾는 분들은 봉투를 선호한다. 특히, 가을이 시작되어 봄이 완전히 자취를 감출 때까지 늘 불안하다.



이 기간에 봉투로부터 격리되거나 협박을 받지 않는 이웃이 있다면 복(福)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 기간은 외부 활동이 많은 지아비가 지어미의 눈치를 보며 꽁무니를 슬그머니 내리는 고통의 나날들이기도 하다.



하루가 멀다고 날아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의 봉투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아무리 이사를 해도 요즘 온라인봉투에는 위성항법장치인 GPS가 장착되어 정확히 전달된다. 성년이 된 대한민국 사람은 봉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침 10시쯤 일어나 커피를 홀짝거리며 TV나 신문을 보고 있어야 할 주말 아침에 나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면서 거울을 본다. 아래위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침대로 몸을 던져 단잠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어찌하랴 세상에서 왕따가 되지 않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면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세파에 휘둘려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버스와 전철을 번갈아 탄다. 상의 안 주머니에는 여러 개의 봉투가 들어있다. 아들을 결혼시킨다며 꼭 오라고 세 번씩이나 전화를 한 고향 선배에게 줄 봉투, 친목회원 딸 결혼식에 건넬 봉투, 직장동료 부친 미수연(米壽宴)에 전달할 봉투. 한 줌도 안 되는 태산같은 무게에 허리가 휜다.



전철에 앉아 눈을 감으니 웃음이 난다. 십 년 넘도록 한 번도 연락이 없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온 선배의 후안무치, 안 오면 곧 단교라도 할 듯한 친목회원의 협박성 멘트, 직장동료의 애교 가득한 미소. 나는 일찌감치 주말 아침에 늦잠 잘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해야 했다. 전철에서 앉아 졸더라도 세태에 순응하는 길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봉투와 전쟁 중이다. 두 종류의 우편함으로 배달되는 봉투들은 하나같이 시커먼 마수(魔手)를 내밀고 있다. 그 시커먼 손을 제때에 달래주지 않으면 곧바로 살벌한 말과 함께 무쇠 주먹으로 변해 돌아온다. 누군들 그 괴력에 대항할 수 있으랴. 일 년 내내 등골이 휘도록 일하는 목적이 봉투에 담겨 배달되는 시커먼 주먹을 달래기 위함이 아닌가.



한 달 평균 나에게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우편함으로 50여 통의 봉투가 전달된다. 봉투의 횡포는 갈수록 더할 게 틀림없다. 얼마 전만 해도 지금처럼 봉투와 전쟁은 크게 신경 쓸 게 없었다. 당연히 보통 사람의 승리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신문명의 발전은 상상도 못 했던 많은 종류의 봉투를 만들어 냈다. 인터넷, 휴대전화, 자동차, 대여 가전제품, 공동주택, 보험, 건강보험, 도시가스, 상하수도 등. 편리한 기계와 인프라를 애지중지한 결과가 한 달에 한 번 나의 가슴을 쥐어박는다. 나의 등골을 빼먹고 사는 그것들은 백악기 ~ 고(古) 제3기 경계 시기에 멸종되었다가 환생한 공룡들이 틀림없다.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인가? 문명 발달은 인류의 일상을 편리하게 해야 하는데 실제는 고통의 무게를 가중하니 말이다. 문명이 비문명이 되고 말았다. 별로 필요하지 않은 이상한 물건들이 신문명이라는 이름을 달고 하룻밤 자고 나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그것들은 나에게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아양을 떤다. 그것들에게 잠시 정신을 팔면 곧이어 검은 손을 내밀며 청구서를 전한다.


까마득한 시절에 선조들이 에덴의 언덕을 내려온 게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산채(山菜) 먹고 한가롭게 낮잠 잘 수 있는 무릉도원이 너무 그립다 못해 천석고황이 되고 말았다.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각종 봉투로부터 탈출에 성공한 자연인이 부럽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신라나 백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살아보고 싶다. 강 건너 갑순이에게 보내는 연서는 두 가슴을 설레게 하고, 고향으로 보내는 아들의 서신은 어머니를 위로했다. 눈물 담긴 가슴 시린 서신이 사라지고 다양한 봉투에 주눅 들어 사는 나는 복 받은 걸까. 아니면 전생에 지은 죄가 많은 걸까.


이놈 봉투 귀신아! 대한민국에서 썩 물러가지 못할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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