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호랑이가 담배를 피워야….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호랑이가 담배를 피운다. 쉼 없는 정쟁(政爭)과 각종 시위로 뒤숭숭한 시국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전견명(全見明) 선사께서 저술한 삼국유사에 호랑이와 곰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호랑이와 곰은 그들을 토템으로 삼는 부족의 상징임을 눈치챘을 테다. 즉 곰이 환웅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곰을 상징으로 하는 부족과의 화합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서 웅녀(熊女)는 한민족의 어머니가 되었다. 유년시절 단군신화를 접했을 때 너무 신기하고 경이로워서 꿈에서조차 호랑이와 곰을 만나곤 했었다.
* 전견명 - 고려 충렬왕 때의 승려로, 보각국사(普覺國師)라고도 한다. 속성은 전 씨, 본관은 옥산(玉山), 속명 전견명이며, 처음의 자는 회연(晦然), 나중에 '일연(一然)'으로 바꾸었다.
사람들은 곧잘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하며 운을 뗀다. 호랑이가 사람이 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상쇄시키기 위하여 조상들이 호랑이를 이야기에 등장시킨 게 습관으로 굳어진 듯하다.
소년은 생전 처음 동물원에 갈 때 호랑이가 느긋한 자세로 긴 곰방대를 물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으르렁대며 사육사들이 던져주는 고깃덩이를 두고 동료와 사투를 벌일 뿐 담배는 피우지 않았다. 기대를 저버린 호랑이는 소년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중년이 된 옛 소년은 서울의 도봉산이나 북한산을 자주 찾는다. 중턱에 산재한 사찰이나 암자에 발길이 이어지면 산신각을 유심히 살펴본다. 산신령님 곁에는 꼭 백호(白虎)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의 백호는 곰방대를 물고 있지 않았다. 경기도 수원 팔달사(八達寺) 용화전 벽에는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긴 하다.
석기시대 우리와 유전자가 같은 동족 일부가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에 도달했다. 그들은 터전을 잡은 후에도 고향에 돌아오지는 않았다. 한 사람이라도 돌아와 신대륙 발견을 알렸더라면 아메리카 대륙은 한민족의 영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고금에 지어진 우리의 시가(詩歌)나 소설에도 술과 대등한 지위를 누리며 담배가 다양하게 묘사되었으련만…….
담배가 커피와 더불어 서세동점(西勢東點)의 대표 주자가 되어 무척 아쉬움이 남는다. 중국을 대표하는 이태백, 두보, 백거이, 왕유, 소동파의 작품 어디에도 담배가 시어(詩語)로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치원, 을지문덕, 이규보, 정지상, 황진이, 허난설헌, 허균 등의 시문에도 담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담배가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다시 아시아의 열도로 건너와 조선에 담배가 전해지는 시기는 정유재란이 끝나고 얼마 안 돼서였다. 남초(南草), 연주(煙酒), 상사초(想思草), 반혼초(反魂草), 영초(靈草)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리다가 인조 때 효종의 장인이자 우이정을 지낸 장유(張維)가 담배[痰排- ‘목구멍에 끈끈한 점액을 제거해 준다’는 뜻]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명칭이 고착되었다.
조선에서 담배가 여염이나 저자에 널리 퍼지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즈음이 되는데 조선에 억류되어 13년을 감금 생활하다 자신의 나라 네덜란드로 도망친 하멜(Hamel)은 조선 생활을 기록한 하멜 표류기, 일명 난주제주도난파기(蘭船濟州島難破記)에 '조선 사람은 담배를 좋아하여 아이들도 4~5세만 되면 담배를 피우며, 남녀노소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민간요법으로 담뱃가루나 연기로 병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고 오해했던 듯싶다. 가래와 담을 없애주는 약으로 소문 나면서 담배는 조선 백성들에게 혜성과 같이 나타난 영약이었을 법도 하다.
조선 후기의 각종 회화에 담배가 등장한다. 과거 시험장을 묘사한 김홍도의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를 보면 커다란 우산 아래 여섯 명의 선비가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그중 한 명이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이채롭다. 김득신의 파적도(破寂圖)를 보면 노인이 긴 곰방대 들고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뒤쫓는 긴박한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다. 신윤복의 주유청강(舟遊淸江)에는 술 취한 사내가 기생의 어깨를 감싸 안고 곰방대를 권하는 농염한 모습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바야흐로 조선에 담배의 전성시대가 도래하였다. 우리 민족에게 외래에서 수입된 물건이 이처럼 번개같은 속도로 전국에 퍼진 사례가 또 있었을까? 오죽 담배가 백성들 사이에 횡행하였으면 호랑이도 담배를 피웠을까? 조선 후기만 하여도 전국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로 민심이 흉흉했다. 그에 파생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날이야기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은 겨우 4백 년밖에 안 된다.
전기수(傳奇叟)들은 이야기 초두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을’을 가미하여 사람과 호랑이가 다정하게 앉아 담배를 피우는 상상을 하게 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아주 오랜 옛날, 단군이 통치하던 시대에 호랑이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개처럼 사람과 허물없이 지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과 친근하게 지내던 호랑이가 사람과 맞담배를 피우면서 자신을 인간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테다. 이야기꾼들은 불가능한 일을 마치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묘사하면서 청자(聽者)에게 흥미를 유발하려 했던 시도가 참으로 기발하다.
인간은 극도의 두려운 존재나 보이지 않는 대상을 미화하거나 희화(戱化)하는 특출 난 버릇이 있다. 예전에 어린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를 물으면 십중팔구는 호랑이를 꼽았다. 그만큼 옛날 아이들에게 호랑이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었고,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후손들에게 호랑이에 대한 경외심을 동화로 포장하여 전해 주었다.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 존재를 우리 조상님들은 민화(民畵)에 익살스럽게 묘사하여 두려움을 해학적 반전으로 친근감을 가지게 한 기지가 놀랍다. 호환(虎患)을 두려워하면서도 실제로 호랑이를 만나 혼이 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인터넷이나 각종 백과사전 덕분에 호랑이의 신령스러운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실제로 본 적이 없는 호랑이를 두려워하였다.
우리 민족에게 영물 같은 존재가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사라지고 없다. 단지 몇 마리의 시베리아 호랑이가 수입되어 동물원에서 볼거리로 전락하여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뿐이다. 그 옛날 사람과 마주 앉아 다정하게 담배를 피웠다는 호랑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요즘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무섭냐?’고 물으면 아마도 대부분은 ‘사람’이라고 할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휴대전화나 티브이를 통해 오늘의 뉴스를 본다. 톱 기사는 사람이 사람을 해쳤다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무서운 이야기로 시작한다.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호랑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그 소식이 전파나 인터넷을 통해 세계로 퍼지면 세상 사람들이 사실을 확인하러 한국으로 몰려오리라.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기보다 사람과 담배를 피우며 교감을 갖는다면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험악한 사회는 사라지고 동화의 나라가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비좁고 답답한 동물원에서 나와 사람들과 마주 앉아 정답게 곰방대를 물고 있는 호랑이가 보고 싶다.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호랑이들이 곰에게 기회를 빼앗겼던 옛날 조상들의 한(恨)을 풀기 위해 돌연변이하여 사람으로 화(化)하면 지상에 유토피아가 펼쳐질 듯하다. 그렇게 된다면 호사유피가 아니라 호사유명(虎死留名)도 가능할 텐데…….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