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혈소군(4)

김치양, 역성(易姓)의 꿈

by 최재효


[중편소설]












김치양, 역성(易姓)의 꿈






남색의 대상인 유행간(庾行簡)은 김치양 일파로 용모가 여인들도 시기할 만큼 무척 아름다웠다. 황제의 총애를 배경으로 유행간은 국사(國事)를 농단하기 시작했다. 황제는 모든 정사의 처리에 관하여 유행간에게 자문한 뒤에 처리할 정도였다. 유행간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의 행동은 김치양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방자했다. 유행간은 중신들에게도 턱과 눈빛으로 황제의 명을 지시했다. 황제의 측근과 조정의 관리들은 유행간을 황제처럼 받들었다.



유행간은 발해 출신 유충정(劉忠正)을 황제에게 소개했다. 유충정 역시 외모가 수려하고 아름다웠으며, 언변이 뛰어나 금방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결국, 고려 조정은 유행간과 유충정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처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두 사람은 황제의 명령을 핑계로 조정 관리들의 인사를 마음대로 농단했으며, 자신들이 황제인 것처럼 궁인들을 대동하고 다녔다.



“이런 멍청한 놈들! 신혈암에 소군이 보이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그놈이 어디로 갔다는 것이냐? 네놈들이 뭘 잘못 본 게 아니냐? 벌써 두 번이나 실수했다. 소군이 만약에 신혈암에 없다면 이는 곧 황제의 명을 거역하고 현지를 이탈한 것이다. 내일 새벽에 다시 가서 반드시 그놈을 죽여라. 또 실수하면 네놈들 멱을 따버릴 것이야.”



김치양이 천가와 백가에게 고성을 질러가며 노발대발했다. 김치양의 심복들이 물러가고 천추태후가 김치양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그녀의 얼굴은 간밤에 마신 술과 환락의 여운에 취해 도화(桃花)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김치양의 집무실은 천추전에 가까이 있었다.



“우복야, 간밤에 봉상과 함께 구사하신 육봉 회전의 묘기는 너무나 황홀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정신이 반쯤은 나간 상태랍니다. 오늘 밤에도 다시 시동을 걸어주세요. 예전에 내가 늘 즐기던 방술보다 강도가 엄청나게 세었습니다. 내가 이전에 전혀 경험하지 못하던 기교였습니다. 날로 정치해지는 우복야의 현묘한 기교에 나는 진실로 탄복하고 있답니다.”



천추태후는 독수공방 하는 과부로 있기에는 너무나 혈기가 많았다. 경종에게는 다섯 명의 왕후가 있었다. 그중 오로지 천추태후가 된 헌애왕후만이 아들을 낳아 궁궐에 기거하게 되었다. 나머지 왕비들은 모두 사가(私家)로 나가서 살아야 했다. 경종에 이어 황제가 된 성종은 천추태후의 친남동생이었다.



“태후는 은이를 출산한 뒤로 더욱 물이 올랐습니다. 궁궐에는 태후의 원숙한 미모를 따를 여인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합기의 묘술(妙術)도 갈수록 세련되어 내 속을 뒤집어 놓는 기술은 가히 고려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김치양이 눈을 흘기며 천추태후를 추어주었다.



“어머나! 우복야, 정말이지요? 나를 놀리려고 하는 말이 아니지요?”

“정말입니다. 태후와 운우지락을 나눌 때마다 나는 마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소녀(素女)를 만난 착각에 빠질 정도랍니다.”

김치양은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천추태후를 달콤한 말로 달뜨게 했다.



“우복야, 천추전으로 옮기시지요. 조촐한 주연을 준비했습니다. 신혈소군은 오늘 중으로 숨통이 끊어질 것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아, 태후께서 무슨 방책이 있었군요.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에 신혈암에 보냈던 놈들이 실패하여 오늘 밤에 다시 보내려 했습니다. 과연 태후십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놈 인생도 오늘로 끝장입니다.”



김치양은 그럴듯한 말로 사십 중반의 여인을 희롱하고 있었다. 몸피가 임신한 여인처럼 퉁퉁한 천추태후는 간부(姦夫)의 칭찬에 그만 빨갛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아비 경종이 스물일곱에 승하했을 때 천추태후는 열일곱이었다. 그녀는 정치적 야망이 크고 정열적인 여인이기도 했다. 그녀의 허허로운 가슴을 눈치 빠른 김치양이 재빨리 파고든 것이었다.



천추태후의 아들이 황제가 되면서 고려는 그녀의 천하가 되었다. 천추태후는 김치양이 보낸 자객들이 대량원군 암살에 실패했다고 하자, 피식 한번 웃고 나더니 김치양에게 귓속말로 속살거렸다. 그녀의 말에 김치양은 무릎을 치며 파안대소했다. 두 사람은 대낮부터 주지육림에 빠져 독주를 마시며 서로의 육신을 주물러댔다.



천추궁에는 고려의 각지에서 진상한 진기한 물건들과 산해진미가 곳간에 차고 넘쳤다. 송나라와 바다 건너 왜국에서 수입된 명주(名酒)가 내실로 들어오고 옥반가효를 든 궁비(宮婢)들이 연신 천추전 내밀한 곳을 들락거렸다. 천추전에는 대낮에도 향이 피워져 있어 향 내음이 물씬 풍겼고 밖에는 병사들이 물샐틈없이 지키고 있었다.



“자비로운 천추태후께서 대량원군에게 다과를 보내셨다.”

“원군은 어디 계시느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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