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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아빠 Mar 04. 2020

아파도 참아야 사랑받는다.

사위가 장모님께 사랑받는 법.

아침은 김치찌개를 끓였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담아놓은 김치가 많아서 찌개를 끓여야겠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굴러다니는 참치도 준비하고 신김치와 묵은 김치를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작은 뚝배기에 한 끼 먹을 양의 김치를 넣고 끓였는데, 참치를 넣지 못할 정도로 김치가 많았습니다. 참치를 제외하고 나머지 재료를 넣고 찌개를 끓였습니다. 아이들의 호평과 함께 아침식사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아침 설거지를 하려고 고무장갑을 착용했습니다. 싱크대 앞에서 시작하려는데, 샤워를 하던 아내가 출근할 옷을 다림질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시 고무장갑을 벗고 다림질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아내는 하얀 셔츠를 입고 출근할 예정입니다. 오랜만에 손수 다림질을 해 봅니다.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정성껏 그리고 깔끔하게 다림질을 끝냈습니다. 


다림질한 옷은 옷걸이에 걸어서 입을 옷과 함께 옷장 손잡이에 걸어두고 다시 싱크대 앞에 섰습니다. 옷 입던 아내가 안방에서 뭐라고 말하지만, 설거지 소리에 정확히 듣지 못했습니다. 옷 입고 나온 아내는 다음엔 좀 더 꼼꼼하게 다림질 좀 하라며 현관으로 걸어갑니다. 아마도 조금 전에 안방에서 하던 말은 다림질에 대한 불만이었던 모양입니다. 설거지 소리에 잘 듣지 않은걸 다행이라 여깁니다.


작은 아들은 물을 마시려다 말고 저를 찾습니다. 물을 담은 컵에 먼지가 떠다니고 바닥에 찌꺼기가 묻어있다며 타박을 늘어놓습니다. 자세히 보니 컵 바닥의 이물질은 컵을 만들 때 생긴 점토 알갱이가 굳어진 것입니다. 먼지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실오라기 정도입니다. 아들에게 변명하듯 설명했지만, 아들은 설거지할 때 컵 좀 잘 닦아달라는 말을 남기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흠...


오전에는 각자의 학습 분량을 충실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젠 제법 공부의 근육이 자리 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점심 반찬을 고민하는데, 장모님이 오셨습니다. 처갓집은 우리 집과 같은 동네입니다. 장모님은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으시다며 수육 삶은 냄비를 들고 오셨습니다. 아이들은 할머니보다 고기를 더욱 반깁니다. 장모님 덕분에 점심준비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잠깐의 휴식과 여유에 감사했습니다. 


장모님의 수육은 쉰 파김치와 묵은 김치를 꺼내놓고 새우젓을 곁들여서 배불리 먹었습니다. 다 먹고 한 줌 가량의 고기가 남았습니다. 고기는 작은 그릇에 담아두었습니다. 아침에 끓인 김치찌개에 남은 수육을 넣고 다시 끓여서 저녁식사 때 재활용하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순간순간 살림 근육과 주부 마인드가 꿈틀거림을 느낍니다.


장모님은 아이들과 달리 조심스럽게 먹는 저에게 자꾸만 수육을 권하십니다. 고기 맛이 이상해서 그러냐고까지 물으시며 잘 먹지 않는 제 눈치를 보십니다. 수육은 맛있고 아이들이 잘 먹어서 그런다며 둘러댔지만, 장모님의 사위사랑은 멈추질 않으십니다. 


본격적으로 수육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큰 아들은 쉴 새 없이 먹는 저를 걱정합니다. 할머니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마다 제가 큰 아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눈치를 주었습니다. 장모님은 아이들이 수육을 먹고 과일까지 먹는 것을 보시고는 돌아가셨습니다. 


아이들과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끝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처제가 만들어 준 유자차를 만들어서 주었고 나는 진하게 커피를 내렸습니다. 고기를 먹고 난 후 마시는 커피는 진할수록 입안과 뱃속이 깔끔하게 정리되는듯한 기분을 아직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커피가 조금 식었을 때, 약을 찾았습니다. 그리곤 커피와 함께 약을 삼켰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과도하게 신경을 쓰면 발가락이 붓는 병이 생겼습니다. 통풍입니다. 논문을  쓰면서 처음 생겼습니다. 지금은 직업병처럼 신경과민이 몸의 한계를 넘어서면 발가락이 붓곤 합니다. 최근에 발가락이 조금씩 붓기 시작하여 약을 먹고 있습니다. 아직은 약을 먹으면 발가락의 붓기가 금세 가라앉는 가벼운 증상입니다. 


큰 아들은 할머님께 아빠가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아빠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뭉클하고 대견합니다.


장모님의 사위사랑 앞에서는 통풍의 고통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오늘따라 커피가 참 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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