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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아빠 Mar 08. 2021

내 안에 두 명의 인격이 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사랑스러운 주부가 아닌 듬직한 아빠가 되었습니다.

오전에 세탁한 빨래는 실내에 널지 않고 오랜만에 옥상에 널었습니다. 겨울의 차가움은 남아있지만, 봄햇살의 따스함과 포근함이 느껴지는 날씨이길래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빨래를 널고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고 해님의 기운을 얼굴로 맞이 했습니다. 두 팔을 높이 들며 기지개도 켰습니다. 기분 좋은 월요일 오후입니다.


오전에 해야 할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공구함을 찾았습니다. 식탁이 낮아졌다는 아이들의 하소연을 듣고 식탁 다리만 조금 긴 사이즈로 주문했습니다. 솜씨 좋은 엄마가 만든 식탁이라서 버리지 못하고 수리하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네 귀퉁이에 나무다리를 다시 달았습니다. 전에 쓰던 다리는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습니다. 식탁 나무와 같은 색으로 칠을 할까 생각했지만, 같은 색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냥 나눴습니다. 거실에 은은하게 풍기는 나무향기를 가족들도 좋아합니다.


내친김에 컴퓨터 책상도 수리했습니다. 책장을 버릴 때, 모아둔 나무들로 키보드와 마우스만 올릴 수 있도록 간단한 책상을 만들었습니다. 온라인 수업을 하다 보니, 키보드 앞에서 문제를 풀거나, 노트 작성을 해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책상의 폭이 좁아서 불편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드릴을 잡은 김에 상판의 폭을 넓히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나무판자를 책상 상판 앞뒤로 붙였습니다. 마치, 아일랜드 식탁처럼 기둥은 좁고 상판은 넓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줄자로 길이와 폭을 확인하며 모양과 크기를 점검했습니다. 책상의 견고함을 위해 아래쪽에 ㄱ자 경쳡도 달았습니다. 책상은 튼튼하게 완성되었지만, 한쪽 다리가 안쪽으로 조금 비뚤어졌습니다. 박힌 못을 다시 뽑고 다시 만들까 고민했습니다. 큰 아들을 불러서 비뚤어진 책상다리를 어떻게 할까 물어보았습니다. 아들은 앉아보고 만져보고 흔들어보더나 상관없다며 그냥 이렇게 사용해도 좋다고 말합니다. 아들의 말을 듣고 작업을 끝냈습니다.


작업을 정리하고 식탁에 앉아서 물 한잔 마십니다. 식탁이 작아진 게 아니라, 아이들이 자랐음을 깨닫습니다. 책상이 좁아진 게 아니라, 공부해야 할 분량이 늘어난 아들이 무사히 중3이 되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드릴을 손에 잡은 김에, 집안에 헐거워진 곳을 찾아다닙니다.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 옷장과 침대를 살펴보고 뒤집어 보면서 나사를 조여줍니다. 안방과 거실도 조여야 할 나사를 찾아서 바꾸거나 조였습니다. 오랜만에 사랑스러운 주부가 아닌 듬직한 아빠가 된 듯한 기분입니다.


작업을 하면서 겨울 점퍼와 두터운 스웨터들도 따로 정리했습니다. 한두 번의 추위가 더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계절은 봄이라서 겨울옷들도 정리했습니다. 수납상자를 꺼내서 봄옷을 꺼내고 겨울옷은 넣었습니다. 빨아서 넣어야 할 옷들은 세탁기에 넣어 돌렸습니다. 한꺼번에 다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 내로 끝낼 계획입니다. 수납상자도 더 사야 합니다. 옷 사이사이에 넣을 좀약도 찾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두터운 옷들만 대충 정리하곤 마무리했습니다.


내 안에 두 명의 인격이 살고 있습니다.

엄마 같은 아빠, 아빠 같은 아빠가 살고 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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