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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아빠 Sep 09. 2021

화성에서 온 아빠, 금성에서 온 엄마.

아빠는 아직까지 아내에게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휴가나 연휴를 펜션이나 호텔에서 즐겼습니다. 돈이 많은 부자라 서가 아닙니다. 비교적 연차와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아내 때문입니다. 가격이 비싼 주말을 피하면 숙박비가 저렴합니다. 거기에 며칠 동안 인터넷과 중고사이트를 뒤져서 할인쿠폰이나 패키지 상품을 찾아냅니다. 이렇게 미리미리 준비하면 값싼 호캉스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런 호사스러움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내의 준비력 때문입니다. 아내는 계획성이 철저한 사람입니다. 여행은 물론이고 놀이동산에 놀러 가더라도 준비만큼은 완벽합니다. 놀이동산을 가는데 계획이 필요하냐고요?.... 아내에게는 당연히 필요합니다.


용인에 있는 00 랜드에 놀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내는 블로그를 찾아다니며 놀이기구별로 후기를 확인한 후 입구에서부터 동선을 만들었습니다. 타고 싶은 놀이기구에서 다른 놀이기구까지의 동선을 계산했고 거리를 확인한 후 대략적인 시간을 정리했습니다. 어디에 있는 무엇을 타고 어느 방향으로 이동해서 다시 어떤 놀이기구를 타는 식이었습니다. 여기에 두 번씩 타야 할 것과 줄을 서야만 탈 수 있는 것들까지 계산해 두었습니다. 놀러 가면서 들고 간 계획서가 무려 5장이었습니다. 


아빠는 계획보다는 직감적인 사람입니다. 그냥 순서대로 타보고 재미있으면 더 타는 식입니다. 여행지를 다녀도 그 장소가 좋으면 한 곳에서 오랫동안 즐기는 게 아빠의 스타일입니다. 반면, 아내는 계획대로 다음 장소로 이동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신경질을 부립니다. 


여행 가방을 준비하는 일도 아내와 아빠는 다릅니다. 아내는 크기가 다른 지퍼백에 양말부터 갈아입을 옷들을 날짜별로 맞춰서 준비하지만, 아빠는 단순하게 종류별로 담아서 정리합니다. 아내는 아빠의 여행가방을 자신의 방식대로 다시 정리를 해야만 여행 준비가 끝납니다. 


지금은 서로의 다름과 장점을 인정하며 조심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며칠 전, 아내는 아빠에게 사진 한 장과 함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사진은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캠핑장비가 나열된 사진이었고, 문자는 거래할 주소가 적혀있습니다. 아내는 전화로 오후 5시에 만나기로 했다며 다녀오라고 말하곤 끊었습니다.


청결에 민감한 아내가 캠핑에 관심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주소지를 찾아가서, 아내가 거래한 캠핑장비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텐트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크고 무겁습니다. 집에 와서 가방을 열어보니 제가 알고 있는 텐트와 조금 달랐습니다. 퇴근 후 귀가한 아내는 손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퇴근길에 캠핑 때 쓸, 선반을 샀다며 펼쳐 보입니다. 


텐트 하나를 샀을 뿐인데 왜 이렇게 장비가 많냐며 물었습니다. 갑자기 아내는 캠핑에서 필요한 텐트의 구성을 설명합니다. 본체, 이너텐트, 루프, 타프, 바닥시트가 왜 필요하지부터 텐트를 사기 위해서 제품별 후기를 검색하며 장단점을 확인한 후 이 제품을 선택했다며 푸념을 섞어가며 아빠를 노려봅니다. 옆에서 거들어주지도, 도와주지도 않아서 서운했다는 사인입니다. 


아내의 수고 때문에 캠핑장비는 싸게 잘 샀으니, 어디로 다닐지는 캠핑장소는 아빠가 알아보겠다며 아내를 달랬습니다. 


아내가 씻는 동안 아빠는 캠핑장소를 검색합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캠핑장소 추천"이라고 쓰고 나서 검색을 클릭했습니다. 인터넷은 엄청나게 많은 캠핑장소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이 중에서 경치가 좋고 사진이 멋진 한 곳을 클릭했습니다. 아빠는 추천받은 장소들이 다 좋아 보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보! 검색해보니 추천해주는 캠핑장소들이 다 좋네! 이 중에서 좋은 곳으로 가면 되겠어!"


아내는 아직까지도 아빠와 말을 섞지 않습니다. 집안에서도 필요할 때는 문자를 보냅니다. 오늘은 출근 후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내가 왜 화가 난 줄은 알아요?"


아빠는 아직까지 아내에게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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