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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자 Sep 07. 2019

얽히지 못한 사랑의 잔상

정지우 ‘유열의 음악앨범(Tune in for Love, 2019)’

우연의 인연은 어디까지일까. 현우와 미수는 우연한 마주침에 의존하며 지속되지 못하는 미묘한 관계를 이어간다.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는 두 사람의 관계 사이에는 짧지 않은 공백이 여럿 있었다. 처음 만난 순간을 기점으로 그동안 살아왔던, 앞으로 살아갈 삶의 간극도 결코 작지 않았다.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없냐는 미수의 물음에 애매한 웃음으로 답한 현우의 표정은 둘의 관계가 수평선을 달리게 될 것임을 조용히 암시했다.


현우와 미수의 사랑은 안정적일 때 가장 위태로웠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가장 뜨거웠다. 견우와 직녀마냥 서로가 전부인 듯 그리워하다가도,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각자의 삶을 잘 가꾸어 나갔다. 함께 하기에는 너무도 달랐던 그들은 서로가 서로와 가장 달라진 모습이 돼서야 함께하게 되었다. 서로를 마주한 상태에서 돌아오지 않는 답변은 크나큰 상처로 다가왔다. 달랐던 삶의 모습에도 그를 품어주고 싶었던 미수는 현우의 방어기제에 종종 튕겨져 나갔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두 사람이 함께했던 순간 중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 갈무리한 모음이다. 영화에서 현우와 미수가 아름답게 사랑하는 ‘지금 이 순간’을 제외하고선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없다. 현우의 과거도, 미수의 과거도, 은자를 비롯한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도 아무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두 사람이 함께하지 않는 동안의 이야기는 알 수 없는 현우의 표정처럼 생략된다. 그랬기에 더욱 개연성이 없고, 부자연스러웠고, 엉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함께한 순간은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비좁은 빵집에서 부대끼며 일하던 1994년, 입대 전날 밤 어색한 밤을 보낸 1997년, 그토록 기다리던 메일에 답장이 왔던 2000년, 그리고 2005년. 다섯 번의 만남과 네 번의 헤어짐이 나오는 동안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의 요소들은 둘의 아름다운 순간만을 꾸며주고 사라진다.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순간은 극적으로 연출되지만 네 번의 헤어짐의 순간은 모두 헤어짐과 동시에 다음 시간대로 넘어간다. 영화 내내 부수적인 요소들은 잠깐 쓰인 후 버려지며 미수와 현우를 아름답게 담기 위해만 사력을 다한다.

주변부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과감하게 생략하며 두 사람에 집중했다는 점은 멜로 영화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라디오, 추억 음악, 레트로 등의 요소를 내세운 것이 문제였다. 앞서 이 영화를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 갈무리한 모음’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각각의 장면들이 서로 전혀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4개의 시간대도, 시간대에 얽혀있는 시대적 코드도,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도 전부 엉성하게 얽혀있다. 어정쩡하게 주변 인물의 이야기가 조명되고, 소중하게 그려졌던 공간이 버려지고, 시대적 배경은 흐름에 녹아나지 못했다. 1990년대의 추억을 회상하고 싶었던 관객에게 비친 이 영화는 그저 그런 멜로 영화로 최악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던 내내 ‘이 영화는 유열도, 음악도, 앨범도 아니다’는 생각을 했다. 순간적으로 나를 자극하던 컷들은 있었지만, 감성적인 음악 영화를 기대하고 갔던 내게는 어우러지지 못한 예쁜 것들의 덩어리로 밖에 느껴질 뿐이었다.

딱 하나, 서로의 궁합이 잘 맞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엔딩씬이다. ‘유열의 음악앨범’의 첫 보이는 라디오 방송, 현우에게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냐 물은 유열, 라디오에 흘러나온 미수의 이름, 직장에서 뛰쳐나가 방송국으로 뛰쳐나간 미수, 여기에 흘러나온 콜드플레이의 Fix You까지. 창문 밖의 미수를 현우가 카메라로 찍는 장면은 가장 ‘유열의 음액앨범’스러운 순간이었다.

매일을 보아도, 몇 년에 한 번 보아도, 영영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관계의 형태의 상관없이 사랑은 영원하지 못하다. 그러나 사랑했던 순간의 감정은 영원하다. 아무리 옅어진더라도, 기억이 희미해진다 하더라도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묻어나는 사랑의 잔상은 앨범 속 사진 한 장으로 가슴속에 남게 된다. 서로를 향해 마주 보며 웃던 두 사람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마주 본 그 순간의 아름다웠던 것은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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