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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Jun 09. 2024

롯데월드 캐스트가 어린이의 솜사탕을 뺏는 날

롯데월드 캐스트는 만우절이 되면 어린이 손님의 솜사탕을 뺏어야 한다. 물론 근무표 상에서만 그렇다. 롯데월드 안전청결 캐스트의 근무표는 만우절만 되면 요상하게 변한다.


어떤 회사든 근무 일정이 필요하다. 롯데월드 안전청결 부서도 마찬가지다. 타임테이블은 캐스트가 롯데월드 어느 구역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30분 단위로 표시한 근무표다. 철저한 근무를 위한 표가 어떻게 감히 요상하게 바뀔 수 있을까?


근무표를 안전청결 캐스트가 짜기 때문이다. 그 캐스트를 스케줄 관리자라 부른다. 스케줄을 캐스트가 짜기에 동료 캐스트의 고충을 이해하고 스케줄에 반영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스케줄 관리자도 캐스트이기에 스케줄을 짜더라도 캐스트에게 명령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이러한 단점이 반복되어 지쳐버린 스케줄 관리자가 만우절을 만나는 순간, 타임테이블은 요상하게 변해버린다. 어차피 타임테이블 짜는 거라면 만우절 타임테이블이라도 재미있고 어처구니없이 짜서 캐스트도 즐겁고 스케줄 관리자인 본인도 즐거워 보자는 것이다.

 

만우절 타임테이블은 사실 말도 안 된다. 평소엔 어느 구역 청소하기, 퍼레이드 통제하기, 식사시간 등 딱딱하게 업무를 지시하는 단어로 구성되지만, 만우절 때는 다르다. 식사시간에 낮잠 때리기, 청소 시간에 어린이 손님 솜사탕 뺏기, 롯데월드 마감 3시간 전에 손님 퇴장 유도하기, 퍼레이드 시간에 H 캐스트가 춤추기 등, 캐스트가 보고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법한 내용을 타임테이블에 집어넣었다. 특히 퍼레이드 시간에 넣어 놓은 '스케줄 짜기 그만하고 싶다'에서 스케줄 관리자의 애환이 느껴진다.


2023년 만우절 타임테이블
2024년 만우절 타임테이블

타임테이블은 말이 근무를 명령하는 표지 그다지 힘이 없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시키고자 만든 근무표지만, 캐스트가 짜다 보니 지키지 않는다고 주의를 줄 권리가 없어서 정확한 근무가 되지 않고, 스케줄 관리자도 캐스트의 정석적인 근무를 강요하기 어렵다. 근무 명령의 효용성이 없다는 것이다.


만우절 타임테이블만큼은 효용성이 있었다. 만우절 타임테이블은 근무 명령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캐스트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였고, 그 목적은 캐스트에게 정확히 작용했다. 타임테이블의 본래 목적인 근무 명령은 364일 동안 효용성이 없다가, 딱 하루 만우절에만 타임테이블의 본래 목적이 아닌 '캐스트의 재미'로 단 하루동안 효용성을 갖추었다. 아무리 캐스트라지만 일하기 싫고 재밌길 원하기에, 딱딱한 근무 명령보단 어이없이 웃긴 만우절 근무 명령이 더 흥미롭다.


스케줄 관리자도 일반적으로 근무표를 짜는 그 어떤 날보다 만우절 근무표를 재밌어하는 캐스트의 반응을 접한 날이 가장 뿌듯했을지도 모른다. 본인이 재밌게 만든 작업물을 다른 사람이 보고 재밌어하니 뿌듯할 수밖에 없다. 작업물을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칭찬은커녕 재밌다는 반응조차 받을 수 없는 날이 이어진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2025년에도 재미있는 만우절 근무표가 나오길 기대하지만, 나오지 않길 바란다. 스케줄을 짜느라 고통받는 스트레스를 만우절 근무표를 짜고 해소하는 것보다, 스케줄을 짜지 않기에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소소하게 즐거운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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