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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Aug 28. 2024

에세이 쓰는 사람이 맛집 계정 운영자를 부러워하는 이유

카페에서 제로 음료를 마신 건 처음이었고, 그 음료를 협찬으로 마시는 건 더더욱 처음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쿠폰이 생겼으니 당장 따라오라고 말했다. 뭐지... 기프티콘 선물 받은 건가? 싶었는데, 협찬이었다. 심지어 협찬받았다는 카페는 누구나 알 법한 체인점이었다. 이 친구에게 난 언제든 잘해줄 준비가 되어버렸다.


'협찬'하면 떠오르는 환상이 있었다. 협찬을 요청받은 인물이 가게에 도착하면, 가게 직원은 긴장한다. 평소와 달리 창틀을 손가락으로 쓸어도 먼지 한 톨 안 나올 만큼 청결해진 가게 내부, 부드럽지만 계산적인 미소를 띠며 잘 좀 봐 달라는 듯 평소에 비해 높아진 음료 위 휘핑크림, 협찬을 받고 작성한 리뷰를 온라인에서 보고 가게에 방문했더니 리뷰와는 다르게 줄어든 음료의 양에 실망하기까지가 내 환상이었는데,


환상이 깨졌다. 음료나 디저트는 카페 내에서 손님이 먹는 것과 동일했다. 심지어 협찬받은 사람이 누군지도 알 수가 없는 구조였다. 카페 본사에서 쿠폰을 주고, 분점에 가서 제품을 산 뒤 리뷰해 달라는 방식이기에, 협찬받은 사람이 티 내지 않으면 이 사람이 그냥 쿠폰을 사서 주문한 건지 협찬을 받은 건지 알 수 없다. 협찬을 받은 사람만 협찬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아는 순간이다. 따라서 분점 직원은 협찬받은 사람임을 모르기에,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음료를 제공한다. 협찬은 전혀 모르는 듯한 직원분의 평범한 자본주의 미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협찬받은 리뷰와 달리 줄어든 음식의 양을 보고 실망할 일이 없다는 건 좋은 일이다.

친구는 정확히 쿠폰 가격인 3만원을 맞추어 주문했다...! 친구가 뿌듯해하는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카페에서도 제로 음료를 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당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음료는 정말 힘든 일이 생기지 않고서야 잘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 한 톨 없는 차를 마시기엔 기성품인 티백을 쓰는 경우가 많아, 카페의 특색이 담긴 음료를 먹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카페의 특색이 담긴 음료는 끈덕지게 달거나, 커피 류이거나, 끈덕지게 단 커피 류인 경우가 많다. 그럼 카페 라떼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안타깝게도, 카페를 자주 가는 밤에는 커피를 먹으면 잠을 못 잔다. 참 끈덕지게 까다롭다. 그때 친구를 통해 가게 된 카페에서 제로 음료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페의 특색을 담았고, 커피 류가 아니며, 차도 아니고, 달지도 않은 음료의 등장 덕에, 밤에도 카페에서 기분 좋게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왼쪽이 제로 칼로리 피치 아이스티, 오른쪽이 저칼로리 청사과 스무디. 재사용 가능한 용기에 담아 주니 텀블러로 활용하기 좋았다.

친구가 부러웠다.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성취를 실체화하여 나눠줄 능력이 있다니. 협찬이란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성취를 고급스럽게 어필하는 방법이구나 싶었다. '나 맛집 계정 운영하고 있어! 조회수도 꽤 나와!" 같이 칭찬만 바라고 실리는 없는 방법이 아닌, 먹을 걸 직접 줌으로써 실리도 챙기고 칭찬도 부드럽게 이끌어내는 방식이라니.


오랜 기간 동안 글을 써 왔으나, 주변에 실제로 도움은 주지 못했던 내 모습을 되돌아봤다. 정확히는, 불특정 다수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으나, 실제로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불특정 다수에게 이야기를 퍼뜨리는 만큼, 이야기를 판매하려는 시도가 없다면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나는 에세이를 쓰고, 친구는 맛집 계정을 운영하다 보니, 협찬을 받아 주변 친구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확률은 친구 쪽이 압도적으로 높다. 친구의 계정은 맛집의 이야기로 독자가 소통할 창구를 마련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 창구는 확장되어 많은 사람이 모였으며, 음식점의 정보를 많이 알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고, 자연스레 협찬이라는 보상이 주어졌다. 각자 계정의 성격이 다르니 창출되는 효과 또한 다르나, 친구가 협찬을 받는 순간만큼은 창출되는 효과가 실제로 보인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마냥 부러워하기엔 친구의 노력도 보였다. 내가 본 건 매장 내에서 음료 사진을 예쁘게 찍는 것 이외엔 없었으나, 그 이면에는 여러 노력이 숨어있을 테다. 도를 고려해서 찍은 사진을 편집해야 하고, 사진과 함께 올리는 음식 소개 글을 어떻게 구성해야 정보 전달 잘 될지 고민해야 한다.  모든 노력의 결과로 얻어 낸 협찬 제품을 친구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건, 그 친구를 정말 아낀다는 거다.

  

2주가 지나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다음 주 수요일. 저녁에 시간 비워. 연어 먹여줄게."


햐, 이번엔 식사까지. 원래는 친구가 협찬을 받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는데, 이젠 협찬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지켜보는 게 더 흥미롭다. 약속이 이렇게 기다려지는 순간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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