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도 안전청결 캐스트는 롯데월드를 돌아다닌다. 롯데월드에 배치되어 있는 쓰레기통은 비가 쏟아져서 손님이 거의 없을 때 청소하기 딱이다.
...라는 생각을 캐스트가 했다면 그는 매니저가 되어야 할 테다. 롯데월드 파크 전체를 크게 3 등분하여, 한 구역에 3명 정도를 보내서 쓰레기통을 닦으라고 매니저님은 지시하신다. 비가 오니 좀 쉬나 싶을 때 이런 대청소 지시가 떨어지면 아, 휴무 쓸걸... 싶지만, 세상 발랄하게 "넵!" 하고는 청소 도구를 챙겨 나간다. 알바비 받는 값은 해야 하니까.
근데, 쓰레기통을 얼마나 깔끔하게 청소해야 하는 걸까? 어차피 손님이 쓰레기를 버리다 보면 다시 더러워지니 적당히? 아니면 광이 날 정도로 깔끔하게? 쓰레기통을 청소하는 건 가끔 있는 일이고, 보통 가끔 한다는 건 그동안 묵은 때를 말끔히 벗겨낸다는 거다.그럼 엄청 깔끔하게 해야 한다는 거겠지! 하고 청소도구를 청소 카트에 싣고 나갔다. 평소에는 빗자루, 청소솔, 세정제 정도만 들고 간다면, 비가 올 때는 큰 바구니에 물을 가득 담은 뒤 작은 바가지를 같이 가져간다. 물론 비닐장갑도 필수다. 쓰레기통을 청소하려면 세정제를 골고루 뿌리고 솔로 닦아내야 하는데, 맨손으로 하다 보면 세정제가 손 안으로 침투한다. 그러면 손을 물로 씻어도 씻어도 세정제가 묻어 나온다.
갈색 철제 구조물 안에 철로 된 쓰레기통이 있다.
롯데월드 쓰레기통은 갈색 철제 구조물 안에 철제 쓰레기통이 숨겨져 있다. 그냥 쓰레기통만 덩그러니 두면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고, 야외다 보니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어느 정도 버텨야 하기에 보호막을 쳤다고 보면 된다. 물론 그 보호막을 청소하는 건 안전청결 캐스트의 몫이다.
나를 포함한 캐스트 총 3명이 같은 팀이 되어서 폭우 속 쓰레기통 청결 작전을 맡았는데, 이 3명은 일이 주어지면 끝을 보는 스타일이었다. 정말 미친 듯이 쓰레기통을 청소했다. 세정제를 촥촥 뿌리고, 솔질을 쓱싹쓱싹 하고, 작은 바가지에 담은 물로 쓰레기통의 표면을 찰싹찰싹 때리며 땟국물을 씻어냈다.처음엔 역할 분배가 어려워 애를 먹었지만, 여러 쓰레기통을 돌아다니며 청결 작업을 하다 보니 3명 모두 알아서 본인의 역할을 찾아갔다.처음에 세정제를 뿌린 사람은 다른 두 사람이 솔질을 하고 물로 헹구는 동안 다음 쓰레기통으로 이동할 채비를 했다.
너무 열심히 쓰레기통을 닦아냈는지, 청소 예정인 쓰레기통 총 20개 중 10개 정도를 할 때쯤이었을까. 캐스트 3명은 지쳐버렸다. 쓰레기통을 헹굴 물도 다 떨어졌고, 시간도 거의 1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안전청결 캐스트뿐만 아니라 모든 캐스트는 1시간 정도 업무를 하면 짧게라도 쉬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쓰레기통 닦기를 1시간이나 더 해야 할 판이다. 다시 힘내서 다음 쓰레기통으로 가려는 순간, "카톡!"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A존 트래쉬박스(쓰레기통) 청결 작업 완료하였습니다."
뭐야? 벌써 끝났다고? 우린 이제 절반 했는데? 얼마나 손발이 잘 맞아야 지금 끝낼 수 있단 말인가? A존 청결 작업을 한 사진을 업무 공유 카톡방에서 확인해 봤다. 쓰레기통이 깨끗해 보였다. 우리 3명이 청소한 쓰레기통을 찍어도 저 쓰레기통과 같아 보일 테다. 다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꼼꼼하게 닦다 보니 오래 걸렸던 것. 우리는 이미 쓰레기통 청소인으로서 최고의 효율을 보이고 있었기에,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청소한다는 건, 덜 꼼꼼하게 했다는 거다. 순간 회의감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이리도 열심히 했던가... 사진 상으로만 깨끗해 보이는 쓰레기통을 위해서라면 다른 팀처럼 청소해도 됐을 텐데.
처음에 큰 바구니에 담아 왔던 물도 다 떨어져 버렸다. 그냥 보이는 부분만 대충 닦고 치울까.. 싶었는데, 분수대가 눈앞에 있었다. 비가 쏟아진 덕에, 운영이 중단된 분수대에 물이 차 있었다. 분수대를 가리키며 쓰레기통 청소 팀원들에게 말했다.
"저기.. 분수대에 물 있어..!"
"설마, 형. 아니죠? 진짜로? 저거 쓰겠다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아 ㅋㅋㅋㅋ진짜 미친 거 아냐?"
"일단 담고 생각하자고!"
그렇게 우리는 작은 바가지로 약 250회 정도 물을 퍼담아 큰 바구니를 가득 채워, 나머지 10개의 쓰레기통을 다시 새것으로 바꿔놓았다. 업무 공유방을 통해 쓰레기통을 꼼꼼히 청소할 필요가 없는 걸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쓰레기통을 깨끗이 청소하는 우리의 모습이 좋았다.사진 상으로 깨끗해 보일 정도로만 쓰레기통을 청소하는 캐스트와 업무를 한다면 새것처럼 쓰레기통을 닦을 수 없었을 테다. 그렇기에 마음이 맞는 동료와 비슷한 수준으로 고생할 수 있다는 건 롯데월드 캐스트로 일하며 행복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이 쓰레기통을 깨끗이 청소하는 순간이 즐거웠을 뿐, 손님이 청결한 쓰레기통을 이용한다는 건 고려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롯데월드를 청결히 유지하는 것이 자기 만족 혹은 동료 캐스트와의 즐거움을 위해서일지라도, 손님이 롯데월드를 쾌적하게 이용하면 괜찮은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