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육일칠 Oct 13. 2024

롯데월드 관리자는 왜 빨간 옷을 입고 돌아다닐까?

"빨간 옷 등장. 당장 쫓아가서 우수 캐스트 쿠폰을 갈취할 것."


안전청결 부서 카톡방에 기다리던 메시지가 왔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등장하는 빨간 옷을 입은 무리. 그 무리를 '코치(樂 + coach)'라고 부른다. 락코 롯데월드를 돌아다니며 업무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보이는 캐스트에게 '우수 캐스트 쿠폰'을 건넨다. 각 부서의 관리자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빨간 정장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도 특징이다. 쿠폰을 많이 모으면 '이 달의 우수 캐스트'로 선정되어, 롯데월드 직원 식당 앞 게시판에 본인의 사진과 소감문이 커다랗게 붙는다. 이건 좋아하는 캐스트보다 부담스러워하는 캐스트가 많은데, 부담스러워하는 캐스트도 속으로는 좋아하리라 감히 예상한다.

 

안전청결 캐스트가 우수 캐스트 쿠폰을 얻는 과정은 갈취에 가깝다. 업무를 열심히 하는 캐스트로 보이게끔 상황을 조작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트랙션 캐스트도 빨간 무리가 등장하면 목소리를 높이거나 평소보다 친절하게 멘트를 치며 본인의 업무 능력을 어필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코치를 따라다닐 수 없다. 지정된 어트랙션에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전청결 캐스트 - 줄여서 '안청'이라 하겠다 - 는 다르다. 파크를 돌아다니며 청소하는 겸 락코치를 따라다닐 수 있다. 심지어 청소를 하러 파크를 돌아다니기 전에, 근무를 먼저 한 정찰조를 통해 락코치가 어디쯤 있는지도 추정 가능하다.  


업무를 열심히 하는 캐스트로 보이게끔 상황을 조작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 롯데월드 파크 바닥에 지우기 쉽지 않은 얼룩을 기억해 뒀다가, 락코치가 지나갈 때쯤 얼룩을 지우러 간다. 이때 중요한 건, 매우 천천히 얼룩을 지워야 한다. 장대같이 긴 솔을 빠르게 문지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쓰다듬듯이 쓸어주면서, 눈으로는 락코치가 어디로 지나가고 있는지 파악한다. 빨간 옷이 보여서 솔질을 열심히 했는데, 알고 보니 손님일 경우 김이 빠지기도 한다.


둘째, 첫째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경우, 최후의 발악으로, 락코치와 마주치면 최대한 손을 펼쳐서 각 손을 좌우로 흔들며 아주 밝게 인사(hand showing)한다. 청은 청소용 차를 끌거나 빗자루를 드는 등 손이 남을 일이 거의 없는데, 우수 캐스트 쿠폰을 받기 위해서라면 청소 용품을 들고도 그나마 남아 있는 손가락으로라도 하찮은 인사(finger showing)를 한다.


이렇게 안청은 열심히 하는 모습을 연출하여, 어떻게든 우수 캐스트 쿠폰을 얻어내려 한다. 하지만 안청도 이렇게 억지로 쿠폰을 얻어내고 싶지는 않으나, 업무 특성상 갈취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안청은 손님과 소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해 봐야 가끔씩 지나가던 손님이 '롤러코스터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라고 하면 '저~기 보석 박혀 있는 동굴을 지나가셔서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하는 정도인데, 마주치기도 어려운 락코치가 그 짧은 순간을 목격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손님이 쓰러지고 다치는 상황에 안청이 투입되지만 이 경우에도 매우 희귀하다. 심지어 안청이 손님에게 열심히 길을 안내해 주는 모습을 락코치가 목격했다 하더라도, 락코치는 날마다 쿠폰을 주는 기준이 달랐다. 평소와 같이 쓰레기통을 비우다가도 쿠폰을 줄 때도 있었고, 손님에게 열심히 안내하는 모습을 봤음에도 쿠폰을 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그들을 따라다니며 업무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왜 락코치는 굳이 빨간 옷을 입어야 했을까? 일반 매니저처럼 입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을까? 튀는 옷을 입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어디 한 번 보여 주세요. 마음에 들면 우수 캐스트 쿠폰 줄게요'는 튀는 이유를 지닌 채 돌아다니면, 캐스트도 억지로 튀어야만 그들의 눈에 띌 수 있다. 그 덕에 캐스트의 행동은 부자연스러워진다. 저 빨간 옷이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느낌이랄까. 그냥 평소대로 입은 관리자가 불시에 검문하듯 캐스트의 업무 능력을 체크하다가, 마음에 드는 캐스트에게 스리슬쩍 쿠폰을 소매 넣기 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럼 캐스트는 락코치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긴장하고 있는 상태로 업무에 임할 텐데.


...라고 생각하다가, 빨간 옷을 입은 무리, 즉 락코치가 왜 존재하는지 다시 생각해 봤다. 그들은 캐스트가 잘하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벤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캐스트가 잘하고 있는지 관리하는 건 특별한 임무 수행 지시가 없어도, 관리자 혼자 돌아다녀도 이루어진다. 빨간 옷을 입는다는 건, '지금부터 우리가 너희에게 롯데월드의 테마성을 잘 지키는 캐스트인양 연기할 시간을 줄 테니, 열심히 연기한 사람에게 상을 줄게'라는 의미다. 락코치 앞에서 열연을 친 뒤 우수 캐스트 쿠폰을 받는 이벤트를 겪고, '나 쿠폰 받았다!' 하고 기뻐하며 동료 캐스트와 즐거워하는 순간은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코치의 락이 왜 樂(즐거울 락)인지 알 듯하다. 리자 입장에서도, 빨간 옷을 입고 롯데월드를 돌아다니며 캐스트의 행동이 달라짐을 관찰하는 건 재미있는 이벤트다.


락코치가 롯데월드에 존재하는 순간에, 캐스트는 롯데월드가 캐스트에게 그토록 원하던 '무대 위 연기자'가 된다. 무대 위 연기자가 된 이유가 연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닌, 우수 캐스트 쿠폰을 받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손님에겐 락코치가 등장하는 순간이 아무렴 좋다. 그 순간만큼은 롯데월드 직원 모두가 롯데월드의 테마성을 지키기 위해 연기할 것이고, 이는 곳 '테마' 파크에 왔을 때 느낄 수 있는 최대의 만족감을 선사해 준다. 코치가 아니더라도, 캐스트 당사자도 모르게 롯데월드의 테마성을 지키게 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전 03화 안전청결 캐스트는 이런 것까지 한다 - 2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