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책임감

by 정운

남편은 나보다 한 살 많다. 친구 같은 사람이고, 때로는 오히려 동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그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대학 동기들 중 5년 만에 한국에 오는 한 친구를 만나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다른 동기들과 함께 연말에 강남의 한 횟집에서 모였다.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술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쌓아둔 이야기들을 꺼냈다. 차를 가져온 남편은 처음에는 술을 마다했지만, 본인 집에서 자고 가라는 친구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모처럼 재밌게 놀라는 내 말에 술잔을 채웠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슬슬 다음날 출근을 위해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한두 명은 집이 가깝거나 다음 날 재택근무라 걱정 없이 놀 수 있다고 여유를 부렸고, 나와 남편은 어차피 대리운전이든 다음날 돌아가든 해야 했기 때문에 남은 사람들과 2차를 하기로 했다. 다섯 명은 도란도란 와인을 마시며 즐거운 대화로 밤을 보냈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 되어 우리는 친구 집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술을 많이 마신 나는 숙취와 피로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남편은 금방 잠이 들었다.


새벽 5시쯤,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거의 자지 못한 나는 비몽사몽 했을 뿐만 아니라 숙취로 어질어질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자긴 괜찮아? 난 술도 많이 마시고 잠도 못 자서 어지럽네… 운전할 수 있겠어?”

남편은 잠에 반쯤 감긴 눈으로 대답했다.

“응, 나는 졸리기만 하지 숙취는 괜찮아. 어제 일찌감치 술 대신 물 마셨어.”

그랬구나.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좋을 대로 마셨던 나와 달리, 남편은 내일을 준비하며 자제하고 있었구나. 멍한 나에게 곧 가자고 말한 남편은 다른 친구를 깨우며, 밖에 비가 오니 원하면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짐을 챙긴 나와 아직 잠이 덜 깬 친구와 함께, 남편은 미리 준비해 둔 커피를 챙기며 집을 나섰다. 캄캄한 이른 새벽, 창 밖으로 차가운 빗방울이 요란하게 떨어지며 우리를 맞았다.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남편은 말한 대로 30분 거리를 돌아 친구를 아파트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무리한 탓에 오한을 느끼는 나를 위해 시트를 데워주며, 집에 가는 동안만이라도 자라며 토닥였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 나는 집에 거의 도착해서야 깨어났고, 남편은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집에 가서 따뜻하게 자자며 포근하게 웃었다. 집에 도착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오한이 심해졌다. 전날 체력적으로 무리한 것이 숙취와 합쳐져 몸에 이상이 생긴 듯했다. 오들오들 떨며 침대로 들어간 내 옆에 남편은 뜨끈한 물을 채운 워머를 넣어주고, 출근 준비를 했다. 남편이 출근한 후, 고요하고 텅 빈 집 안에서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존경심이 가득 차올랐다. 아, 이 사람은 어른이구나.


어른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누군가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책임감으로 정의한다. 누구나 평소에는 일상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순간, 감정이 태도를 지배하려는 순간, 한 순간의 충동과 감정으로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은 결국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해내는 것, 그것이 책임감이라고 생각하고, 그 책임감이 바탕이 되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정의한다. 부끄러운 나 자신을 돌아보며, 참 멋진 사람을 옆에 두었음을 깨닫는다.


사진 출처 Pixabay_Melk Hagels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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