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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자리가 아닌 곳에는 가지 말 것

by 정운

최근 다시 퍼즐과 친해졌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굿즈이면서 쓸모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퍼즐이 그 조건에 딱 맞았다. 마침 나와 꽤나 다른 취미를 갖고 있는 남편도 퍼즐은 재밌게 하는 편이라 그와 여유 있는 주말에 같이 시간을 보내기에도 참 좋다.


퍼즐을 다시 가까이하게 된 것은 굿즈로서의 매력도 있지만 퍼즐을 맞추는 것이 명상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머리가 복잡할 때, 많은 생각들을 뒤로하고 앞에 놓인 퍼즐 조각 하나하나에 집중을 하게 된다. 물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만큼은 잠시 잊을 수 있고 돌아왔을 때 새로운 마음이 된다. 음, 확실히 명상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얼마 전 새로 구매한 세 번째 퍼즐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인물들의 옷 색깔과 특징들이 잘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열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고, 조각이 그림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일부가 잘린 그림은 알아보기 어려웠다.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퍼즐들에 압도당한 기분이었다.


헛웃음이 나오는 중 수많은 퍼즐 조각 중 한 조각을 골라 집어 들고 차분히 살펴봤다. 그림의 색깔과 모양, 그리고 퍼즐의 단면 패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힌트가 보였다. 여기이려나, 하고 놓은 자리가 꼭 맞았다. 그다음에도 산처럼 쌓인 조각들 중 단 하나의 조각만 보았다. 한 조각, 한 조각. 그렇게 집중하다 보니 마음이 조용해졌다. 빨리 제자리를 찾는 조각도 있고 시간이 더 걸리는 조각도 있었지만 뒤에 남은 조각들을 겁내지 않고 내 손에 놓인 조각에만 집중하며 조금씩 맞춰가니 어느새 퍼즐은 완성되었다.


어느 일이든 결국 내게는 똑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앞으로 갈 길이 막막해 내가 원하는 목표에 다다를 수 있을지 걱정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잘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자신이 없고 망설이게 된다. 그렇지만 앞에 놓인 조각부터 맞추듯, 지금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며 차근차근해나가다 보면 빠르든 느리든 결국에는 조금씩 목표에 가까워진다. 퍼즐로 인생을 생각하게 되다니, 나한테는 최고의 명상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퍼즐이 내게 알려준 가장 중요한 교훈.

'자리가 아닌 곳에는 가지 말 것'.


지금은 더 빠르게 보이는 길이고 당장은 편해질 수 있는 길일지라도, 멀리 봤을 때 잠깐의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퍼즐이든 인생이든 억지로 끼워 넣으면 나중에 엉키기 십상이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다시 제자리를 찾는 것, 그것이 결국 자연스러운 흐름대로 돌아가는 길이다.


사진 출처 Pixabay_Alexas_F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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