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1. 때로는 곧이곧대로 듣는 것이 맞다.
"클언니의 일상다반사"
2달간의 썸이 허무하게 끝났다. 내가 "가젤"같다고 생각한 남자는 갑자기 도망가버렸다. 다정하고, 섬세하고, 나와 성격과 가치관이 너무 비슷한 "ENFJ 남자"다. MBTI를 맹신하는 편은 아니지만, 여태 주로 "ST" 스타일의 남자만 만나다 보니 "NF"남자가 좀 궁금했었다. 자기 관리 잘하고 성실하고 그러나 조금은 조심스러운 남자. 매번 데이트를 정해 오는 가끔 소소한 선물을 주는 남자였다. 나를 만난 게 신기하다고, 우리 가족이 궁금하다고, 40대 중반의 연애가 30대 초반의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달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자기는 6년, 7년의 장기 연애만 두 번 해서 요새 사람들(?)처럼 3번 보고 고백하거나, 한 달 안에 결정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한 점이다. 매주 한두 번의 데이트를 하고 한 달쯤 지날 무렵 조심스레 손도 잡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다지 보수적이진 않지만 난 남자 친구하고만 손잡는 여자다. 손잡으려는 제스처가 두 번째 있던 날 내가 말했다.
" 전 남친하고만 손 잡는데, 그럼 이제 제 남친 하시는 거예요?" 하고,
이미 데이트한 지 한 달은 넘었을 시점이다. 뭔가 말을 얼버무리기만 하고 웃길래
"왜 대답을 안 하세요? 남친 안 하시는 거예요? 했더니, 웃음기 섞인 말투로 그가 한 대답은
"제가 OO 씨 이성적으로 좋아하거든요. 고백은 제가 할 테니 조금 기다려주세요."
이 대화를 "아.. 맘 여는 게 좀 더디구나..라고 생각한 내가 이상했던 걸까? 어차피 고백은 할 거니 그냥 조급해할 필요 없다..라고 생각한 게..? 그 이후로도 데이트는 잘해왔고, 특히 첫 데이트부터 거의 하루종일 만나는 동안 대화가 끊기지 않았기에, 성격이 참 잘 맞는다고도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러고 두 달쯤 되던 어느 수요일, 낮에 일요일에 만날 약속까지 잡았더랬다. 그리고 저녁에 전화가 와서는 앞뒤 없이, 얼굴 보고는 도저히 얘기를 못하겠다며, 자기 문제로 그만 만나야겠다고 얘기했다. 계속 보고 싶기는 한데, 후회할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스탑 해야 할 거 같다며..
'무슨 소리야. 이미 너무 늦잖아..!!' 뭐, 이런저런 얘기 끝에 알겠다고 끊긴 했다.
난 원래 짝사랑은 안 하는 스타일이고, 나 안 좋아하는 사람은 안 잡는다. 뭐 아니라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날, 그 담날까지는 너무 황당했다. 갑자기 뒤통수 세게 맞고 얼얼한 느낌, 두 달의 시간을 되새겨봐도 그 사람이 가식적이라고 느껴진 적은 없다. 말도 행동도, 다만 관계를 맺는 것에 엄청 조심스럽다는 건 알고 있었다. 상처받을까 봐, 아님 시간이 낭비될까 봐 몸을 사리는 느낌 말이다.
결국 고백을 기다려달라는 말은 어차피 할 고백을 좀 기다려달란 말이 아니었다. 고백을 할지 말지 아직 고민 중이니, 기다려 달라는 말이었던 거다. 난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했어야 했던 것이다. 몇 번의 연애와 썸을 거치다 보니 생각보다 데미지가 크진 않아서 금방 감정은 회복했다. 다만, "나이가 드니, 또 이런 경험도 있구나.."를 또 하나 배운 느낌이다.
40대가 되가며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는 생각을 되새기며 살고 있다. 이젠 말도 "나"라는 필터를 거치지 말고, 말한 사람의 "워딩"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에혀.. 연애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