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6일
엄마!
나 같은 집순이가 아이를 낳고 나서는 주말 내내 집에 있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이상하게 주말에 아무 일정 없이 집에만 있으면 더 힘들고 아이들에게 짜증만 내게 되는 것 같아. 집에 있으니 집안일이나 할 일은 눈에 보이는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아달라, 돌아서면 밥 하고, 기저귀 치우고, 목욕시키고 육아로 해야 하는 일들도 많으니 자꾸 예민해져. 더 지치고 답답한 것 같아. 오히려 밖에 나가면 아이들도 기분이 좋고 나도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면 되니까 육아가 더 수월한 것 같아.
육아에서 집안일이 사라진다면 육아가 조금은 수월해질까? 이솔이가 유치원에서 하원하기 전까지 이런저런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해솔이와 둘이 있을 때 마음껏 놀아주지 못해. 오히려 해솔이랑 둘이 있으니까 이솔이와 함께 있을 때는 하지 못한 일까지 벌이게 된다니까. 심지어 해솔이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내 바지가 살짝 벗겨질 때까지 설거지를 멈추지 않을 때가 있어. 해솔이가 끝끝내 내 바지를 벗겼을 때는 해솔이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니까. 아이의 얼굴을 오래도록 쳐다보지 못하고 자꾸 해야 하는 일에 정신이 팔리는 모습이 싫다. 그렇다고 집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도 아닌데 최소한만 한다고 하는데도 늘 정신이 없네. 이럴 땐 엄마는 이 모든 걸 누구의 도움 없이 어떻게 그렇게 잘 해냈나 싶어. 심지어 나는 건조기, 식세기 이모님에 이어 엄마가 거의 매일 도와주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말이야.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온전한 나의 시간이 해솔이의 낮잠 시간뿐이라, 시간이 많은데도 마음이 여유롭지 못해. 난 혼자만의 시간에서 정리도 하고 에너지도 받는 사람인데 말이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있음에도 가끔은 고독한 시간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 그냥 가만히 "혼자" 앉아 있기만 해도 좋겠다 싶은데, 막상 그런 시간이 되면 또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는 거 보면 나도 이제 엄마가 되어가나 봐.
며칠 전 이솔이가 "경청이란 무엇일까요?"라는 노래를 유치원에서 배워서 흥얼거리는데, 아차 싶더라고. 누구보다도 우리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경청해줘야 하는 사람이 바로 엄마인 나인데.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말을 너무 흘려들었구나. 일상과 집안일에 매몰되어서 아이들의 반짝이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야지. 예전 엄마는 우리가 무슨 말을 걸면 고무장갑을 벗고 이야기를 들어주던 엄마였는데. 나는 아기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바지를 기어코 벗기고 나서야 아이를 봐주는 무심한 엄마였어. 내일부터는 아이들의 눈을 좀 더 바라봐주는 엄마가 되어야겠어.
(나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도 마냥 좋은 해솔이. 설거지를 하다 내려다보니 저렇게 좋아한다.)
+ 이솔이는 이제 말을 아주 잘 하게 되었는데, 가끔 이야기가 산으로 흘러가. 그래서 내가 남편한테 이솔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한국말을 잘 하는 외국인이 이야기 하는 것 같다고 햇어. 뭔가 열심히 설명하고 발음도 정확하지만 살짝 맞지 않는 단어나 요지를 모르겠는 내용이 꼭 외국인이 이야기 하는 느낌이었거든. 그리고 이솔이의 실수 중에 고쳐주지 않는 한 단어가 있는데 바로 "왔가다가"야. "엄마랑 나랑 왔까다까하면서 한 번 씩 하자!"라고 눈을 빛내면서 말을 하는 이솔이의 발음과 모습이 귀여워서 일부러 고쳐주지 않고 있어. 이솔이가 왔다갔다라고 제대로 말하게 되는 날 조금 슬퍼질 것 같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