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5일
지난 주에는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도쿄는 생각했던 것보다 만족스러웠다. 혼자서 하는 여행은 즐거웠지만 아찔했던 사고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나홀로 여행이야말로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한동안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고생했을 정도일 때 말이다. 모처럼 '살아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 여행이었다. 직장인에게 휴가의 의미란 이런 걸까 깨닫는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돌아오고나니 남은건 허무함 뿐이었다. 일과 상념, '일상'과 다시 마주하고 나니 모든게 머나먼 꿈같았다. 일해야지. 허나 내 머릿속은 이미 어지러웠다. '어느게 나를 더 살아가게 만드는가'를 두고 벌어진 치열한 고민 때문이다. 꼬리를 물다보면 어느새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 내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까지 온다.
"기자라는 직업은 말야". 누군가 하지도 않은 말이 머릿속에 멤돌았다. 사실 이 일을 시작한 이상, 언제나 품으며 살아 간다. 그렇지만 그 말이 살인적인 업무강도까지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걸까. 문득 내 자신이 너무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서 불쾌했다. 불과 1년전 취업준비 시절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떠올리면, 비겁하지만 밥벌이의 고통은 차라리 모르는게 나았을 것 같다.
눈을 감고 가만히 떠올려 본다. 한가로운 도쿄의 대낮, 어딘지 기억도 나지 않는 공원에 서 있던 찰나의 순간. 어느새 끔찍한 전쟁터로 변해버린 일터와는 상관 없는 그곳.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면 더 예쁠것 같다며 마냥 머물고 싶었다. 혼자서 간직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풍경이다. 모두에게 나눠주고 싶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선물을 잔뜩 샀다. 어린 시절 일본에 가면 만날거라고 생각한 토토로 인형이었다. 서른살 남자에겐 통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만 사는 기자에게는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