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5일
친구가 술집을 열었다. 신촌 현대백화점 뒤. 우리가 '알코올 골목'이라 부르던 그곳이다. 녀석은 10대와 20대를 함께 보냈던 곳에 자리를 잡았다. 누구도 몰랐다. 개업을 했지만 그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사하는 곳에 아는 사람들이 마구 드나드는 게 아니라면서. 제법 번듯하게 자리 잡고 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가 신세 지는 게 미안하다 해도 가만히 넘길 수 없었다. 연락이 뜸하니 개업을 한 듯해서 직접 찾아 나섰다. 나름 기자라고 취재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어른이 대공원'. 가게 이름이 퍽이나 웃기다. 그가 큰 빚을 지고 내건 간판치곤 순진하다. 내부는 80년대 복고풍 학창 시절 소품들로 꾸며졌다. 우리가 아무 걱정이 없던 유년시절을 떠올리는 모순이었다. 그 보다 눈에 띄는 건 가게에는 흔한 화환이 하나 없었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이름 있는 가게들이 들어서고 나가는 알코올 골목이었다. 밤새도록 문 앞을 서성거렸다. 친구가 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손님이 잠시 자리를 비울 때마다, 괜히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창 틈으로 새어 나온 불빛은 날이 새도록 꺼질 줄 몰랐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밤공기가 스산했다. 때마침 친구네 스피커에선 고 김광석 씨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같이 술을 마신 게 언제였더라. 분명 노래방을 함께 갔었는데.
우린 둘 다 노래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그가 부르는 <서른 즈음에>는 꼭 한번 들어봐야 한다. 일찍 세상을 떠나신 선친을 위해 부르는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도 들을 만하다. 나는 그중 서른 즈음에는 그만이 제대로 부를 수 있다고 믿는다. 한껏 시선을 거두고 담담하게 불러야 제맛인 곡이다. 애써 더 힘을 주거나 감정을 쥐어짜 넣을 필요는 없다. 새파란 나이에 갖은 부침을 겪은 녀석만큼은 담아낼 수가 없다. 그렇게 김광석의 구슬픈 노래가 마칠 때,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렴 가게 이름은 정말 그 녀석 답다'라고 생각하면서. 다음날 개업 축하 선물을 친구네 가게로 보냈다. 예쁜 노란색 폴라로이드식 카메라를 하나 보냈다. 가끔 젊은 날 우리를 닮은 단골손님들을 만나면 사진이나 찍어서 주라면서.
서른 즈음에. 나는 기자가 되었고, 친구는 사장님이 되었다. 매일을 이별하고 하루씩 멀어지듯이 살아가는.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친구네 '어른이 대공원’이 그런 장소가 되길 바란다. 지난날 내가 그랬듯이, 누군가 그와 함께 젊은 날을 위로하는 곳이길 말이다. 몇 년 뒤 벽면 가득 걸린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서, 이곳을 찾는 이들이 아련한 스무 살 자신을 찾았으면 좋겠다. 친구의 비어 가는 가슴도 조금 넉넉하고 풍족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이곳에서 종종 술잔을 기울일 것이다. 힘겨워할 때마다 몇 번이고 독주를 함께 마셔준 녀석을 위해서다. 얼마나 서럽게 울면서, 먹은 술을 한꺼번에 토해냈던 그 골목이다. 누구든지 연락하시라. 물론 술값은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