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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eynWorks Mar 03. 2020

맥락 없는 불쌍함은 모멸감을 산다

대학 4년간 장학금을 3,000만 원 이상 받았다.

처음 장학금 지원서를 작성할 때는 눈물을 흘렸다. 

열심히 살았음에도 가난해진 부모님이 불쌍했고, 부모님을 이용한 사람들이 미웠고, 내가 불쌍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장학금 지원서 작성은 경력 나열처럼 감정은 빠지고 사실만 적혀있었다. 

산업재해, IMF, 사기, 대출, 배신, 생활보호대상자. 

어설프게 가난한 것이 아닌 서류로 증명할 수 있는 가난함은 나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서류로 증명되지 않았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선생님들이 그리고 절에서 만난 사람들이 도와주었다.     




난 이 가난을 잘 활용하였다.

난 가난하지만 당당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니 더 나를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나를 높게 평가해주었다. 내가 한 노력에 비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음에 기분이 좋았었다. 게다가 높은 평가뿐 아니라, 학원을 무료로 다니게 해 주거나, 장학금을 주는 등의 금전적 보상도 있으니 난 더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시선들은 주위 환경과 함께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니 일부러 드러내지는 말라는 조언이 들려왔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니 “그래서 뭐?!”라는 반응으로 바뀌어갔다. 


 가난한 가정환경에서의 노력은 제3자들이 보기에 대단한 것이었고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사회에서 직접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와 피해자들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술자리에서 “그래 우와 너 고생했구나. 대단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을 동정해서 나의 업무를 더 높게 평가해주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내가 이런 환경 속에서도 이렇게 멋지게 자라나 B급의 일을 한 것과 훌륭한 가정에서 자라나서 쉽게 B급의 일을 했을 때, 둘 다 모두 B급의 일인 것이다. 내가 더 고생했기 때문에 같은 B급이라면 제 것을 B+로 대해 달라는 나의 생각은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었고 내가 한 것보다 높은 인정과 칭찬을 갈구했다.     




 “난 이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돼!”

라고 말하는 후배들을 보아왔다.

거기에는 여기까지 오기 위해 과거에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에 대한 인정의 갈구가 있다. 하지만 냉정히 살펴보자.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당신과 지금 첫 대면을 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담당한 업무가 잘 진행되기를 바란다. 상대가 신입이고 초보라면, 예전 생각에 잠깐 이해하려 노력할지는 모르지만 반복되면 답답해하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그 신입이 그전에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어떤 스펙을 가졌는지는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역할을 바꿔, 본인이 10년가량 업무를 한 상황에서 함께 일해야 할 상대가 신입이라고 생각해보자. 그것도 같은 회사가 아니라 고객사에 있다고 가정하면 앞에 한 말들이 보다 이해가 쉬울 것이다.  


 삼성화재에 손해사정 업무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장기입원하는 피해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난 합의를 해야 했고, 그분은 하지 않으니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섣불리 합의금 이야기를 꺼내었다가는 금액만 올라가는 역효과가 있으니 최대한 피해자와의 마음의 유대를 쌓기 위함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내가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 이 회사에 들어와 열심히 일하니 이런 나를 위해서 낮은 가격에 합의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냐?”라는 의사표현이었다. 하지만 후에 합의가 진행되었을 때에는 앞의 나의 의도는 산산이 부서졌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 이야기를 통해서 조정할 수 있는 금액은 합의금이 결정되고 난 후 1~3만 원 소액의 조정 정도였다. 즉, 피해자가 예상하는 합의금을 조정하는 것은 나의 감성팔이가 아니라, 병원 내부의 소문과 피해자에게 적합한 합의금을 제시했다는 확신을 주는 일과 같은 활동인 것이었다. 그런데 “난 내가 이런 사람이니 당신은 이 금액에 합의해주세요.”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것보다는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 손해를 보지 않는 적정한 금액을 제시합니다.”라는 자세를 취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사회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은 

“과거의 나”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현재의 나”에 집중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과거의 나”에 집착하는 것은 나를 불쌍하게 만드는 결과만을 만들게 된다. “현재의 나”,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햇병아리이다. 아무리 경력과 같은 신입을 요구해서 스펙을 만들어 들어갔더라도, 모르는 것 투성일 수밖에 없다.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실수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나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필요성”에 대해서 정의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업무 파악은 물론 직장 스트레스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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