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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코치 Mar 15. 2022

마지막 출근을 생각하라

박 코치는 김 사장이 회사를 그만 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대기업에서 20년을 근무한 이후 10년 간 세 곳의 중견기업에서 CEO를 지낸 경영자이다. 김 사장의 이번 퇴임은 생각 보다 빠른 것이었다. 경영 수업을 받고 있던 2세 경영자에게 예상보다 빨리 자리를 비워주게 되었기 때문이다.


박 코치와 김 사장은 초등학교부터 오랜 친구이다. 대학은 달랐지만 공대에서 같은 분야를 전공했다. 두 사람의 첫 직장은 같은 업계의 경쟁사였다. 둘은 같은 해에 나란히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박 코치는 입사 6년 만에 첫 직장을 떠나 다양한 업종의 회사를 옮겨 다니며 경력을 쌓았고 두 군데 제조업체에서 CEO를 지냈다. 반면에 김 사장은 첫 직장에서 연구개발 외에도 생산팀장, IT팀장, 인사팀장, 공장장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했고 이후 여러 업종에서 CEO로 일했다.


김 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이 마지막 출근인데 점심 이후에 일찍 퇴근하니 커피나 한잔 하자고 했다. 김 사장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박 코치는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제 마지막 출근은 그냥 담담하지?”


마지막 출근을 평생 한 번 해 보는 사람도 있고 직장을 여러 번 옮긴 박 코치처럼 열 번 이상 해 보는 사람도 있다. 마지막 출근을 한두 번 하는 사람은 시원섭섭하거나 착잡하거나 아쉽거나 억울하거나 할 것이다. 마지막 출근을 여러 번 하다 보면 그 기분을 표현하는 건 그냥 담담하다는 말 밖에는 없다. 큰 느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상 같지도 않다.


“지금도 그렇지만 20년 다닌 첫 직장 그만 둘 때도 담담했어.”


“20년이나 다녔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득도하셨나?”


“회사나 부서를 옮길 때면 항상 떠날 때의 내 모습을 생각했거든.”


김 사장이 인사팀장이 된 직후였다. 새로 선임된 임원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을 하라는 지시가 그룹에서 내려 왔다. 오리엔테이션은 그룹 매뉴얼에 따라 신임 임원들에게 임원의 역할, 회사와 부하 직원들이 임원에 기대하는 바, 임원 처우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퇴임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퇴직 절차와 퇴직금, 고문 선임 및 기간, 고문 기간 중 편의 등에 대한 것이었다.


오리엔테이션 후반에 퇴임에 대해 안내를 하니 임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끝나고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회사에서 겁주는 거 같다.’ ‘임기가 짧아졌나 보다.’ 하는 농담반 진담반의 뼈있는 말이 참석자들 사이에 오고 갔다.


이후 몇 년간 김 팀장은 인사팀장으로서 퇴임하는 임원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퇴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상사와 부하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에 임원까지 승진해서 일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거나 부하들에게 더 잘 해 주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승진하거나 떠나는 임원들을 보면서 생각이 들더라고. 처음 승진해서 가슴이 벅찰 때 오히려 퇴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구나 하고. 그룹에서 그런 의도로 오리엔테이션에 퇴임에 대한 내용을 넣었는지는 모르겠어.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받아 들였어.” 김 사장의 표정은 김 팀장이었던 당시로 돌아간 듯 했다.


이후에 김 사장은 부서나 회사를 옮겨서 첫 출근을 할 때면 항상 마지막 출근하는 날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 자리를 떠날 때 업무적으로 무엇을 이루었을까, 상사로서 조직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구성원들은 자신을 어떤 리더로 기억할까 하고.


끝을 생각해 보면 지금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또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상사, 동료나 부하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시작할 때 생각해 본 자신의 끝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에 남아 있게 되고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끝 모습을 그려 보았으니 회사를 떠나게 되어도 담담할 수 있었지. 후회할 일을 최소화한다고 할까. 하하하하하...” 김 사장은 담담하다 못해 유쾌했다.


“그나저나 평생 직장에 입사한 걸 축하해.” 박 코치가 말했다.


“평생 직장? 내가?”


“응. 주식회사 하얀손. 하하하하하...”


“그런 회사가 있어?” 김 사장은 어리둥절한 눈치다.


“이 사람이 아직 진정한 끝 모습을 모르는구먼. 그 유명한 회사를 모르다니. 흰 백(白), 손 수(手!) 백수! ㈜하얀손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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