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남재 May 26. 2020

물에 빠진 생쥐, 그래도 돈은 아껴야해!

여행이 삶에 일으킨 나비효과 Pt. 7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각 마날리에 도착한다. 맥그로드 간즈에서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를 피하려고 서둘러 마날리로 왔는데 어떻게 오자마자 폭우가 쏟아지는 걸까.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듯 정말 무섭게 내려친다. 이 정도면 내가 가는 곳마다 비를 몰고 다닌다는 엄마의 말씀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 싶다.     


어둠 가득한 하늘 아래 쏟아지는 비를 뚫고 3km를 가야만 마을이 나온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고민해볼 것도 없이 사람들을 모아서 오토릭샤를 탔겠지만, 적당히 불러야지 거의 우리나라 택시요금만큼 받아먹으려고 한다. 비가 오는 새벽에 당연히 자기네들 오토릭샤를 탈 것이라 확신하는 듯 흥정도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그대들의 예상을 깨고 걸어간다. 건강한 두 다리가 있는 한 고생을 좀 하더라도 이런 양아치들한테 피 같은 내 돈을 뺏길 수 없는 노릇이다.


출발하기 전 가방을 메는데 뭔가가 이상해서 살펴보니 가방끈이 터져있다. ‘아 진짜... 잘 있다가 꼭 도착하니까 이러냐.’ 꽤 먼 거리를 가야 하는데 가방끈은 또 왜 터졌을까. 오자마자 총체적 난국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빨랫줄을 주섬주섬 꺼내 가방끈을 만들어 내 왼쪽 어깨에 대니 그럴듯한 모양새가 나온다. 3km면 금방 도착하겠지라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마을은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다. 체감상 3km는 넘은 것이 분명한데 길을 잃었나 보다. 비 때문에 스마트폰을 꺼내 위치를 볼 수도 없어 한참을 헤매다 보니 몸이 지쳐서 으슬으슬 떨려 온다. 꼬락서니가 미로를 헤매는 물에 빠진 생쥐나 다름없다. 한참을 걸려 마을에 입성하자마자 걸리적거리는 가방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레스토랑 입구에 대충 던져놓고 묵을 곳을 찾아다닌다.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으면 예약이라도 하고 올 걸 그랬다.    

  

마날리는 총 3개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버스터미널에서 가장 가깝고 편의시설이 매우 잘 갖춰진 ‘뉴 마날리’, 거리가 3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숙소 값이 그나마 저렴한 ‘올드 마날리’ 그리고 정류장에서 약 5km 정도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나 풍광이 빼어나다고 알려진 ‘바쉬싯’이 있다. 내가 도착한 마을은 올드 마날리이다. 비록 바쉬싯이 숙소가격도 싸고 풍광도 좋다곤 하지만 이렇게 비가 쏟아질 때 거기까지 도저히 걸어갈 자신이 없어 올드 마날리에 묵기로 급히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뉴 마날리에 비해 싸다고 들은 올드 마날리의 방값은 내가 예상보다 훨씬 비싸다. 맥그로드 간즈에서 묵은 숙소는 200루피였으니 여기서 300루피 정도면 방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큰 착각이었다. 꿈 깨라는 듯 가는 곳마다 최소 500루피를 부르는데 고작 1박에 저만한 돈을 쓸 수는 없다. 새벽부터 비 맞으면서 걷느라 춥고 피곤해 죽겠지만 주어진 예산을 넘어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길바닥에 잘 수도 없으므로 보이는 숙소마다 흥정을 시도하고 실패하던 중 마을 구석의 한 숙소에서 희망을 보았다.

 

“여기 하룻밤에 얼마야?”

“500루피 줘.”

“그래? 그럼 다른데 둘러보고 올게.”


이 대답에 내 어깨를 잡으며 예산이 얼마냐고 묻는다. 얼마를 원하는가도 아니고 예산이 얼마냐고 물어보는 주인은 처음이다. 딱 봐도 손님이 하나도 없는데 내가 왔으니 놓치기 싫은 것이다. 원래 흥정은 상대가 절박할 때 하는 것이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무조건 400루피 외치니 자기가 좋은 방을 주겠으니 500루피에 하자고 한다. 깨끗하기만 하다면 어떤 방이든 상관이 없다며 싼 방을 달라고 떼를 쓰니 결국엔 400루피에 방을 내어 준다.  

   

내가 인도에서 묵었던 곳 중 최고로 넓고 좋은 방이다.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테라스와 더블베드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이런 곳에서 400루피에 묵을 수 있다니, 역시 소신 있게 밀어붙이는 자만이 이렇게 큰 행운을 누릴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암리차르에서 만났던 누나는 흥정하는 것이 부끄럽고 귀찮다고 했었는데 여행을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행을 계속한다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듯하다. 기본적으로 고객들이 흥정할 것을 알고 기본 2배 이상 비싸게 부르는 곳이 인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음에 드는 것을 흥정이고 뭐고 다 사버릴 수 있는 부자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인도는 저예산 배낭여행자라면 매 순간 바가지를 씌우려는 장사꾼과 기 싸움을 해야 하는 곳인 만큼 어느 정도의 철판은 분명히 필요한 나라다.

작가의 이전글 쉽게 휘둘리는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