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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정한 마음 Nov 15. 2020

냉정과 열정사이

꼬박 닷새를 앓았다.

호흡기 증상은 전혀 없는데 고열과 미열 사이를 오가며 오한에 시달리고, 온몸에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가 다시 흩어져 몸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몸살이 시작되던 첫날부터 생리도 함께 시작됐지만 단순 생리통은 아님이 분명하고 바이러스성 통증일진대 감기 증상은 전혀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이불을 친친 감고 누워 코로나 감염 증상만 검색 해대며 내일은 진짜 선별 진료소에라도 가봐야 될까 보다고 징징거렸다. 근간의 동선을 훑으니 깝깝함이 물밀 듯 몰려왔다.


참 어지간히도 쏘다녔구나.     



그랬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좀 잠잠해지면서 아이가 유치원 등원을 시작했던 유월부터 나는 그간 미뤄둔 모든 활동들을 재개했다. 억지 힘으로 눌러둔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사방팔방으로 튀어 다녔다. 늘 한 얼굴인양 쓰고 다니는 마스크에 혹시나 하는 경계와 불안을 대롱대롱 매달고 다니긴 했지만, 짧지 않은 시간 억눌 왔던 내 안의 본능을 끌어내리기에 그것은 이제 볼을 스치는 스트랩만큼이나 하찮게 여겨 다.


대개들 그러했겠지만, 나는 그간 소통에 많이 목말라 있었나 보다. 내 시간이 확보되고 첫 번째로 시작한 활동이 독서모임을 비롯한 사람들과의 만남이었으니 말이다. 그즈음을 더듬어보고자 스케줄러를 펼쳐보니  1일 아이의 등원을 시작으로 스케줄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주 2회씩 고정적으로 가던 수업과 건강검진 같은 필수적인 일정을 제외하고라도 그야말로 빡빡한 나날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오 개월 남짓한 시간이 흘렀고,

나는 서서히 방전되어 갔다.


몸살이 시작되던 그날도 그 주에 호기롭게 시작한 운동모임의 새벽 줌 강의가 있었다.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라 아침잠이 많은 나는 한 번도 새벽 운동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오전 요가를 두어 번 시도해본 적이 있지만 하루의 리듬이 몽땅 흐트러져 금세 포기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모임 단톡 방의 멤버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새벽시간뿐이라 정해진 시간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줌 모임이 있기 전날 밤까지 며칠을 종종거리며 바쁜 스케줄에 허덕이던 나는 다음 날 새벽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시간 맞춰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에 밤새 악몽에 시달렸더니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가까스로 의식을 가다듬으며 매트를 깔고 줌을 켰다.


우리 몸과 운동 자세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대부분이었지만 중간중간 플랭크와 스쿼트 동작을 연습하기도 했다. 코치는 각자의 자세를 살피고 수정해야 할 부분을 지적해주었다. 운동을 너무 오래 쉬기도 했고 평소에 취하지 않던 동작들을 시도하려니 온 몸의 경직된 근육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그렇게 한 시간의 모임이 끝나고 나는 줌 창을 닫자마자 펼쳐놓은 매트도 걷지 않은 채 이불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잠에서 깨어난 오후부터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번엔 제법 오래 끌고 왔다. 중간에 한 번쯤은 탈이 났을 법도 한데 용케 잘 지나왔다 싶더니 어김없이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일상의 기복이 심한 편인 나는 늘 의욕에 충만해 많은 일들을 벌이고 계획하다가 금세 방전되곤 한다. 결획한 일들을 꾸준히 끌고 나아가는 힘이 부족해 마무리는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초반에 너무 많은 힘을 쏟는다.

일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심지어 글쓰기도 그러하다.

극과 극을 오가며 널뛰기하는 나에겐 삶의 균형감각을 찾는 일이 가장 큰 숙제처럼 여겨졌다.

 

내가 가진 유한한 시간과 에너지를 적절하게 배분하고 사용하는 것, 이게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깊이 자문다. 누군가는 이런 내가 열정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토닥여 주었고, 또 누군가는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나 평가기준을 너무 높이 설정한 탓이라조언해주기도 했다.

둘 다 일정 부분 수긍할 만하다고 여긴다.


좀 더 젊은 시절이었던 이십 대에는 내가 짐 진 것들이 너무 무겁고 버겁기만 해 극도로 소극적이었던 데 반해

삼십 대를 맞이하던 즈음부터 나는 마치 그 시간들을 보상받고 싶기라도 한 듯 과하게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배우고 싶은 것과 해보고 싶은 것들이 늘 넘쳐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가슴 설렜다. 아마 이십 대 중반의 쭈구리 시절(흑역사라고도 하지)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지금 다시 만난다면 아마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면, 나는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늘 외부로부터의 인정을 갈망하고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스스로를 힘들게 몰아붙인 다는 것.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나의 바운더리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알지 못하고,

외부의 인정에 기대 내가 해낼 수 있는 경계치 이상을 발휘해 내  끊임없이 스스로를 고갈시킨다는 것.

집안의 장녀로 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오랜 시간 끌려온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롤 언니는 어느 글에서 그렇게 충고했더랬지.

10cm 피자 반죽은 20cm 반죽만큼 일시적으로 당겨질 수는 있지만 곧 찢어지고 만다. 나는 그 단순한 진실을 종종 간과하곤 한다. 


내가 지닌 반경이 10cm인지 20cm인지를 명확히 아는 것, 그리고 무리하게 내 반경을 뛰어넘지 않는 것.

자꾸만 달음질하는 나의 '열정'

한 순간에 그걸 식혀버리고 마는 '냉정'

그 사이 어디쯤엔가 나의 반경을 가늠해보려 한다.


그리고 다시금 또박또박 내 안에 되새는 말들.


외부로부터의 인정을 갈구하기를 멈추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것.
나는 실제로 어떤 (성격과 능력을 지닌)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 부단히 애쓸 것.
지금 내 일상에서 덜어내야 할 것과 채워 나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수시로 점검할 것.
내가 나에게 주는 '진짜 인정'을 구할 것.
어느 순간이든 내가 나를 무한히 응원할 것.   

 

...

심하게 앓고 난 뒤

평온한 일상을 회복하고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됨에 안도하며,

담담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오늘의 기록.

  


덧)

그래도, 적당히, 쏘다니자.

코로나 3차 유행을 앞두고

마스크는 필수.

개인위생 철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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