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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Apr 25. 2021

해국

절망이 피우는 꽃

까마득한 벼랑에 오른다
인적 드문 비탈
소속 없는 잡초가 무성하다
닿을 수 없는 바닥에 입 맞추면
베여버릴 오늘
경직된 발가락들의 휘청임

무겁기만 한 과거를 지고
험악한 바위틈
잃어버린 용기를 찾는다
오늘이 없는 미래로
내일이 없는 현재를 더듬는 긴 침묵


효시를 쏜 자는 보이지 않고
해풍이 눈을 때리는 짜고 비릿한 전쟁
가냘픈 다리는 단단한 바위틈에 박고
기다리면 그친다


기다리면 그친다
되뇌도 소용없이 웅크린 겁에 질린 몸
죽음의 공포를 견디는 긴 기다림

휘몰아쳐 오는 바람에 맞서
실눈 뜨는 법을 배운 날
깊숙이 떠는 두려움을 찢고
더 나아갈 길 없는 절벽에
해국이 피었다

희망은
파란 멍과 붉은 피를 삼키고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보라색 꽃 한 송이를 피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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