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윤미 Jul 12. 2020

아픈 몸, 모두 당신 탓은 아닙니다.

(서평)우리 몸이 세계라면

2020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우리는 모두 코로나라는 역사적 진창 속에 빠져있다. 얼마 전까지는 어느 정도 진창 속에서 헤어 나오는 것 같았는데, 다시 한쪽 발이 깊숙이 빠진 기분이다. 이런 썩어빠진 진창 같은 코로나는 우리 모두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관계하며 영향을 주고 사는 지를 적나라하게 증명해줬다. 심지어 대한민국 안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제 확인시켰다.      




김승섭 교수의 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서도 우리 각각의 몸들은 커다란 하나의 세계 속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말한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몸은 타인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우리는 서로 어떤 관계를 맺어야 더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사실 책 제목을 들었을 때, “우리 몸이 세 개라면”인 줄 알았다. 몸이 세 개였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은연중에 그렇게 읽힌 것 같다. 책 표지에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사회사”라는 말이 적혀있었지만 내용을 짐작하긴 어려웠다. 그만큼 생소한 연구 분야라는 소리이기도 하다. 다행히 김승섭 교수님의 문장은 이해하기 쉬웠다.      


이 책의 핵심은 ‘나’라는 몸에 일어나는 일들의 원인을 오직 ‘나의 유전인자’, ‘나의 성별’, ‘나의 습관’, ‘나의 식생활’ 같은 개인적인 요인들 때문이라고 단정 지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조건들이 어떤 질병에 취약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더 자주, 또는 많이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주로 사회 구조적인 요인들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들을 역학적으로 검증한 내용들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그러한 질병들의 원인을 약자인 개개인에게 떠넘긴 부당한 사회 구조와 그로 인해 죽음까지도 불평등해진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참 아픈 책이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는다. 그런데 책에서는 질병의 전형적인 증상들을 판단하는 기준이나 약물을 복용하는 허용치가 모두 남성을 기준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여성으로 태어난 누군가가 질병에 걸렸을 때, 남성이 가지는 전형적인 증상들이 나타나지 않아 진단 시기를 놓치는 것은 그녀의 탓이 아닐 텐데 말이다. 그리고 병원으로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나 소득의 불평등으로 밤낮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치료시기를 놓치고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을 피하지 못한 사례들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저자는 사회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죽음조차 불평등한 사회에 꽤나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정말로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입니까?”     


저자는 과학이 가지는 신뢰도가 과학이 도출한 결과에 있지 않다는 점도 강조한다. 우리가 과학을 신뢰하는 것은 과학이 사용하는 방법인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사유 과정’을 신뢰하기 때문이므로 과학의 결론이 아니라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본가와 권력가는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편향된 지식을 생산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담배회사가 연구비가 부족한 과학자에게 전폭적인 자본을 지원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스트레스가 폐암의 원인이라는 말은 전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담배회사가 폐암에 걸린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몸을 지키고 우리 몸이 건강할 수 있도록 과학적 지식의 생산과정도 확인해야 한다. 어떤 기관의 지원을 받아 연구했는지, 연구 결과는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를 사회적 역사적 맥락으로 접근해야, 편향된 지식에 오도당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가 먹고 산다지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다.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당연하게 뿌리 박힌 사회 구조적 차별과 불합리한 폭력 속에서,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사회 환경적 요인으로 점점 더 병들고 죽어가는 일들을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가 속한 사회는 피할 수 없고 예기치 못한 위험한 일들로부터 나의 몸과 너의 몸,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몸을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더러운 진창 같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사회에 가장 취약하고 소외된 곳들이 제일 먼저 무너지고 있다. 무너지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서 안도하는 비겁하고 저급한 사회 구성원은 되지 말자. 나는 결코 그러한 위험에 빠지지 않을 거란 법은 없다. 건강한 사회는 약하고 아프고 병든 사람을 향해 손을 내민다. 불의의 사고로 누군가가 넘어졌을 때, 최소한 스스로 걸어갈 수 있을 때까지는 부축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각각의 몸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 신의를 가지고 연결된 건강한 세계가 되어가길 바란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기사로 실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이코 고문영의 물음 “그럼에도 날 사랑할 수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