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아픔이 길이되려면(김승섭)
로세토 마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196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에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로세토 마을이 있었다. 심장병 위험인자가 높은 지역이었던 로세토 마을 주민들을 진료하던 의사들은 그들이 술과 담배를 즐기고, 비만 인구도 많았으나 심장병 사망률은 현저히 적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이는 로세토 마을에 대한 “특이하게 낮은 심장병 사망률”연구로 이어졌다. 오랜 연구 끝에 발표된 논문은 흥미롭게도 “로세토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건강한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의학 논문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구절이다. 논문 저자들은 기존 의학지식만으로는 낮은 심장병 사망률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지만 막연하게나마 공동체가 가진 문화에서 단서를 찾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로세토 공동체 문화의 특징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다.
로세토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는 큰 특징은 그들의 삶이 즐겁고, 활기가 넘치며 꾸밈이 없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를 도와주었다. 로세토 공동체의 건강한 문화는 실제로 질병 사망률을 낮추는 데 유의미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로세토 마을 사람들이 건강했던 이유는,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속한 사회가 어려움에 처한 나를 기꺼이 도울 거라고 믿는 “상호 신뢰”는 삶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떠한가? 어려움에 처한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가? 우리 사회의 상호 신뢰 수준은 높은가?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몸은 건강한가?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연구 분야를 개척해나가고 있는 보건학자인 김승섭 교수는 그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질병에 대해 사회 구조적인 접근으로 다가간다. 그는 현대인들의 몸이 그들이 속한 정치 사회적 구조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또한 특정 집단을 향한 차별과 부조리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차별과 폭력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뚜렷하게 흔적을 새긴다고 한다. 사회적 폭력과 구조적 차별이 한 개인, 혹은 한 집단을 병들게 하는 동안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왔을까.
우리는 질병의 원인을 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찾아왔다. 아픔이 생기거나 병에 걸리면 습관이나 유전, 흡연과 음주 유무 등을 통해 원인을 추론하곤 했다. 그러나 고통의 원인이 사회 구조에서 기인한다면 사회적 치유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 폭력을 당하는 아이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아이가 처한 학교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고 직장 내 성차별을 겪은 사람이 회복하려면 일터의 문화개선이 필수적이다. 차별과 부조리에 대한 사회 정책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방안이 마련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되기까지 걸리는 오랜 시간동안 누군가는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부당한 이유로 불이익을 받고, 또한 불의의 사고로 다치게 될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
우리는 먼저 부당한 차별과 폭력을 인식하고, 차별과 폭력에 동참하지 않으며, 고통받는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들을 돕는 손길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잘못된 일들이 자행되고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때, 결코 선량한 방관자가 되어선 안된다. 수많은 방관자들이 악의 횡포를 묵인했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철저히 소외시켰으며 더욱 아프게 했다. 저자는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있는 사회, 그리고 그들이 병들어 무너졌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돕고자 하는 최소한의 양심과 이타심으로 세워져 갈 수 있다. 아름다운 상호 신뢰의 사회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보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작은 친절을 베푸는 것 부터 시작이 될 수 있다. 타인을 향한 최소한의 양심과 이타심을 실천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름다운 사회를 향한 희망의 씨앗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