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가슴과 두 팔

너를 사랑하는 법

by 양윤미

요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제일 먼저 찾는 게 있다.

“엄마! 글라스 데코 해도 돼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로 아이들은 구경만 했고 실제로 만드는 것은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도와주려고 하면 화를 내고 혼자서 스스로 하겠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아이는 펜을 너무 세게 눌러서 물감이 흘러넘치도록 부어놓고 잘 안된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고, 흘러넘친 두 물감이 만나 요상한 모양으로 뒤섞이자 울먹인 적도 있다. 그래도 아이는 엄마의 도움을 한사코 거절한다. 눈물을 쓱 닦더니 “혼자서! 스스로!“를 외친다. 물감을 너무 많이 짜 올린 아이의 작품들은 말리는 데 한 참이 걸린다. 다행히 건조가 된 후에는 모양이 그럴싸하게 나온다. 직접 만든 글라스 데코를 보며 뿌듯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언제 이렇게 다 컸나 싶다.


엄마가 만든 것과 아이가 만든 것, 구별 되시죠? ^^

아이가 태어나서 하는 모든 활동들은 끊임없는 실패를 통해 마침내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뒤집는 것도, 기는 것도, 앉는 것도, 서는 것도, 마침내 걸음마를 내딛는 것도, 수도 없는 넘어짐과 부딪힘을 통해 배우는 일들이다. 어쩌면 인간으로 태어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활동들이 가진 공통점일수도 있다. 때로는 좌절과 실패의 터널을 지나야만 얻어지는 것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살면서 실수나 실패의 경험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단지 좌절한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내딛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다를 뿐이다. 다시 일어서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능력을 심리학 용어로 “회복탄력성”이라고 한다. “회복탄력성”은 쓰리고 아픈 마음을 다잡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다시한번 다음 방향을 모색하는 능력이다. 회복탄력성은 건강한 자존감의 밭에서만 열매 맺는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나의 존재 자체에서 의미를 찾기보다 다른 것들로 내 존재를 증명하려고 한다. 성적이나 외모, 학교의 간판, 인맥, 사는 집, 재산 같은 것들로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기도 하고 어깨에 힘을 주기도 한다. 자신을 잘 포장했던 포장지들이 벗겨지거나 찢어지는 순간이 오면 극심한 위협을 느낀다.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았던 나의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조금만 아파도 될 것을 너무 오래 아파하고, 툴툴 털어버려도 될 것을 오래도록 가슴 속에 간직했던 것 같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을만한 존재인지를 확인하려했다. 나를 아껴주지 않고 외면할 것 같으면 먼저 밀어내버리면서 살았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많은 시간동안 그렇게 헤맸다.


내 아이는 나보다 덜 실수하고, 나보다 덜 아파하고, 나보다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고 어려운 일들은 최대한 피해갔으면 좋겠고, 불가피하게 마주한 어려움 앞에서는 뚝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설사 넘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속히 툴툴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내 아이는 나보다 더 많이 웃고 떠들며 사랑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의 엉망이었던 좌절과 실패의 순간을 행복한 기억으로 끌어안을 때가 오지 않을까? 나의 못난 모습까지도 있는 모습 그대로 끌어안을 수 있는 게 바로 자존감이 아닐까?


데코 펜을 잔뜩 묻힌 손을 스스로 씻겠다는 아이들은 세면대에서 야무지게 비누칠을 한다. 그러다가 깔깔 웃으며 물놀이를 시작한다. 이렇게 20프로쯤은 부족한 게 바로 아이들의 매력이다. 축축해진 옷들을 잠옷으로 갈아입혀주자 아이들은 좀 더 놀겠다고 뛰어다닌다. 잘 시간이 되었다는 말에 아이들은 침대로 가서 억지로 눕는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깊이 잠이 든다.


작고 여린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만져본다. 몸부림에 이리저리 뒤척이는 아이의 베개를 바로 잡아주고 이불을 덮어준다. 잠든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니 이상하게도 나를 사랑하는 데는 헤맸을지언정 아이들을 사랑하는 데는 헤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처럼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엔 스스로를 보듬고 살아가게 될 내 아이를 응원하는 법은 어쩌면 간단하지 않을까. 곁에 있어주는 것, 그리고 더욱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말 그 뿐인 것 같았다. 부모로서 내가 가져야 할 첫 번째 조건은 그저 아이를 안아줄 따뜻한 가슴과 두 팔이었다. 세월이 지나 더 늙고 왜소한 몸이 되어도, 내게는 여전히 따뜻한 가슴과 두 팔이 있을 것이니 다행이다. 그렇게 오늘도 잠든 아이 곁에서 사랑하는 아이를 위한 여러 가지 다짐들을 해보며 함께 잠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