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윤미 Nov 22. 2022

숙성

시큼 털털

배추의 여정을 상상한다          


한없이 내어주던 대지 위에서

굳은 심지로

단단한 몸을 키워오던 배추는     

뿌리 채 뽑혔을 것이다

날벼락같이

사나운 폭포로 던져졌을 것이다     

따갑게 몰아치는 한 주먹의 소금에

눈물이 앞을 가려도

피할 길 없어 조용히, 숨죽였겠구나     

호되게 매운 손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오롯이 견뎌냈을 너의 한 철

자박자박 농익은 냄새, 시큼하다      


김치를 꺼내다 말고

내 안에 누운 배추를 본다


너는 몇 번쯤 죽었지

빨갛게 연한 속살로

몇 번쯤 더 죽을 수도 있어

     

뚜껑을 열고 본다          

잘 익어가고 있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누룽지 한 그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