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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Nov 22. 2022

숙성

시큼 털털

배추의 여정을 상상한다          


한없이 내어주던 대지 위에서

굳은 심지로

단단한 몸을 키워오던 배추는     

뿌리 채 뽑혔을 것이다

날벼락같이

사나운 폭포로 던져졌을 것이다     

따갑게 몰아치는 한 주먹의 소금에

눈물이 앞을 가려도

피할 길 없어 조용히, 숨죽였겠구나     

호되게 매운 손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오롯이 견뎌냈을 너의 한 철

자박자박 농익은 냄새, 시큼하다      


김치를 꺼내다 말고

내 안에 누운 배추를 본다


너는 몇 번쯤 죽었지

빨갛게 연한 속살로

몇 번쯤 더 죽을 수도 있어

     

뚜껑을 열고 본다          

잘 익어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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