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큼 털털
배추의 여정을 상상한다
한없이 내어주던 대지 위에서
굳은 심지로
단단한 몸을 키워오던 배추는
뿌리 채 뽑혔을 것이다
날벼락같이
사나운 폭포로 던져졌을 것이다
따갑게 몰아치는 한 주먹의 소금에
눈물이 앞을 가려도
피할 길 없어 조용히, 숨죽였겠구나
호되게 매운 손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오롯이 견뎌냈을 너의 한 철
자박자박 농익은 냄새, 시큼하다
김치를 꺼내다 말고
내 안에 누운 배추를 본다
너는 몇 번쯤 죽었지
빨갛게 연한 속살로
몇 번쯤 더 죽을 수도 있어
뚜껑을 열고 본다
잘 익어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