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워했던 엄마에게.

엄마, 사랑해.

by 양윤미

누군가를 향한 서운함이 쌓이고 쌓이다가 실망이 되고 이제 더 이상 그 무엇도 기대할 것이 없다고 여겨지는 때를 맞이하면 관계는 끝난다. 그 상대가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배우자라면 이혼하지 않는 이상 모든 실망감을 삼키고 참을 수밖에 없다. 나의 엄마는 그래서 우울하고 자주 폭발했으며, 나를 예뻐해 주지 않았고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지도 않았으며 나의 감정과 마음 상태를 알아봐 줄 여유도 없었다. 엄마는 본인의 삶이 너무 힘이 부쳐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두 살 터울의 남동생과 여덟 살 터울의 여동생에 비하면 나는 큰 아이였기에 엄마는 엄마의 도움을 요청하는 나에게 “이런 것도 혼자 알아서 못하냐!”라고 닦달하기 일쑤였다. 나는 그렇게 혼나는 것이 끔찍이도 싫었기에 결국엔 도와달라는 말, 잘 모르겠다는 말 같은 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러자 갑자기 날더러 뭐든 알아서 잘하고 부모가 손댈 게 없는 아이라며 칭찬했다. 나는 칭찬이 좋았지만 황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는 바보 같은 어른으로 자라 버렸다.


엄마의 생일을 맞아 꼬질꼬질한 돈을 들고 학교 앞 문구점에 가서 가장 반짝거리고 비싸 보였던 보석 상자를 샀다. 생일 축하한다며 보석 상자를 내밀자, 엄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상자를 집어던졌다. 내가 너랑 친구냐며, 어디서 이따위 물건을 엄마 선물이라고 사 가지고 왔냐며 화를 냈다. 엄마의 기뻐하는 얼굴을 상상했던 나는 되려 혼이 나는 황당한 상황에 말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한참 후 엄마는 문득 미안했는지 상자를 다시 주워와 반지와 목걸이들을 담아두고 꾸준히 화장대 앞에 보관했다. 그러나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상처 입고 찢어진 내 마음은 골이 깊게 파여 갔다.


자주 체하고 소화기가 약했던 나는 동네에 용하다는 할머니 댁에 가서 손가락을 따곤 했다. 할머니가 등을 두드려주면 막혔던 것들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고 이내 시원한 트림이 나왔다. 엄지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검붉은 피를 쭉 뽑고 나면 속도 편해지고 마음도 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심하게 토하고 학교도 가지 못할 정도로 아픈 날이었다. 동네 용한 할머니 집이 아니라 병원을 가야 했고 엄마와 함께 진료를 본 후 약을 먹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쓰린 속을 붙잡고 잠에서 깨보니 나는 혼자였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무섭고 머리도 아프고 혼자 있기 싫다고 칭얼거렸다. 엄마는 나의 머리맡에 쓰레기통이 있으니 토하고 싶으면 거기다 토하고 다시 누워 자라며 차갑게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화를 내고 싸워야 할 대상을 잘못 잡은 엄마는 만만한 딸을 희생양 삼아 그렇게 자신의 쓰레기 같은 감정을 풀고 있었다.


서운함이 쌓여 실망이 되고 그 무엇도 기대할 것이 없어지자 나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기로 했다. 엄마는 나의 보호자였지만 나는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으로부터 애정을 느낄 수 없었다. 한 발자국이 아니라 열 발자국, 아니 스무 발자국쯤 멀어졌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갑작스레 엄마가 돌아가셨다. 미운 감정도 여전히 생생하고 집에 가면 다시 마주할 것만 같은데 미워할 대상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자꾸만 아프고 쓰라렸던 나쁜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아빠와 격하게 치고받다가 엄마의 입술이 터져 응급실로 갔던 날의 차갑게 시리던 병원 복도, 마음을 풀 데가 없었던 엄마가 손대지 말았어야 할 도박에 손대기 시작한 후 날아왔던 법원의 벌금고지서, 당신이나 제대로 살라고 발악하던 나의 뺨을 세게 후려갈기고는 스스로도 놀라 멈칫하던 엄마의 표정들. 이미 돌아가신 엄마에 대해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은데 화해하지 못하고 풀지 못한 숙제들만 떠안고 사는 것 같아 괴롭다 못해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엄마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순식간에 생사를 헤매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순간, 나는 엄마 곁에서 임종을 지켜주지 못했다. 빠른 속도로 날아와 엄마를 낚아채간 죽음이 원망스러웠다. 죽음의 목전에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겨지게 될 나를 걱정하며 눈을 감지 못했을까. 아니면 그동안 부끄럽게 살았던 지난날을 사과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의 마음을 늦게나마 전하고 싶었을까.

갑작스레 준비되지 못한 이별을 하고 영영 헤어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두 딸의 엄마가 되고 보니, 젊은 나이었던 엄마가 생사의 기로에 선 순간에 가장 만나고 싶었던 것은 자식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이제 와서 엄마가 너무 애틋하다. 내게 애정을 쏟아준 기억보다 나를 외면하고 밀어내던 기억이 많은 미운 엄마지만 나는 엄마가 그립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삶이 너무나 아프다. 엄마의 잘못된 행동과 말들로 상처를 많이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는 것 같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조금 더 자란 내가 되어 엄마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니 참 애잔하다. 엄마는 큰 딸이 살림밑천을 대주는 거라고 믿는 부모를 만나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며 살았다. 게다가 엄마에게서 가장 최악의 모습만을 이끌어내는 배우자를 만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엄마의 편이 되어주었을 나에게 상처만 안겨 주었다. 엄마의 삶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잘못을 내가 바로잡을 수 있었던 순간들은 있었을까. 아니, 아이였던 나에게는 전혀 그럴 힘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엄마의 삶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며 여전히 고통스러운 걸까. 그건 내 탓이 아닌데 말이다.


더 이상 미뤄둘 수 없어 나의 아픈 마음을 헤집고 들어가 보니 서서히 내 마음속 진실이 보였다.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엄마가 잘 되기를 바랬다. 온 마음을 다해, 엄마가 행복하길 바랬고 건강하게 잘 살아주길 바랬다. 엄마에게 인생 그따위로 살지 말라고 바락바락 대들며 싸웠지만 내 마음속의 진심은 “엄마, 나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였다. 상처와 상실의 고통이 너무 커서 지금껏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던 엄마를 향한 나의 진심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엄마가 그 사랑을 제대로 바라봐 주었다면, 아마 나에게 보다 더 따뜻하고 좋은 추억들을 더 많이 남겨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나의 진심을 마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꿈속에서라도 엄마를 만난다면 꼭 말해줄 것이다.


“엄마, 사랑해. 그곳에선 행복하게 잘 지내. 진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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