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남는 건 조용하다

수수함이 주는 편안함과 잔향의 힘

by 밝은 미인


사람들은 저마다 눈에 띄고 싶어 한다. 나이 어릴수록 그 욕망은 더 노골적이다. 남들과 다른 옷을 입고, 눈에 띄는 머리를 하고, 때로는 몸에 흔적을 새긴다. 그 흔적이 곧 나를 증명해 줄 것이라 믿는다.


스무 살 무렵의 나도 그랬다. 백화점의 조명을 따라가며 반짝이는 옷과 가방을 좇았다. 남들이 “예쁘다” 말할 때마다 내가 예쁜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보니, 그 말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옷이 예뻤고, 가방이 예뻤을 뿐이었다. 나는 그 반짝임의 덤처럼 곁에 서 있었을 뿐이다.


겉의 화려함은 언제나 이면을 품고 있다.

복권의 앞면은 은박지로 반짝이지만, 뒷면은 무심한 숫자의 나열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무대 위에 조명이 켜지는 순간, 동시에 누군가는 어둠 속으로 밀려난다. 꽃도 그렇다. 길가에 핀 노오란 꽃들 사이, 빨갛게 튀는 꽃 하나는 더 눈에 띈다. 그러나 그만큼 꺾일 확률도 높다. 화려함은 늘 시선을 끌고, 시선은 언젠가 시기가 된다.


향수에서 오래 남는 것은 향이 아니라 잔향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오드퍼퓸과 오드뚜알렛의 차이처럼, 첫 향은 누구나 매혹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은근히 머무는 냄새, 그것이 오래 기억된다. 수수한 사람은 그 잔향을 닮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편안해서, 오래 두고 보고 싶어진다.


수수함의 매력은 보여주려 애쓰지 않는 데 있다.

굳이 꺼내놓지 않아도 그 사람의 속이 궁금해진다. 돌잔치 이벤트 선물로 반짝이는 포장지를 뜯었는데 컵라면 박스가 나온 순간의 허탈함처럼, 겉의 화려함은 종종 실망을 남긴다. 그러나 수수함은 기대보다 깊다. 불꽃놀이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하늘을 밝히는 은은한 별빛에 가깝다.


그래서 굳이 화려해지고자 애쓰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아도, 넘버 원이 아니어도 괜찮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고, 내 삶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들을 지켜내는 것. 그게 잘 사는 증거라면 수수함은 화려함의 반대가 아니라 또 하나의 빛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오래 남는 것들은 대체로 조용하다.
봄날의 꽃은 화려하게 터졌다가 금세 진다. 여름의 나무는 화려하지 않지만 큰 그늘을 만들어 준다. 바다는 늘 같은 얼굴이지만 그 꾸준한 일상성 덕분에 사람들은 해마다 바다를 찾는다. 삶도 그렇다. 불꽃처럼 빛나던 순간이 나를 만든 게 아니라, 매일 반복되던 수수한 평범의 순간들이 결국 나를 지속해 주었다.

수수함은 결국 화려함이 줄 수 없는 것을 품고 있다. 남에게 보이는 순간의 찬란함이 아니라 나를 오래 살게 하는 힘. 화려함은 남을 향하지만 수수함은 나를 향한다. 그리고 나를 붙드는 힘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남들과도 오래 함께할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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