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발걸음

나는 내가 싫은데, 너는 나를 좋아한다. <2화>

by 글한송이

"한쌤, 오늘 수업 하나만 더 맡아주면 안 돼요? 김쌤이 아파서 반차 쓴다네."


토요일에 이러긴가. 물론 평일이라도 당연히 싫었다. 거절하는 게 내 성격에 맞았지만, 강의실에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과 눈이 마주쳐버려서,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다음부턴 힘들어요. 오늘은 마침 시간이 있는 거니까."


김쌤 처지가 안쓰러워 돕는 게 아님을 분명히 명시했다. 딱 이번 만이라고 강조했다. 원장은 듣는 둥 마는 둥 고맙다며 휙 지나가버렸다. 김쌤 반이 고급 반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말하기 수업이라 토론 주제 하나 던져주고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오늘 김 선생님이 편찮으셔서, 제가 대신 수업할 건데. 괜찮아요?"


"네!"


아는 학생들도 있었다. 초급과 중급을 내게 배우고 고급을 김쌤한테 배우는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다들 반겨주는 분위기라, 덜 불편했다.


"오늘 진도 보니까 토론 수업이던데, 지난 시간에 주제 정했어요?"


초급, 중급 학생들의 수업 진행 속도는 얼추 맞지만, 고급은 교사 재량인 시스템이었다. 학생들 중 유독 똘똘해 보이는 어린 친구가 적어둔 메모를 읽었다.


"환생이란 존재하는가? 가 주제예요."


전생, 이승, 저승, 천국, 지옥, 그리고 환생까지 온 건가. 새삼 김쌤의 창의력이 감탄스러웠다. 출석부를 확인하니, 마침 인도에서 온 학생이 있었다. 힌두교와 불교에서 유래한 환생 사상은 인도 계층 종교에서 윤회라고 칭한다는 건 모두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서, 그 학생에게 먼저 의견을 물었다. 학생은 예상했다는 듯, 태연하게 답했다.


"인도 사람 대부분은 윤회 사상, 환생을 믿을 거예요. 하지만 전 기독교라서 아니라고 대답하려고요."


머쓱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문화까지 가르치는 한국어 교원 강사가 편협한 사고로 다양성을 잊고 있었다니. 창피해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절반 이상이 힌두교라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인도 내에서도 배척이 심해서 저희 종교는 공격받기 일쑤예요. 그런 사람들한테 묻고 싶죠. 종교가 다르다고 살생을 일삼는다면, 당신들은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나겠느냐고."


이후 토론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늘 느끼는 거지만 놀랍다. 나는 이런 추상적인 주제로 타인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던가. 외국어는 고사하고 한국어로도 감히 말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좋아하지만, 쉽지 않았다. 누구 하나 빼지 않고 각자의 주장을 심도 깊게 나누었고, 두 시간이라는 수업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다들 저들끼리 저녁을 먹기로 했다며, 수업 종이 침과 동시에 자랑했다.


"쌤도 가실래요? 저희가 이번에 진짜 JMT 맛집 찾았어요."


한국인이라고 해도 믿겠다 싶은 신조어를 적절히 사용했다. 미소로 거절했다. 아마 여기 학생들은 내가 사람 대하기를 두려워한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성격대로 수업을 했다간, 지금과는 정 반대로 학생 인기투표 꼴찌를 기록할 게 분명했다. 가끔 내가 지킬 박사의 실패작이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여러분끼리 맛술 하세요~"


또 원장에게 잡힐 세라 부리나케 나왔다. 선선한 저녁 바람이 뺨을 스쳤다. 처음 각오완 달리 열정적으로 수업한 건지 볼이 뜨거웠는데, 마침 식히기에 딱 좋은 온도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싱숭생숭했다. 원래 토요일 퇴근길엔 이렇지 않았는데, 뭘 빼놓고 온 건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보내지 않으면 어딘가에서 문제가 생겼다. 예정에도 없던 수업을 했으니 그럴 만했다.


'아냐, 짐도 다 챙겼고, 이제 저 인파만 뚫고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서 카드 찍고 1-1 의자에 앉아 있는 그 남자 얘기 들으면서 집에 가면..... 뭐?'


언제부터 지하철 남자가 하루 계획에 포함된 건지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오늘은 평소보다 2시간가량 늦게 탈 테니, 그는 거기 없을 거였다. 발걸음이 늦춰졌다. 숨이 차는 게, 왜 이렇게 빨리 걷고 있었는지 의아했다. 커피 향 그윽한 카페를 지났다. 카페 안 은은한 조명 아래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의 여유가 부러웠다. 괜히 휴대폰을 들었다. 연락해서 볼 친구 누구 없을까, 친구 목록을 휘릭 살폈다.


'얘랑은 마지막에 멀어졌고, 얘는 좀 어색한데... 아, 주연이는 지금 대학원 때문에 정신이 없겠구나.'


결국 난 아싸라는 사실을 한 번 더 직시하는 데 그쳤다.


"저, 저기요!"


누군가 뒤에서 날 불렀다. 날 부른다는 걸 또렷이 알 수 있었다. 며칠을 들어온 익숙한 목소리였다. 침착하게 걸음을 멈췄다. 멀리서부터 달려온 건지, 지하철 남자가 무릎에 손을 얹고 헥헥 대다가, 간신히 숨을 고르고 환하게 웃었다. 잠깐 사이에 식어버린 가슴이 다시금 훈훈해졌다.


"오늘 못 만나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그러게요. 이상하죠. 왜 나도 안심이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오늘 말을 많이 해서 목이 칼칼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다행히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


"음... 커피 한 잔 할래요?"


그는 카페 앞을 서성이고 있는 나를 살피더니, 달콤한 제안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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