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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어디 어디 가봤어?

일곱 번째 유럽 - 영국 런던 편

by 글한송이

작년 이맘때 즈음엔 그토록 열망했던 영국 여행에 얼마나 설렜는지 몰라요. 대학원생이 어떻게 한 달 여행을 떠날 수 있냐는 질문도 받았는데, 랩실이 없는 과라서 이런 사치스러운 여유를 부릴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거기다 초등학생 때부터 디렉트로 휴학 한 번 없이 배움의 과정을 겪는 게 체력적으로 부담스럽기도 했고, 다른 자격증 공부도 겹친 데다가, 건강 상의 문제도 겹친 바람에 학업을 중단할 생각이었거든요. 학위 논문을 위해 잠깐 숨통 트일 시간을 마련한 셈이라고 합리화를 하면서요. 어쨌든, 전 세계를 여행하겠다는 꿈은 차곡차곡 쌓아둬야 하는 거니까, 기꺼이 한 달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동생도 함께였죠. 이제 동생 없는 여행은 자신도 없을뿐더러, 어디서도 재미를 느끼지 못할 거라 확신해요. 그만큼 여행에 있어 동생은 제게 소울메이트 그 이상이에요. 여태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항상 제가 숙소, 교통, 식당 등 전체적인 일정을 짰던 탓에 이번만큼은, 최소 국가 하나 정도는 동생이 전적으로 담당하기로 했어요. 동생에겐 도전이었고, 저에게도 모험이나 다름없었죠. 자식이 마흔이 넘어가도 할머니한테 엄마는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애인 것처럼, 동생은 영원히 동생이잖아요. 하지만 아주 알차게 런던 곳곳을 누비고, 해리포터 스튜디오까지도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20190704_160821.jpg bayswater 지하철 역


런던에서의 일주일은 Bayswater 역에서 지냈어요.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날이 너무 좋아서 당장이라도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다음 날을 기약했어요. 베드 버그가 기승이라기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고, 일단은 피곤했거든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마음껏 즐기겠다는 각오로 숙면했습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느낀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불면증에 시달리는 데다가 365일 중에 364일 꿈속을 배회하느라 자도 잔 것 같지 않은데, 유럽에선 늘 잘 자요. 런던에서도 마찬가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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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파크, 켄싱턴 궁전


런던은 과연 대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공원 조성이 잘 되어 있었어요. 서울엔 어린이대공원 말고 있긴 한가 싶더라고요. 평생을 서울, 경기 수도권에서 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시골은 한가롭지만 답답하고, 서울은 인프라가 잘 되어 있지만 정작 나가기는 꺼렸거든요. 사람이 많은 건 좋은데, 그 틈으로 들어가는 건 싫은,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 때문에요. 그런데 런던은 한가로우면서도 도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색다른 도시였어요. 영국은 늘 비가 오고 우중충하단 소리를 들어서 날씨 기대는 전혀 안 했는데, 사진 찍기에 완벽한 햇살이 내내 펼쳐졌답니다. 물론 비도 봤어요. 하지만 일주일 중 하루였으니, 나머지 엿새는 완벽했다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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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만의 빅벤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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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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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아이와 빨간 공중전화 부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나, 징크스는 깨지질 않았어요. 어딜 가든 꼭 한 곳 이상은 공사 중이던 얘기, 기억하실까요. 런던 국회의사당, 빅벤이 150년 만에 보수 공사에 들어갔단 소식을 알고도 갔지만, 아쉬움이 컸어요. 규모가 웅장해서 가슴 벅찬 멋짐을 뿜뿜(?)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싶더라고요. 그래도, 늦은 저녁 런던 아이에 탑승해 시내 전경을 훑어보면서 작은 위안을 삼았죠. 영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런던 전반을 직접 보고 싶으시다면, 런던아이 탑승 강력 추천드릴게요! 야경도 멋있겠지만, 여름이었고 해가 길어서 19시 30분에 타서 햇살과 차분한 하늘빛을 마주했어요. 그래서 더 좋았던 것도 같아요. 다음에 또 런던을 찾을 구실도 만들었고요.


여행을 시작한 첫날부터 하루 종일 걸었더니 다리가 욱신대는 게, 중간중간 쉬어주지 않았더라면 정말 난감해질 뻔했어요. 나중에 시간으로 계산해 보니까 총 7시간 30분을 걸었던 거 있죠? 웬만한 관광 명소들은 다 둘러봤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프라하도 아니고, 드레스덴도 아니고, 런던을요. 불과 일 년 전 일인데도, 지금 하라면 못 할 걸요. 저 때는 정말 분위기에 취해서 신나게 쏘아 다녔던 모양입니다. 해리포터에서나 보던 저 빨간 공중전화 부스를 발견했을 땐 뛸 듯이 기뻤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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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 스튜디오


그래서 도착한 지 사흘 째, 관광 일자로 따지면 이틀 째에 해리포터 스튜디오로 향했죠. 미리 예약하고 갔지만,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어요. 급행열차와 일반 열차가 있대서 어떻게 될지 몰라 이른 시간에 출발했더니, 역시나 한 시간 삼십 분 정도 일찍 도착한 거예요. 표부터 바꾸고, 대기하다가, 직원들이 미리 입장해도 된다고 친절히 맞아준 덕에 안에서 기다릴 수 있었어요. 휴대용 선풍기는 관심 물건이었죠. 애초에 선풍기를 들고 있다 하면 한국인이구나 알더라고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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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 스튜디오 내부


기념품을 안 살 수가 없었어요. 실제 영화배우들이 이 곳에서 촬영도 하고, 입은 옷을 그대로 전시해두기도 했다는데 시각적 감동으로만 만족하기엔 욕심이 많았거든요. 교복도 살까 말까 한참 고민했지만 거기까진 참아냈으니, 지팡이와 다른 키링 등의 구매에는 망설임 없이 카드를 긁었습니다. 근데 정말 조심해야겠어요. 유럽에서 한 달 지내면서 카드 긁은 일이라곤 여기 스튜디오가 전부였는데, 얼마 전에 카드 회사에서 연락 한 통을 받았거든요. 해외 사용 건으로 불법 복제된 것 같다는 말에 등줄기에 땀이 주왁 흘렀어요. 작은 상점도 아니고, 이런 큰 곳에서도 도용이 가능하니, 주의하셔야 할 것 같아요. 스튜디오에 오기 전에 노팅힐 거리를 걸었는데, 작은 플리마켓 정도로 보면 무방해요. 아침 일찍이라 이제 막 오픈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었죠. 아무튼 그 짧은 동선도 같은 날 일정에 넣지 않기를 추천드려요.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워낙 커서 미션 도장 찍는 데에 정신 팔리지 않았더라면 다리가 후들후들 나중엔 맥을 못 출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물론, 제 얘깁니다. 제게 작가라는 이상을 꿈꾸게 만들었던 책이자, 영화인 <해리포터>였기에 몸 하나 불 싸지르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빼놓지 않고 누볐지만, 잘 모르는 분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겠죠. 평균 수명을 100살로 가정했을 때, 전 1/4 정도를 산 셈인데, 제가 학교에 입학하고, 입시를 준비할 때쯤 해리포터도 입학하고 졸업했으니, 얼마나 감정이 북받치겠어요. 정말 마지막에 해리가 친구들과 끝까지 지켜냈던 학교 호그와트를 작은 모형으로 제작해 놓은 방에 도착했을 땐 코 끝이 아려오더라고요. 동생도 런던에 다시 갈 수 있다면,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꼭 다시 방문할 의향이 있대요. 예능 <무한도전>이 끝났을 때의 허탈감과 한편으로는 수고한 출연진과 스태프에게 보냈던 박수. 그 마음 그대로 한 번 더 느끼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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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냉동 피자, 저렴한 과일로 배 든든히 채우고 뮤지컬 <라이온킹> 관람


해리포터 스튜디오 말고도 설레는 일정 하나가 더 있었는데, 이는 바로 뮤지컬 관람이었어요. 한국에서도 비싸서 자주 즐길 수 없는 고급 예술인데, 뮤지컬의 고장에 왔으니 당연히 사치 부려야겠죠. 많은 작품들을 다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무대 장치가 장관을 이룬다는 <라이온 킹>을 추천받아 그리로 향했습니다. 꽤 큰 금액을 지불하고 앞 좌석에 앉았는데, 라이온 킹은 2층에서 보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무대 자체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탓에 앞에서 보면 고개가 살짝 아프더라고요. 잘 아는 내용이라 스토리 따라 잡기는 쉬웠습니다. 여행 오기 전에 영어 공부를 한 덕도 조금은 보지 않았나 싶어요.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는 억양에서 오는 차이로 우리한텐 상대적으로 어색하긴 하지만, 사투리도 기를 쓰고 들으면 이해 가능하잖아요. 저도 딱 그 정도였어요. 뮤지컬 관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웠지만, 이날 날이 유일하게 흐렸던 데다가, 성소수자들의 거리 행진이 겹쳐서 인산인해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에 있어 예민하진 않아요. 부모님이 개인화를 잘 시켜주신 덕일까요, 나와 다른 걸 굳이 틀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렇구나-하고 말아 버리죠. 그렇다고 이들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하는 쪽에서 목소리를 내지도 않으니,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냥 관심이 없는 거겠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행진을 보는 내내 불편함은 안 느껴졌지만, 무섭긴 했어요. 한국에서의 촛불 시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정신적 기운이 강렬했거든요. 우리 집회는 뭔가 서로 으쌰 으쌰 하는 기분이었다면, 여기는 다 같이 미쳐보자 하는 느낌이랄까요? 색다른 경험을 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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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탑 Fish & Chips, Burger & Lobster 세트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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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tard 애프터눈티 카페


먹기도 잘 먹었어요. 영국은 한국인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도 들어서인지 기대도 않고 갔는데요, 웬걸. 저는 피시 앤 칩스가 너무 맛있는 거예요. 타워브리지를 보며 의자에 앉아 나누어 먹은 그 시절의 그 맛이 여전히 그립답니다. 돈가스 집에서 먹는 생선가스나, 냉동식품을 직접 데워 먹는 피시 앤 칩스와는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큰 맘먹고 간 Burger & Lobster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보다 더 기억에 남을 정도였어요. 물론 햄버거도 맛있었죠. 오이가 들어가서 호불호가 갈리는 듯하지만, 전 오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오히려 랍스터보다 입맛에 맞았던 걸로 기억해요. 동생이 랍스터를 다 해치웠죠. 감자튀김은 어디서든 옳고요. 또 영국의 대표 메뉴, 애프터눈 티도 즐겼습니다. 여긴 하루 전날에 예약해서 갔는데, 그래서 대기 시간도 없었어요. 어디서 또 본 건 있어가지고, 3단으로 주문했는데, 배 불러서 2층 스콘은 남기고 말았죠. 1층 샌드위치가 일품이었고, 3층 케이크류는 많이 달았으나 다 먹었어요. 한국에서 빼놓은 살, 유럽에서 찌우고 돌아가는 건 늘 반복되는 탓에 이젠 아무리 먹어도 죄책감이 안 들더군요. 혈관에게 과로하느라 고생했다 정도 사과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씹어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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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여유롭게 즐기는 런던


동생 일정은 첫째 날 1/3, 둘째 날 해리포터 스튜디오, 셋째 날 1/3과 뮤지컬, 넷째 날 남은 1/3을 채우고 런던아이 탑승을 하는 거였는데, 첫날부터 런던 관광 명소를 다 돌아버린 탓에 남은 날들은 느긋하게 보낼 수 있었어요. 전에 A코스로 갔다면 이번엔 B코스로 돌아보자,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못 보고 지나쳤던 호수도 볼 수 있었고, 길거리 펍도 발견했어요. 직접 즐기진 않았지만, 분위기 만으로도 맥주 한 잔 걸친 기분 좋은 알딸딸함을 느꼈죠. 걱정했었지만, 착실히 조사하고 탈 없이 런던 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해 준 동생에게 또 한 번의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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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스타, 티켓


짧았던 런던에서의 7일. 날씨 때문인지 시원하고 또 섭섭한 마지막 날이었어요. 어쩜 끝까지 완벽하더라고요. 저희가 떠나고 36시간 뒤에 무려 40도에 가까운 폭염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어서 하늘이 도운 건가 싶기도 했죠. 추운 것도 문제지만, 더운 것도 정말 피곤하니까요. 유로스타에선 인종차별을 두 번 정도 겪었습니다. 해리포터 스튜디오에서도 택스 리펀 때문에 영수증 확인을 부탁했었는데, 그쪽 직원이 느긋이, 그러면서도 비아냥거리는 게 살짝 기분 나빴었거든요. 근데, 유로스타에선 대놓고 무시를 한다거나, 희롱을 하기도 했죠. 그런 것들은 정말 화가 나요. 잘못해서, 실수했기 때문에 지적을 당한다면, 고치면 되니까 별 문제가 안 되는데, 성별 때문에, 또 인종 때문에 무시당하고 차별 대우를 받으면, 제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거잖아요. 애초에 인종이나 성별이 계급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거니까요. 이민자들로 구성된 강대국, 미국에서도 여전히 이런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마당에, 자부심 대단한 유럽 민족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게 더 미개하다는 걸 깨달으려면 멀었나 봐요. 런던에서의 마지막은 유로스타 직원 때문에 미화되지 않고 또렷이 기억하는 중입니다. 한 도시,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이런 걸로 망치다니. 한국을 방문한 모든 외국인은 이런 경험을 겪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요.


어찌 되었든, 런던에서 일주일도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다음은 프랑스 파리예요. 남프랑스도 그렇게 좋다던데, 지나치게 한여름이라 과감히 생략하고 파리와 디즈니랜드. 이렇게 두 곳만 돌아다녔고, 결과적으로 대만족이었어요. 파리의 에펠탑과 디즈니랜드의 야간 폐장 공연이 아주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 덕에 런던에서보다 더 좋았던 도시로 기억하고 있어요. 라면 먹으러 일본 간다던 오래전 드라마 대사가 생각날 정도로, 에펠탑 보러 파리 간다면 전 적극적으로 동의할 수 있답니다. 어서 프랑스에서의 추억을 꺼내놓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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