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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어디 어디 가봤어?

여섯 번째 유럽 - 독일 드레스덴 편

by 글한송이

요새 비가 자주 내려요.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원래 5월에도 이런 자연현상이 있었던가 싶네요. 비를 좋아하긴 해요. 집에서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쓸 때면, 이른 아침인데도 감수성이 돋아난다고나 할까요.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지 않죠. 어렸을 땐 친구들이랑 가위바위보 내기로 진 사람이 폭우 속 운동장 한 바퀴 돌고 오기 게임도 즐겼거든요. 이상하게, 그러고 나면 몸에 남아 있던 나쁜 감정들이 깨끗이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비가 내리면 괜히 베란다 밖으로 손을 내밀어보곤 합니다.

드레스덴, 플릭스 버스 하차 정류장

독일 드레스덴을 떠올리면 미소가 피어나는 이유도 비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온종일 우비를 입고 돌아다니면서 뭐가 그리도 좋았었는지, 찍은 사진들을 보면 강풍에 머리를 휘날리면서도 웃고 있더라고요. 체코 프라하에서 출발한 레지오젯 버스를 타고 독일 드레스덴에 도착했을 땐 맑았던 하늘인데, 한 걸음씩 발을 내디딜 때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우비를 꺼내 입고,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드레스덴 광장

광장은 굉장히 웅장했어요. 전날에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를 다녀와서 더욱 거대하게 느껴지는 건물 자태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나요. 독일 차나 제품들은 날렵하기보다 다소 무거워 보이지만 동시에 견고하고 단단한 느낌을 주잖아요. 독일 사람들도 잘 모른다는 소도시 드레스덴도 문화적 특성을 잘 보여줬어요. 다른 지역은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지역 주민들은 상당히 친절하고 유쾌해서 사람들 또한 딱딱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편견은 깰 수 있었어요.


시청사, 크리스마스 시장, 알트마르크트 광장, 레지덴츠 궁전, 츠빙거 궁전, 테 아테르 광장, 아우구스투스 다리, 가톨릭 궁정 교회, 군주의 행렬까지 점심을 먹기 전에 모두 볼 수 있을 정도로 관광 코스가 잘 되어 있었어요. 체스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넓긴 하죠. 거기다 비까지 쏟아지니까 걸음이 더 늦어진 것도 있었고요. 그런데도 충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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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씩 비가 멈추고 드러난 예쁜 드레스덴 하늘

군주의 행렬은 지나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코스였어요. 아우구스투스 다리까지 갔는데, 하필이면 또 공사 중인 거예요. 설상가상으로 그때가 가장 강력한 빗줄기를 뽐낼 때라서 건너보지도 못하고 한 건물에 들어가 잠깐 피신해 있어야 했죠. 박물관 구경도 이때 했어요. 어차피 밥 먹으러 다시 돌아와야 했거든요. 그래서 한 바퀴 코스를 정리하면서, <풀바투름> 식당을 찾았어요.

<풀바투름> 학센

한국어 메뉴판이 있고, 맛도 좋고, 친절하단 정보를 입수해 찾은 곳이었는데, 입구를 못 찾아서 한참 헤맸어요. 지하에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한국어 메뉴판은 있긴 했습니다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정말 '한글'로만 적혀 있는 정도라 영어 메뉴판을 참고했어요. 맛은 좋았지만, 서비스는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인종차별이 있었거든요. 좁은 통로 테이블은 동양인 몫이었죠. 거기다 마시지도 않은 콜라가 계산서에 적혀 있었어요. 주문을 받은 남자 웨이터 짓이었는데, 다행히 계산을 하러 온 여자 웨이터분이 잘 해결해주셨어요. 체코 꼴레뇨는 심각하게 짰는데, 학센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 화장실에서 마주친 손님들의 친절 덕분에 기분을 완전히 망치지는 않았지만, 드레스덴에 방문할 예정인 친구들에겐 피하길 권고했었어요. 나중에 사귄 독일 친구 말로는, 학센은 독일인들이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니래요. 한식으로 알려진 음식들은 집에서도 해 먹는 것들이 많은데, 독일은 그렇지 않다나봐요. 그래서 저도 다음엔 현지 친구에게 추천받을 예정입니다.

PICNIC_20181222_171226009-01.jpeg 크리스마스 마켓

크리스마스 마켓은 개인적인 생각으론, 드레스덴이 가장 예뻤어요. 비엔나, 부다페스트, 잘츠부르크, 그리고 드레드덴 순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봐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죠. 파는 물건이나 와인은 다 비슷비슷해서 새로움은 적었지만, 반짝이는 불빛이 동화 피터팬에 나오는 팅커벨처럼 보였어요. 또 위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설치된 건물 덕분에 가슴도 탁 트이는 거 있죠? 다리가 불편한 관광객이 있었는데,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그 학생을 도와주는 모습은 따뜻함을 전해줬습니다. 전 종교에 우위가 없고, 사실은 다 같은 실천을 강조한다고 생각해서, 크리스마스나 석가탄신일이나 심지어는 부활절도 즐거운 행사로 받아들이는데요, 어쨌든 제가 있던 곳은 크리스마스 마켓이었으니까, 사람들과 함께 아멘을 외쳤어요.


감사하게도 프라하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가기 전까지 날이 맑게 개었어요. 기념품을 사러 돌아다니고, 골목을 누비며 겨울 유럽의 마지막 여행지가 될 독일 드레스덴을 깊이 새겨둘 수 있었습니다. 올 때와 달리 무거워진 가방을 메고 광장을 지나쳐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낮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대형 트리를 발견했어요.

드레스덴 광장 트리

귀여운 눈사람 앞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갖가지 웃긴 포즈를 취했는데 너무 익살맞은 표정을 지었는지, 지나가려다 사진 찍는 걸 기다려주던 현지인이 절 보고 크게 웃었어요. 민망해서 저도 활짝 미소 지으며 그분을 봤는데, 이게 웬 걸, 너무 멋있으신 거예요. 네 국가를 돌아다녔으니 적응할 법도 한데 여전히 긴장한 채로 다녀서 사람들한텐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럴 여유도 없었고요. 사람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고, 대화를 즐기고, 각자가 가진 특별한 개성에 흥미를 느끼는데 유럽에선 그러질 못했어요. 그런 와중에 처음으로 아무런 목적 없이 눈을 마주한 현지인이 이렇게나 멋있을 줄이야. 독일 오빠(?)의 매너에 반해 저도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면 잠깐 기다려주는 센스를 발휘하고 있답니다. 너무 쉬운 배려인데, 그동안은 뭐가 그리 급해서 달리기까지 했는지, 의아하네요.

버스 타기 전 처량한 척 한 번

저녁은 기차역에 있는 <SUBWAY>에서 먹었는데, 오후 7시 35분에 타야 할 플릭스 버스가 한 시간 가량 연착되는 바람에 허기져서 먹은 일종의 생존 식량이었어요. 언제 도착할지 몰라 분위기 좋은 팬시한 레스토랑을 가는 건 무리였거든요. 점심을 한 시가 넘어 먹었던 지라 그 전엔 배가 안 고팠던 게 문제였죠. 비가 다시 어깨를 적셨고,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동승자들은 같이 추위에 떨고 초조해하면서도 한 마음 한 뜻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서로를 안심시켰습니다. 마지막까지 온기가 남아있던 도시였어요.

20181222_222515.jpg 프라하 플릭스 버스 정류장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한 프라하는 깜깜했지만, 처음 유럽을 밟았을 때의 설렘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5일간의 프라하 재 방문기, 어쩌면 전 전생에 체코 사람이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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