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나는 내가 싫은데, 너는 나를 좋아한다. <11화>

by 글한송이

여기서 더 보면 구역질을 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몇 백 번 책과 노트북을 보고 나니 해가 뜨기 시작하는 새벽이었다. 눈은 충혈되고 뻑뻑함도 느껴졌다. 화장실 거울 속 모습은 초췌했다. 혹시 몰라 챙긴 립스틱을 하얗게 질린 입술 위에 다시 발라 봐도, 푸석푸석해진 피부는 돌이킬 방법이 없었다. 물을 끼얹어 눈곱을 떼고 자리로 돌아갔다. 시환은 의자 등받이가 딱딱해 불편했는지, 내가 앉아 있던 쿠션 의자 쪽으로 옮겨와 눈을 감고 있었다. 졸업 논문보다 졸업 시험이 낫지 않냐며 대신 투덜거리는 내게 이런 것쯤은 별거 아니라며 위풍당당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천사가 피곤에 절어 곤히 잠든 것만 같았다.


'이런 건 식은 죽 먹기죠. 나한텐 송이 씨가 제일 어렵거든.'


원래 사람이 제일 어려운 법이다. 시환은 상대적으로 다가가기 부담 없는 사람이긴 했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대화도 잘 이끌었으며, 매사에 진심이었다. 공부하는 모습을 힐끗 보면, 홀로 있는 사람처럼 주변 소음엔 아랑곳 않고 제 일에 집중했다. 쉴 때쯤 내게 걸어온 말은 피로를 풀 수 있도록 따뜻하면서도 웃음 짓게 만드는 장난들이었다. 누구든 고운 정 미운 정이 든다는데, 시환과 미운 정은 연결시키기 힘든 관계이지 않을까 싶었다. 잠든 그를 보고 있으니 눈을 가린, 성격만큼이나 쭉쭉 뻗은 검은 생머리가 거슬렸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나도 모르게 손을 머리칼에 가져갔다. 스륵. 예쁜 눈을 가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옆으로 넘겼다. 진한 눈썹, 긴 속눈썹, 곧게 뻗은 코와 모공 하나 보이지 않는 투명한 피부. 처음으로 시환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성품처럼, 모난 데 없는 반듯한 얼굴이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배우 닮았죠."


자는 줄 알았던 시환이 내 손을 휙 잡고는 눈을 서서히 떴다. 깜짝 놀란 건 놀란 거고, 방금 저지른 일이 얼마나 무례한 행동이었는지 자각하니 두 다리가 펄쩍 뛰었다.


"아, 미, 미안해요. 머리카락이 내려와서-"


잡힌 손이 아예 이마 위로 올려졌다. 보드라운 촉감에 입을 다물었다. 처음 듣는 잠긴 목소리가 이어졌다.


"동기들이 나더러 요즘 잘 나가는 배우 닮았대요. 누구였더라, 박... 박 보.. 뭐랬는데."


누군지 알 것도 같았지만, 괜히 놀려주고 싶어서 끝까지 아무 배우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답답해하는 표정이 웃겼다. 손 틈 새를 파고드는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시환에 의해 반강제적 쓰담쓰담 행동을 멈췄다. 이러다간 지각이었다.


"얼른 가서 자요. 난 출근해야 해."


"송이 씨도 오늘 결근해요. 야근수당도 안 주고 일 시켜서 병 난 거야."


교직에 있는 모든 이들은 공감하겠다. 우리 일은 가르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걸 준비하는 과정까지도 포함된다는 사실은 바뀔 수 없었다. 보람으로만 직업을 유지하라는 건 극악무도했다. 공무원 선생님이나 교수들 상황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계약직 강사의 힘은 약했고, 비합리적인 노동을 강요당했다. 별 수 있나. 그리고 이번엔 내가 풀어져서 벌어진 일이었다.


"스테디셀러 작가 되려면 아직 멀었어요. 생계유지는 해야지."


꺼내 둔 짐을 가방에 도로 넣으며 책상을 정리하자 시환이 번뜩이는 눈빛과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나를 부여잡았다.


"글 다시 쓰는 거예요? 진짜? 정말?"


아직 시작한 건 아니다.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면서 천천히 시놉시스를 그려보는 중이었다. 실제 실행에 옮기기까지 시간도 많이 필요할 것이고, 썼다고 해서 바로 어딘가에 내놓을 만큼 수준급 이리란 보장도 없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시킬 글을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취미를 찾은 거라고 해두죠."


"와! 축하해요! 진짜 잘 됐다!"


나보다 더 기뻐하는 시환을 보고 있으니 괜스레 웃음이 났다. 시환이 남은 티슈 위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볼펜 압력에 찢어지지 않게 하느라 좀 오래 걸렸다.


'한송이 작가의 1호 팬, 유시환 드림.'


티슈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글 나오면, 그땐 나한테 사인해 주는 거예요. 알았죠? 1호 팬이 탈덕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죠?"


갑자기 핑 도는 현기증은 팬이 생겼다는 행복감에 생긴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 믿었다. 집에 가는 내내 흐려지는 시야를 다잡느라 고생이었다. 데려다주겠다는 시환에게 나만 아는 지름길을 소개해줬다. 잠깐이지만 흐뭇한 미소와 함께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우와, 사람도 안 지나다니네요? 이렇게 큰 단지에."


"나만 아는 길이에요. 꼭 엄지공주랑 팅커벨이 살 거 같아서 가끔 산책 나오기도 해. 그러니까 쉿. 입 다물고 걸어요."


시환이 손을 입에 흡 가져다 대고 쉿 하고 말했다. 귀여웠다. 구석구석 예쁜 꽃들을 소개해 주고 싶었지만 시간도 없었고 숨이 자꾸만 가빠와서, 다음으로 미뤘다.


"이 길은 비밀이에요. 알았죠?"


그의 웃음을 뒤로하고, 출근을 준비했다.




'또 밤새 같이 있었음 좋겠어요.'


시환의 문자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지만 마음만 편한 하루였다. 이틀을 연짝으로 밤새우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수업 내내 정신은 딴 데 가있고, 학생들도 덩달아 산만했다. 오늘 제대로 해낸 거라곤 시험 문항 출제 파일을 제시간에 넘겼다는 것 말곤 없었다. 머리도 계속 띵한 게 열이 나는 듯했다. 35도 언저리에 머무는 내 기초 체온이 36.5도로 올랐다면 이건 미열이었다. 감기 몸살이 오면 가장 먼저 열이 났고, 귀가 아팠다. 만 0세였을 때, 중이염을 크게 앓았다는데, 그 여파가 커서도 지속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코도 맹맹하고, 기운도 없는 게 근래 무리한 탓임이 분명했다.


"어머, 한쌤! 몸 안 좋아? 안색이 진짜 구려! 얼른 집에 가."


정쌤 덕분에 다른 선생들에게 붙잡히지 않고 최대한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영부영 어지러운 이마를 부여잡고 천천히 길을 따라 내려갔다. 시환이 있을 카페 거리로 이를 악 물고 향했다. 눈치 빠른 시환이라면 내 상태를 보고 걱정하겠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기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얼른 집에 가서 자는 게 소원이었다.


"어딜 가는데 사람을 그냥 지나쳐."


은형 오빠가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나를 불러 세웠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휘청였다. 오빠가 빠르게 넘어지려는 나를 낚아챘다. 오빠가 얼굴을 굳혔다. 손이 이마 위로 올라왔다.


"몸 상태 왜 이래? 송이야, 나 알아보겠어?"


초점도 나간 건지, 오빠는 내 양 어깨를 꽉 잡아 상태를 살폈다. 시환을 보러 가야 하는데, 문자 답장도 제대로 못 해서 막연히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앞이 자꾸만 흐려졌다. 몸은 완전히 은형 오빠에게로 기울었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갔다. 열을 식히려는 신체 기관의 처절한 비명도 소용없었다. 눈물조차 뜨겁게 흘렀다.


"송이 씨?"


시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형 오빠는 차까지 나를 부축해 걷다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대답 좀 해주면 좋으련만, 들어 놓고 왜 사람 말을 무시하는 걸까. 딱 봐도 몸이 안 좋아 보이는 날 발견하자 목소리에 떨림이 전해졌다.


"송이 씨 괜찮은 거예요? 네? 어디가 아픈 거예요?"


"괜... 괜찮다고... 전해줘..."


은형 오빠는 나마저 무시했다. 목소리가 도통 나오질 않아서 툭툭 끊기긴 했지만, 차 벨트를 채우면서 못 들었을 리 없다. 숨이 가빠서 입으로 호흡했다.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차 안은 딱딱한 시트만큼이나 가슴을 옥죄었다. 바깥에서 시환과 은형 오빠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뭉개져 들렸다.


'은형 오빠 되시는 분이죠? 어제 얘기 들었어요. 송이 씨 왜 그러는지 알고 계세요?'


'몸 안 좋은 거 알았으면, 이제 그만두세요.'


'얼마나 안 좋은 건데요?'


'송이가 직접 말 안 했으면, 두 사람 사이 안 봐도 뻔하네. 유시환 씨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못 받는 꼴은 못 보겠으니까 더는 송이한테 다가오지 말아요.'


왜. 오빠가 시환 씨를 왜 나무라는지 화가 났다. 상처 받은 표정의 시환을 보고 말았다. 말할 생각이었는데, 타이밍을 못 잡았다. 놓쳤다. 아니, 사실은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날 평생 아픈 사람으로 보는 눈빛이 싫어서 그 앞에서 만큼은 정상적인 사람이고 싶었다. 비겁했다. 나는 그의 울먹이는 얼굴을 볼 수 있고, 그는 미안해하는 나를 볼 수 없도록 가려진 차 창의 썬 시트를 뗄 수만 있다면 좋겠다. 벨트를 푸르려 했으나, 은형 오빠가 빨랐다. 운전석에 냉큼 타자마자 출발했다. 나는 그대로 잠에 들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땐, 지긋지긋한 병원 천장이 시야를 차단했고, 코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있었다. 손가락에 끼워진 맥박 측정기는 규칙적인 기계음에 꿈틀거렸다. 침을 꼴깍 삼키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깼어?"


옆에서 엎드려 자고 있던 은형 오빠가 미세한 움직임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었다. 오빠의 온기가 손을 타고 전달됐다.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담당 의사가 들어와 은형 오빠와 몇 마디를 나누곤 바로 나갔다. 숱한 경험을 토대로 하루 정도 입원하고 퇴원하면 되는 전개였다.


"퇴원하고 내 집으로 가자. 혼자 있다가 또 쓰러지면 그땐 정말 큰일이야."


"그냥 몸살이잖아."


답답함에 산소호흡기를 떼어냈다. 별 제지를 하지 않는 걸 보니, 과잉 조치였지 싶다. 오빠가 노파심에 이것저것 다 살펴달라 부탁했겠지.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 매번 초긴장 모드로 돌변하는 게 과하게 부담스러웠다.


"그냥 몸살? 너 신경성 장애 있는 거 몰라서 이래?"


아. 뇌 검사까지 한 걸까, 아니면 심장을 보는 것에서 그쳤을까. 번 돈은 족족히 병원에 납부됐다. 올 해는 좀 잠잠하려나 기대했는데, 반년이 되기도 전에 이런 꼴을 보다니, 한탄이 튀어나왔다.


"시환 씨는? 만났던 거 같은데."


"........ 넌 너한테만 신경 써. 그쪽도 겁먹고 도망갔으니까."


탁자 위에 놓인 물병을 집어 목을 축였다. 아니, 제대로 갈증을 해소하진 못했다. 겁먹고 도망갔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휴대폰을 확인했다. 무슨 연락이라도 있겠지. 하지만 부재중 전화는커녕 문자 한 통 없었다. 이따 퇴근 같이하자는 메시지를 끝으로 휴대폰은 잠잠했다.


"무슨 얘길 한 건데?"


날카로웠다. 은형 오빠 잘못이 아님에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뭘 어떻게 얘기했기에 시환이 이렇게 돌아선단 건지 납득이라도 해야 했다. 내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알고 사라졌든, 모르고 물러섰든, 다 상처였지만, 그래도 알아야 했다. 은형 오빠와 주연이 말고 사귄 사람이었다. 같이 퇴근하고, 집 근처에서 술 한 잔 하고, 24시 카페에서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동네 친구였다. 선을 넘어도 좋다고 생각한, 날 설레게 만드는 남자였다.


"니 상황 대충 알고 있다며. 아무것도 모르던데. 그래서 말 안 했어."


"근데 왜 도망갔대?"


"네가 치료받고 나아질 때까지 볼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했으니까."


맥박 측정기를 뽑았다. 혈관을 찌른 링거 바늘을 잡아 뜯었다. 이불을 걷어 높은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오빠가 붙잡았지만, 강하게 뿌리쳤다. 아직 토할 것 같은 울렁거림은 여전했다.


"그러다 쓰러지면, 상태 더 악화돼서 팔도 평생 못 쓰고 밖으로 나돌지도 못하면, 그러면 또 죽겠다 그러려고 이러는 거야?!"


얼마 못 가 벽에 미끄러지듯 쓰러졌고, 은형 오빠가 입술을 깨물었다. 화를 내면서, 시환 씨한테 그런 식으로 말할 자격이나 있냐고 따져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지금이라도 연락해서 다 털어놓아야 했는데, 문 앞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지금보다 더 나빠져서 팔을 못 쓰게 되면, 다시 시작해보려 잡은 펜을 또 내려놓아야 하니까,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 평생을 홀로 지내야 할 테니까, 그렇다고 죽을 것도 아니니까. 우스웠다. 전에는 그냥 포기해버렸는데, 이젠 그것조차도 무서워진 스스로가 짜증 나도록 미웠다. 언제부터 삶에 대한 의욕이 가득했다고 몸을 사리는지 가소롭다.


"송이야. 내가 말했잖아, 너 안 평범해. 정상 범주 내에 있는 사람들이랑 틀리다고."


틀리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린 사람이다. 의사 소견이 그랬다. 담당의는 나 자체가 틀려 먹었다고 설명한다. 시환이라면 뭐라고 말했을지 궁금하다. 가슴보다 머리가 앞선다고, 그게 스트레스지만 어쩔 수가 없다는 내게 다를 뿐이라고 위로했던 그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나를 아픈 사람으로 보려나. 열을 식히기 위한 눈물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통이 툭 툭 떨어졌다.


"학원 측엔 연락해뒀어. 다음 학기에 복귀하는 걸로 해. 심장에 더 무리 갔다간 오늘처럼 안 끝나."


은형 오빤 차분히 나를 안아 들어 침대 옆 의자에 앉혔다. 깊은 산속 샘물처럼 졸졸 흐르는 피가 멎어갈 때쯤 간호사가 들어왔다. 난장판 된 병실에도 놀라지 않고 묵묵히 침대 시트를 갈았다. 이제 보니, 몇 년 전, 검사 결과를 듣고 좌절하는 나를 지켜본 간호사였다. 피식. 다들 그대론데, 나만 바뀌었다. 좋은 방향이라고 할 수만은 없었다. 욕심이 생긴 탓에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으니, 결코 기쁘지 않았다.


"월요일에 흉부부터 해서 기초 검사 다시 들어갈 거야. 다른 걱정 말고 오늘내일은 푹 쉬어 둬. 너희 부모님한텐 내가 말씀드릴게."


"나가 줘."


"뭐?"


"푹 쉬게, 혼자 있을래."


반대쪽 팔에 링거가 새로 꽂혔다. 간호사가 나가고,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덮고 누웠다. 오빠가 날 어떤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는지 예상됐지만, 눈을 감음으로써 무시했다. 다 보기 싫었다.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느낌도 불쾌했다. 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오빠는 두 말 않고 걸음을 옮겼다. 평소보다 무거운 발자국 소리는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내가 또 한 사람의 걱정거리가 되어 폐를 끼치고 있다니. 끔찍하리만치 내가 싫었다.


'송이 씨는 누군가한테 받아들여져 본 적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선 넘었으면 미안해요. 나랑 있을 땐 그런 생각 안 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시환의 목소리를, 그와의 기억을 자장가로 서서히, 지독하리만치 힘겨운 현실의 끈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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