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싫은데, 너는 나를 좋아한다. <12화>
온통 새하얀 방 안은 눈을 뜨지도 못할 정도로 환하게 빛나서 괴로웠다. 눈을 감고 있어도, 반사된 빛에 잔상이 남아 피로감이 전해졌다. 바닥에 엎드려 얼굴을 두 팔 위로 묻었다. 왼팔 통증이 심해 절대 불가능한 자세였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걸로 봤을 때 이건 꿈이었다. 꿈속에 있음을 자각하고 나니, 뒤통수가 살짝 아려왔다. 혈압이 당기는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싸한 무언가가 머리를 한 바퀴 훑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번엔 세상이 완전한 암흑 속에 있었다. 차라리 어둠이 나았다. 쓴웃음과는 다른 조소가 엷게 번졌다. 그때 작은 구슬 하나가 영롱한 빛을 내며 공중에 떠올랐다. 영화 해리포터였던가, 퀴디치 게임에서 가장 완벽한 역전승을 이끌어내는 공이 스니치였다. 딱 그 모양새의 구슬이었다. 날개는 없었지만, 빛 때문에 빠르게 날갯짓을 하는 듯 보였다. 몸을 일으켜 구슬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대신, 나를 계속해서 앞으로 이끌었다. 산책에 나가고 싶어 하는 강아지가 주인을 이끌듯이 간절하게, 그리고 놓치고 싶지 않게끔. 처음엔 장단을 맞춰줬다. 아슬아슬한 잡기 놀이에 거리낌 없이 응했다. 그러면서 규칙을 찾았다. 왼팔이 움찔대면 꿈쩍 않는 구슬은 오른손의 동작만을 인식했다. 그래서 오른팔을 내려, 왼팔로 낚아챘다. 시리지도, 저리지도 않은 왼팔이 낯설었지만, 좋았다. 입술을 깨물며 피어나는 미소를 감췄다. 그러자 방을 깜깜하게 만들었던 굳게 닫힌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그 앞엔 누군가가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푸른빛에 눈을 흘겨 떴다. 검은 그림자가 손을 내밀었다. 누구지. 바라는 사람은 있었는데, 확신이 없어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송이야!"
잠에서 깼다. 은형 오빠 연락을 받고 온 엄마가 애를 태우며 깨웠다. 잠든 것뿐이라며 진정시키는 오빠와, 엄마를 달래는 동생, 멀찍이서 보고만 있는 아빠, 그리고 기어코 날 쥐고 흔든 엄마까지.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웃겼다. 아니, 이런 걸 안도하는 상황이라고 하는 거겠지. 사우나에 다녀온 것처럼 몸이 노곤 노곤해졌다. 그토록 안 맞아서 피했던 가족이었는데, 나도 참 야비하지, 아플 때 엄마 보니까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걸 보면.
"엄마, 왜 왔어, 나 괜찮은데."
"너 밥 제대로 안 먹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 엄마가 뭐랬어, 젊어서 대충 살면 나이 들수록 훅 간다고 했지."
징글맞던 잔소리가 정겹기만 했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행동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쌀쌀맞은 언행, 그러면서 목소리는 또 따뜻해서 웃음과 함께 울음이 터졌다. 엄마를 말없이 끌어안았다. 엄마는 어정쩡한 자세로 나를 품에 넣었다. 새가 알을 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그리고 꽉. 늘 어리기만 하던 동생이 눈치껏 은형 오빠와 아빠를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오랜만에, 그리운 품 안에서 엉엉 기대 있을 수 있었다.
"송아가 많이 컸네. 원래 눈치라곤 전혀 없었는데."
"얘, 송아도 직장 다니는데 그럼 당연하지. 이제 어디서도 막내 취급 안 받을 거다."
한 살이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교육방식을 취했던 엄마는 그 점을 늘 미안해했다. 그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 걸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 봤자 스물 넷인데, 어딜 가든 막내라고 바로잡을까 하다가 병실에서도 꼬치꼬치 깐깐하게 굴 거냐고 타박할 엄마가 그려져서 더더욱이나 입을 다물었다. 엄마는 내가 잘 먹던 과일들을 잔뜩 꺼냈다. 블루베리, 체리, 딸기... 제철 음식을 찬양하던 엄마가 여름에 딸기를 포크로 찍어 주는 모습이 신기했다.
"아빠가 집에 수박 잔뜩 사놨어. 그거 가져오자니까 너 좋아하는 걸로 사줘야 빨리 낫는다면서 어디서 사 왔더라. 그니까 네가 책임지고 다 먹어."
냉장고에 다 넣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간호사들에게 나눠주는 게 좋겠다. 엄마는 의자에 털썩 앉아 나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저 눈빛이 싫어서 숨겼던 통증과 고통이었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했다. 오히려 지금은 응석을 부리고 싶었다.
"은형이 말론 네가 치료 잘 안 받고 다녔다는데. 만나는 사람이라도 있었어?"
하. 족집게야. 대체 치료 안 받는 거랑 남자 문제랑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엄마는 늘 이런 식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민낯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은형 오빠가 언질을 줬을 리는 없었다. 그러니까, 그 대단한 육감이 발동한 게 분명했다.
"나 좋다고 맨날 지하철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 있지?"
솔직히 털어놓기로 했다. 감출 수 없을뿐더러, 이렇게라도 그를 떠올리면서 하나 둘 나쁜 점을 찾다 보면, 굴러가기를 멈췄던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 감정을 눌러버릴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최선을 다해서 뱉어냈다. 속으로만 묵혀두면, 여운이 얼마나 길게 남을지 알았기에, 미련을 버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하도 졸졸 쫓아다니니까 귀찮아서 몇 번 만났어. 특별할 건 없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아, 꽃도 안 핀 초봄에 한강엘 가자는 거야. 그 딱딱한 바닥에 돗자리 깔고 앉아서 김밥 싸왔다고 펼치는데 순수한 건지 순진한 건지 어이가 없었어. 알잖아, 나 벌레 무서워하는 거. 개미가 들끓어서 금방 먹고 일어났지."
막상 데이트 다운 데이트는 그게 전부였다. 곱씹을수록 한 게 없었다. 그냥 카페에서 각자 공부하고, 일하고, 퇴근길에 몇 마디 주고받다가 헤어지고. 또 다음날 만나서 각자 일하다가 헤어지고. 몇 개월을 만났는데 추억할 수 있는 장소가 회사 근처 카페, 지하철, 한 번 가 본 한강이 다였다.
"... 아. 동네 주민이었어. 근데 그걸 얼마 전에 알았다? 아니, 내가 부담 느낄 까 봐 한참 일찍 내려서 돌아갔대. 어딘가 좀 부족한 사람 같기도 해. 아무튼 걸어서 십 분? 십오 분? 거리더라고. 그래서 술 한 잔 했지. 살짝 취해서 진지한 얘길 하는데, 말이 잘 통하더라고. 엄마처럼 몇 마디 안 해도 내 속을 다 알아. 무서웠어. 아차차, 아직 학생인데 곧 졸업이래. 논문 쓰면서 배달 알바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더라. 난 학생 때 카페나 병원에서 아르바이트했었잖아. 그것도 힘들다고 투덜거렸는데, 대단하지 싶어."
아니, 이게 아니다. 왜 자꾸 시환을 칭찬하게 되는지 입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나쁜 점을 찾아야 하는데, 분명히 나와 안 맞는 부분들이 있을 텐데, 이상하게 그런 것들은 쓱 지나쳐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 깨달은 사실은-
"근데 엄마.... 이상하지. 나 그 사람 나이도 모른다? 대충 가늠은 하겠는데, 정확히는 몰라.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랑 사는 건 아는데, 김밥 좋아하고, 커피는 늘 따뜻한 걸 마신다는 것도 아는데, 그게 끝이야. 늦겨울부터 어제까지 연락 주고받고, 시간 날 때마다 생각나고,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을까 괜히 점심도 배달시켜먹고 그랬는데... 나는 그 사람을 몰라."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마음을 연 사람이었다. 여기저기서 데이며, 상처 받고, 흉터가 파이고, 새 살이 돋기도 전에 또 찔리고, 아물 때쯤 찢어지면서 절대로 똑같은 짓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염되어 얼룩진 나를 씻긴 남자였다. 나는 그로부터 치유를 받았는데, 정작 아는 게 없다.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얼굴이 절로 떨궈졌다.
"나쁜 사람이야. 난 이렇게 물렁물렁하게 만들어놓고, 자긴 아무것도 안 보여줬어. 그래서 내가 찰 거야. 다 낫고, 정상인으로 살 수 있으면, 그때, 인사할 거야. 어머, 안녕하셨어요-하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머리가 다시 아파왔다. 차라리 잘 됐지 싶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내가 마지막으로 마음에 들었다. 이 고통이 지나가고 나면, 다 잊힐 것이다.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낼 것이다. 여태껏, 늘 그래 왔듯이. 엄마의 온기가 손을 통해 전해졌다. 한참 조용히 한탄을 듣기만 했던 엄마가, 메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엄만, 송이가 그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 그쪽이 부담스러워하고, 거절하면 어쩔 수 없지만, 일단 부딪혀 보는 게 널 위해선 낫지 않나 싶어. 지금은 아프겠지. 그래도, 안 해보고 아픈 것보단, 해보고 아픈 게 낫잖니."
아니야.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 지금도 봐. 한 번 더 연락하면, 받을 수 있는데, 아무 소식도 없잖아. 은형 오빠 말대로 도망친 거야. 아픈 사람이랑 엮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피하는 거야. 어머니를 잃었으니까, 그 슬픔을 또 겪는 게 감당이 안 되는 거지. 겁쟁이가 따로 없어. 나도 시환 씨한테 고통이 되긴 싫어. 그래서 보내줄 거야. 애초에 잡지도 않았어.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벼운 사이였어.
"나도 감정 놀음 한 번 해볼랬는데, 결국엔 이성이 이겼어 엄마. 이제 좀 계산이 돼. 시환 씨한테 난 부족해. 우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엄마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엄마 마음에 비수를 꽂은 걸까. 엄만 지금 나보다 더 아파서 우는 걸까. 전부터 그랬다. 차라리 내가 우는 게 나았다. 내가 조금 더 힘들고 내가 더 양보하고 내가 참는 게 편했다. 커다란 눈망울이 초점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다 억누르지 못한 한 두 방울이 톡 하고 떨어지면, 내 마음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송이야. 사랑은 수학이 아니야. 계산하고, 연구하고, 증명하지 않아도 돼. 노래처럼 흘러가는 대로 두고, 그림처럼 네 마음대로 그리면 돼. 시환이란 사람, 엄만 좋아. 직접 만나 보진 못했지만, 우리 딸이 마시지 말란 커피를 마시고, 그렇게 무서워하는 개미 소굴 속에서 김밥도 먹고, 엄마 아빠 앞에서도 안 취하는 애가 살짝 풀린 모습까지 보여줬다고 하니까, 송이한테 너무 좋은 사람일 거 같아."
멍해졌다. 답답하기만 했던 목구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 걸까. 아니.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깨달을 것도 없었다. 인정하기만 하면 됐다. 그러고 나니까, 놀랍게도 안심이 됐다. 받아들인다는 건 어렵지만, 또 간단한 일이었다.
"은형이도 좋았는데, 아무래도 마음 치유는 그 사람한테 받아야겠다. 그리고 송이 너는 다시 웃는 거야. 어때, 완벽한 시나리오지?"
중간에 은형 오빠가 끼어 있는 게 코미디긴 했지만, 삐그덕 대던 하루가 천천히 맞춰졌다. 자고 일어나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계획이 섰다. 기운이 쏙 빠졌지만, 그래서 꿈도 안 꾸고 잘 수 있었다. 쉬라며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 손길을 느끼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환자분 몸이니까 알아서 하세요. 대신, 또 실려 오시면, 그땐 저 못 봐요."
일요일이라 안 될 줄 알았는데, 담당 의사가 마침 병원에 들린 덕에 붙잡고 겨우 설득했다. 절대 통원 치료에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맹세까지 하니, 어쩔 수 없이 퇴원을 허락해줬다. 대신 식단 조절이 필수니까 무조건 따르라는 지침도 있었다. 병원 음식보다야 낫고, 귀찮아지긴 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짐을 챙겨 나오고, 간호사가 서류 몇 가지를 챙겨주며 쌀쌀맞은 애정 표현을 퍼부었다.
"네. 언니 보고 싶으니까 앞으론 두 다리로 걸어서 들어올게요."
"차 선생님한텐 말씀드렸어요?"
옆에서 다른 업무를 보던 간호사가 불쑥 끼어들었다. 나와 은형 오빠가 대체 무슨 관계인지 간호사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물어보는 이 없어 딱히 해명하는 것도 웃겨서 가만히 있었지만, 질문을 던진 간호사가 오빠에게 관심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참에 둘을 엮어주는 게 어떨까 괜스레 돕고 싶었다.
"휴대폰이 꺼졌지 뭐예요. 선생님 곧 퇴근하시죠? 데려다 달라고 하면서 전해주실래요? 집으로 바로 갈 거라고도 덧붙여 주세요."
"차 선생님이 우리한테 환자분한테 하는 것처럼 하는 줄 아나 보죠?"
담당 간호사가 싸하게 말했다. 은형 오빠는 친절과 배려의 아이콘이었다. 쓸 데 없이 오지랖만 넓어서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한 걸음에 달려왔고, 선을 잘 지키면서 베풀고 나눌 줄 알았다. 근데 왜 사람을 차별하는 못난 인간으로 찍혀 있는 건지 의아했다. 그런 놈이면, 저 간호사는 왜 오빠한테 관심을 보이는 건지도 설명이 안 된다.
"그래서 저희도 송이님이랑 무슨 사인지 궁금한 거예요. 대체 어떤 사이길래 우리 차갑고 무뚝뚝한 차은형 선생님이 쩔쩔매나. 두 분, 연인인 거죠? 그렇죠?"
그때 은형 오빠가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몸도 성치 않은 애가 왜 퇴원을 하냐며 돌아가자는 반강제적인 강요가 이어졌다. 간호사들은 침을 꼴깍 삼키고, 자기 일을 하는 척하면서 온 신경을 나와 오빠 쪽으로 곤두세웠다. 차은형. 오빠는 지금 무슨 생각으로 날 챙기는 거지. 어젯밤 엄마가 한 소리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말이 아니었다니.
"정말 통원 치료 잘 받을 거야?"
"...... 응. 가서 일 봐."
"데려다줄게. 짐 줘."
짐이라고 해봐야 수업 자료와 가방이 전부였지만, 오빠는 그조차도 자신이 들기를 자청했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이 그토록 외로워 보인 건 잠깐의 착각이길 바랐다. 간호사에게 인사하고, 천천히 뒤를 따랐다.